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김치는 대한민국 국민의 생활의 일부분이다. 수천 년 동안 먹어온 전통음식이면서 최근에는 과학적으로 그 우수성이 입증돼 세계 5대 식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조상대대로 먹어왔고, 지금도 밥을 먹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김치를 먹지만, 김치 때문에 배탈이 났다거나 식중독에 걸렸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발효식품인 김치는 그 자체가 과학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사스나 AI에 치료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항암효과까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도 있다.
이런 김치에 지난 2006년 기생충 알이 검출된 사건이 있었다. 기생충 알이 검출된 김치 제조 회사 16개 가운데 15개가 부도가 나고, 일본으로의 수출길이 막히는 등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김치에서 검출된 기생충 알은 인체에 전혀 해롭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오면서 주무관청인 식약청이 지나치게 과잉반응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럼에도 식약청은 그 사건 이후에 배추김치 제조 공장에 HACCP적용을 의무화 하는 법안을 만들고 이미 시행을 하고 있다.
그런데 곳곳에서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제조회사의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하도록 되어 있는데도 학교를 비롯한 관공서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HACCP을 적용하고 있지 않는 업체의 경우 입찰에도 참여시켜주지 않고 있으며, 지금까지 멀쩡히 잘 납품하던 업체조차 거래를 끊고 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영세한 업체들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HACCP 적용도 쉽지 않은 일인데 판로까지 막혀버리는 기가 막힐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HACCP 전문가에게 물었다. 김치 제조 공장에 HACCP 적용을 의무화하면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검출되지 않느냐고. 대답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검출되는 것은 원료관리가 잘못된 것이지 제조과정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 정도는 식약청도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도 의무화를 강행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전통식품은 지역마다의 특성을 갖고 있다. 4계절이 뚜렷한 기후조건과 생활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치는 더더욱 그렇다. 전통식품이 계승·발전되려면 지역적 특성이 유지 발전되어야만 한다. 지금까지 그나마 지역적 특성이 살아있는 전통식품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각 지역의 가내수공업 형태의 중소업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추김치의 HACCP 적용 의무화로 이제 그 토착 중소 김치 제조업체들이 존폐의 위기에 놓이게 됐다. 다양한 맛과 특성을 가진 전통식품이 유지 발전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배추김치 HACCP 의무화는 철회되어야 한다.
또 하나 잘못된 것은 수입김치와의 형평성이다. 지금 현재 국내 김치 소비량의 40%는 중국산 김치다. 최근 그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났고, 앞으로 가면 갈수록 비중은 확대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 이번 국내 배추김치에 대한 HACCP 적용 의무화로 중국산을 상대로 한 국산 김치의 가격 경쟁력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식약청은 김치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국산 김치뿐만 아니라 중국산 김치에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중국산 김치도 HACCP을 적용하지 않은 김치는 수입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치는 현재 전통식품으로서 농림수산식품부의 전통식품품질인증 기준에 따라 엄격한 심사를 받고 있다. 그 중에는 안전과 관련된 심사항목도 많을 뿐 아니라 HACCP 지정 선행요건과 중복되는 항목도 많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전통식품품질인증제 만으로도 충분히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식약청은 배추김치에 대한 일괄적인 HACCP 적용 의무화를 철회하고 수출용 김치 등 대량 생산체제를 갖춘 일부 대기업에 한정해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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