그날 토론회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발언을 했다.
“사형제도가 없어서 사형수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사형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형수가 나오는 것은 사형수가 나올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 때문이다. 식품외식업계도 마찬가지다. 불량ㆍ부정식품 단속을 위한 규제법규가 아무리 강화되더라도 업체들이 법을 어길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한 상황에서는 불량ㆍ부정식품은 나올 수밖에 없다. 이유는 식품외식업체들이 너무도 영세하고 취약한 산업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제만 자꾸 강화할 것이 아니라 산업을 육성하는 정책도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산업을 선진화시키는 것이 곧 안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공청회 다음날, 농림부 식품산업과의 사무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전날 공청회에서 내 발언을 듣고 “공감했다”면서 “농림부가 마침 ‘식품산업육성법’을 만들고자 하니 아이디어를 좀 달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그로부터 시작된 농림부의 식품산업 육성을 위한 법적근거가 22일 ‘식품산업진흥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로 3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마련된 것이다. 나로서는 감회가 남다르다. 지난 3년간 식품산업 육성을 위한 법적근거 마련을 위한 작업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그 감회가 더욱 남다르다.
식품산업진흥법 제정은 2004년 처음에는 그렇게 농림부가 시도를 했지만 복지부 등 관련 부처와의 의견조율이 되지 않아 대통령 직속 ‘농어업ㆍ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로 이관돼 추진을 했는데 이 또한 복지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실패하고 만다. 이어 2005년 8월 국무조정실에서 이어받아 다시 시도를 하던 중 10월에 ‘김치 기생충알 검출’ 사건이 터졌다. 국무조정실은 다섯 차례의 회의를 거쳐 식품산업발전 종합대책을 내놓으려는 순간 식품 안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에 떠밀려 슬그머니 꼬리를 내려버렸다. 그리고는 “규제만 강화할 것이 아니라 산업육성책도 함께 만들어라”는 당시 이해찬 총리의 지시에 따라 보류했던 식품안전기본법의 제정을 다시 서둘렀다.
2006년 1월에 정부 입법과 각 당에서 동시다발로 발의한 ‘식품안전기본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 처분됐다. 그리고 나서 정부는 식품행정을 ‘안전관리’와 ‘산업육성’으로 이원화하기로 하고, 안전관리는 ‘식품안전처’ 신설을 통해 일원화 하고 산업육성은 농림부 등 생산부처에서 담당하도록 교통정리를 했다. 이에 다시 힘을 얻은 농림부는 식품산업진흥법 제정을 또다시 시도했다. 그러나 식약청 폐지를 전제로 한 식품안전처 신설을 반대하는 일부 세력에 의해 식품안전처 신설을 위한 정부조직법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무산됐고 이를 계기로 복지부 등에서는 농림부의 식품산업진흥법 제정 추진에 또다시 제동을 걸었다.
우여곡절의 연속이요, 반전에 반전이 거듭됐다. 결국 정부 입법이 아닌 의원 입법으로 식품산업진흥법이 탄생한 것이다. 비록 관련 부처의 합의로 정부 입법으로 제정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나는 그동안 식품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법적근거 마련을 위해 노력해온 농림부 관계 공무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식품산업진흥법의 탄생은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전까지 노심초사하던 농림부 관계 공무원들의 식품산업 육성에 대한 의지, 농업과 식품산업의 연계강화로 농업도 살리고 식품산업도 발전시키고자 하는 신념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산업진흥법 제정이라는 첫 단추를 그들이 끼웠다면 이제 나머지 단추는 농업과 식품외식산업에 종사하는 업체들이 끼워야 한다. 말을 물가로 몰고 갈 수는 있어도 말에게 물을 억지로 먹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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