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소달구지
자동차와 소달구지
  • 관리자
  • 승인 2009.01.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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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조 본지 편집위원
기축년(己丑年) 소띠 새해가 밝았다. 희망찬 새해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다.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마저 국민들을 실망시키니 기댈 곳이 없어 보인다. 전 세계가 제2의 공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이 나오고 있고, 우리나라도 상반기까지는 마이너스 성장을 할지도 모른다는 대통령의 우려가 국민들의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맞이한 새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한 해를 살아야 할까. 안식년으로 삼자.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해도 좋다.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휴가를 준다고 생각해도 좋다.

경기가 침체돼 성장률이 낮아지면 모든 것이 템포가 느려지게 돼있다. 고속성장의 시대에는 밥을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고, 기회를 놓치면 경쟁에서 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9년은 그렇지 않다. 연평균 성장률이 기껏해야 1% 수준에 멈춘다는 것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문별로는 차이가 있겠지만 성장률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데 조급증을 낸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느긋하게 한번 살아보자는 말이다. 자동차를 타고 총알같이 달릴 것이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힘들게 달리다 지쳐 쓰러질 것이 아니라, 소달구지를 타고 유유자적 해보자는 말이다.

소달구지. 자동차처럼 편하고 빠르진 않지만 나름대로 멋이 있다. 덜커덩 덜커덩 삐꺼덕 삐꺼덕 거리며 가는 둥 마는 둥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목적지까지 가게 돼있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를 타면 주변 경치를 둘러 볼 시간적 여유도 없지만 달구지를 타면 금수강산 산천초목을 두루 구경할 수도 있다.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말이다.

소때 해인 기축년 새해에는 그런 마음으로 한번 살아보자. 속도를 낼 이유가 없다. 조급증을 내면서 안간힘을 써봐야 의미가 없다. 올해는 개인이나 기업이나 되새김질 하는 해로 삼으면 어떨까. 열심히,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날을 반추(反芻)해보는 것은 어떨까. 혹자는 지금처럼 처절한 시기에 그렇게 한가롭게 살 여유가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인생을 되새김질 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제2의 도약을 위한 재충전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반환점에서 처음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주말도 없고, 휴가도 없이 일하는 자신을 ‘일벌레’라며 자랑하고, 건강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주불사했던 만용에 경고가 내려진 것이다. 시속 200㎞로 달릴 때의 짜릿한 기분만 느낄 줄 알았지 소달구지를 타고 유유자적하는 즐거움은 몰랐던 탓이다. 몰랐다기보다는 알면서도 실천을 못했다는 것이 오히려 정확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외면했을지도 모르겠고.

우보일보(牛步一步)라고 했다. 황소걸음은 비록 더딘 걸음이지만 그 한걸음 한걸음은 튼실하다. 정직하다. 우직하다. 그래서 위험하지도 않다. 자동차를 타고 과속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5분 빨리 가려다 50년 빨리 간다(죽는다)’는 말이 있다. 인생을 유유자적하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 결국은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시간, 나는 마음이 무척 편안하다. 당장 죽을 중병이 아니라는 진단에 편안하고, 비록 크리스마스 이브에 입원을 해서 병원에서 해를 넘기지만 그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은 더욱 편안하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와 있다는 생각보다는 요양을 하기 위해 별장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하니 하루하루가 오히려 즐겁다. 쉰다는 것은, 정신적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이래서 좋은가보다.

어디 사람만 그렇겠는가. 기업도 마찬가질 것이다. 한번쯤은 의도적으로 브레이크를 밟고 지나온 길을 되새김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제대로 가고 있는지 자가진단을 할 수 있다. 나처럼 만용에 빠져 병원 신세를 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선 말이다. 초저성장으로 살아있어도 죽은듯한 올해가 의도적으로 브레이크를 밟고 반추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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