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의 상호와 간판, 그 즐겁고 시린 사연들
음식점의 상호와 간판, 그 즐겁고 시린 사연들
  • 관리자
  • 승인 2008.01.31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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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대 문화관광대 학장 최 종 문
길고 긴 설 연휴기간에 남녀노소 온 가족들과 맘 놓고 털어 놔도 뒤탈이 없을 성싶은 수다꺼리 몇 가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이야기들은 가령 모처럼의 가족모임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오곤 하는 정치이야기 따위로 갑자기 분위기가 무겁게 갈아 앉거나 썰렁해 질 때 그 수습이나 반전용으로 그야말로 '딱' 인데, 여류 언론인 장명수씨의 칼럼 '컴퓨터 보다 나아요'(한국일보2005.5.9) 중에서 아직 기억나는 것들을 내 나름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1) 환갑이 훨씬 넘은 어느 여학교 동창생들이 김수현 작가의 인기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를 올려놓고 한참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드라마 제명을 말한다는 게 '불효자는 웁니다'. 하지만 그의 실수를 지적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잘못을 고쳐 주기는커녕 모두가 불효타령,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2)'예술의 전당'으로 가기 위해 택시에 오른 노신사에게 운전기사가 행선지를 물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그런데 손님의 대답은 '전설의 고향!' 너무나 당당하고 천연덕스런 대답이 떨어지자 운전기사는 두 말 않고 몰았는데 도착해 보니 '예술의 전당'이었다.

3)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한식당 '이리 오너라'를 모임장소로 정한 어느 모임의 총무가 회원들에게 장소를 전화로 알려 준다며 느닷없이 흘러나온 말이 '게 누구 없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원 출석이었다. 그런데 전원출석은 창립총회 이후의 처음이었다나?

'이리 오너라'에 얽힌 이야기는 여류수필가 김녹희 씨가 수필 '이해 박는 집'을 통해서 전하는 것도 재미있다. 김 작가의 지인 한 분이 할머니 몇 분에게 점심대접을 하기로 하고 '이리'로 초대했다. 그런데 약속한 날 아무리 기다려도 손님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난 뒤에야 모두 도착했는데 한결 같은 말씀이 생뚱맞다. '온갖 것 다 있는데 '게 섰거라'는 눈을 씻고 봐도 없으니 웬 일? (김녹희 수필집 '신들의 정원',2007.8,계간문예)

간판의 도시에서는 튀어야 산다?

서울의 간판 수는 불법광고물 포함해서 약 150만 개라는 게 신문에 보도된 시정개발연구원의 좀 오래된 자료다.(동아일보 19990202). 서울의 총면적이 605.4 제곱 킬로미터, 인구가 10,420,924명(2007년 12월 집계)이니 간판은 면적0.40355km(0.12평) 당 1개, 인구6. 9명당 1개가 걸려 있는 셈인데 서울이 간판의 도시요 한국이 간판 공화국이랄 수 있는 근거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 만큼 먹고 살기가 쉽지 않고 생존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요 또 그 만큼 특이하고 잊혀지지 않는 상호와 간판에 대한 집념이 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외식업체의 상호, 또는 브랜드의 이미지 전략 과 간판 작전도 만만치 않다. ‘신데렐라'를 패러디 한 '순대렐라'에서는 순대 한 접시, 순대국밥 한 그릇이라도 더 팔아 보려는 충정이 묻어난다. '우짜'라는 이름의 우동자장면 전문점이 있는가 하면 '과장님 댁'도 있고 '왕의 남자'도 있다. 주경야독을 패러디 한 '주경야돈'이나 '돈벼락'같은 걸쭉한 이름의 업소도 있다.

불황에 질린 어느 포장마차 주인이 궁여지책으로 '곧 망할 집'이라는 간판을 내 걸었더니 손님들로 차고 넘쳤는데 “간판을 보고 망하기 전에 한번 도와준다며 손님들이 많이 찾아 주었기 때문”이라는 주인의 자체 경영분석에서는 차라리 따뜻하고 흐뭇한 사람 냄새가 묻어난다.

수년전부터 종로2가~3가 대로변의 포장마차 에 걸려 있던 '김떡순'이라는 조그만 간판이 '김덕순'이라는 주인의 이름 패러디가 아니라 '김밥 + 떡볶이 + 순대'의 합성어라는 걸 알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니 상호, 브랜드, 또는 간판의 뒤에 숨어 있는 전략적 의도는 또 얼마나 심장한가. 그 눈물겨운 사연은 또 어떻고….

튀는 이름의 엽기성 vs 질박한 이름의 건강성

하지만 상호와 브랜드, 또는 간판이 눈에 잘 띈다고,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그 뜻이 재미있다고 능사는 아니다. 튀는 이름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엽기적이거나 혐오적인 상호와 간판을 마다하지 않는 반문화적 행태는 '제발 이제 그만' 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1920년대의 어느 치과 이름이라는 '이해 박는 집'이나 전주대학교에서 공공디자인의 차원으로 손을 대서 마을의 이미지를 확 바꾸어 큰 화제거리가 됐던 전북 진안군 백운마을의 가게 이름들, 예컨대 흰구름 할인마트, 대광 만물상회, 덕태상회, 근대화상회 등 촌스럽고 투박한 이름이 그다지 나쁘지 않을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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