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과 의약품 안전관리 분리해야 하는 이유
식품과 의약품 안전관리 분리해야 하는 이유
  • 관리자
  • 승인 2009.02.0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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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식약청의 식품 담당 공무원들의 학력이 대부분 고졸입니다. 게다가 고시 출신은 한두 명에 불과하고, 그들조차 어떻게 하면 식약청을 빠져나갈 것인가만 궁리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 식약청장을 지낸 모 인사가 푸념처럼 내뱉은 말이다. 세월이 좀 흘렀으니 사정이 좀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크게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지는 않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식품과 의약품의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국가기관이다. 복지부 산하의 식품의약품안전본부로 있다가 지난 1998년 복지부 산하 ‘외청’으로 독립했다. 미국의 FDA를 벤치마킹해서 만든 기관이다. 우리나라의 정부조직법상 ‘청’은 법률제·개정권과 정책결정권, 예산편성권이 없이 상부기관이 만든 법률과 정책, 예산을 갖고 집행만 하는 기관이다. 그러니까 식품 및 의약품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과 정책결정, 예산 편성은 복지부가 하고, 식약청은 복지부의 수족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의 핵심은 식약청이 식품과 의약품 안전관리를 동시에 맡고 있다는 점이다. 복지부 행정의 무게 중심은 식품보다는 의약품에 있다. 식품산업의 규모가 커지고 식품안전문제가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된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더욱 그랬다. 부처 행정의 무게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인력과 예산의 차이는 나기 마련이다. 규모면에서 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복지부 입장에서는 식품보다는 의약품 쪽으로 인력과 예산의 쏠림현상이 있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식약청 공무원 중에서 식품을 담당하는 직원들의 학력수준이 의약품을 담당하는 쪽보다는 상대적으로 낮고, 고급인력들이 식품업무 담당을 기피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식품안전사고가 빈발해 식품안전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극에 달하게 된 것도 국민들의 식품안전에 대한 욕구는 갈수록 커져가고 있는데 행정력이 이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고급 인력이 모여들게 하고, 업무의 전문성을 높여야만 국민적 욕구에 부응할 수 있는데 같은 기관 내에서 서로 다른 성질의 업무를 담당하는, 뿌리가 다른 인력과 조직이 공존하는 이상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도 이런 점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몇 년 전에 국무조정실에서는 식약청에서 식품과 의약품을 분리하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전문가 용역을 의뢰한 적이 있고, 용역결과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 바도 있다. 이같은 근거를 바탕으로 정부는 지난 2006년에 식약청을 폐지하고 식품안전관리는 ‘식품안전처’를 신설해 전담케 하고 의약품안전관리는 다시 복지부 산하로 넘긴다는 행정체계개편안을 확정까지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과 이익집단의 반발에 부딪쳐 정부조직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식품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식품안전관리 행정체계 개편이 회자되고, 그럴 때마다 특정부처로의 일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지만 사실은 일원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식품과 의약품안전관리를 분리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핵심이다. 그런 사실을 정부 관계자는 물론 식품안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식품과 의약품의 분리를 반대하는 ‘세력’ 때문에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그동안 식품과 의약품관리의 분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 중에는 우리처럼 식품과 의약품을 동시에 관리하고 있는 미국을 핑계로 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8명의 사망자를 낸 살모넬라균에 감염된 ‘땅콩 버터’ 사건이 발생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FDA의 기능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전면적인 재검토에는 식품과 의약품안전관리를 분리하는 것이 핵심 쟁점으로 포함돼 있다. 미국 역시 우리나라처럼 식품안전관리를 의약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해왔다는 점이 두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는 이유라고 한다. 의회에서는 이미 이원화하는 내용의 법안까지 제안된 상태다.

이쯤 되면 그동안 미국을 핑계로 우리 식약청의 기능분리를 반대해온 사람들의 논리와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식약청의 기능분리 문제는 논리상의 문제라기보다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라는 결단의 문제였다. 미국 FDA를 본 따서 만든 식약청이라고 해서 기능분리 문제도 미국의 결정을 지켜보고 결정할 것이 아니라 생각대로 행동하고 결단을 내리는 소신 있는 행정가와 정치인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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