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유시민의 변신
삼성과 유시민의 변신
  • 김병조
  • 승인 2006.02.07 0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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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조 <본지 데스크/편집위원>
필자는 2월 7일 두 편의 코미디를 감상했다. 두 편 모두 블랙 코미디(Black Comedy)였다. 한 편은 ‘허리굽힌 삼성’, 다른 한 편은 ‘고객숙인 유시민’이었다. 연극의 줄거리도 비슷했다.

삼성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사재 8천억원을 조건 없이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에버랜드의 변칙증여 등 그동안의 반국민적 기업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국민들에게 사죄의 뜻으로 허리를 굽혔다. 또 삼성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로 ‘삼성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모임’도 만들겠다고 했다.

비슷한 시각 국무위원 내정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독설가 유시민’이 아닌 ‘조신한 유시민’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빽바지’에 노타이가 아닌 정장차림에, 머리는 가르마를 타 기름을 바르고, 검은 태 안경으로 공무원 냄새를 물씬 풍겼다. 말투도 180도 바뀌었다.

연극을 관람하고 난 일반 관객들의 반응이 어떨지 모르지만 필자는 상식 이하의 변신에 오히려 놀랬다. 생존을 위해 망가지는 꼴을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해 오히려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배우’들의 몸짓이 대본의 내용을 숙지하고 오랜 시간 연습을 통해 보여 지는 것이 아니었기에 어색하기 짝이 없고, 따라서 진실성이 엿보이지 않았다.

‘삼성’과 ‘유시민’ 코미디는 줄거리뿐만 아니라 캐릭터, 소품까지 닮았다. 둘 다 제 잘난 맛에 주변을 무시하는 안하무인(眼下無人)의 캐릭터다. 관객의 수준에 맞춰 관객과 호흡하는 배우가 아니라 따로 노는 광대였다. 그러면서 가면까지 썼다. 삼성은 국내 최고기업이자 세계적인 기업을 자부하면서 변칙증여로 세금을 포탈해 왔고, 유시민 복지부장관 내정자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신분이면서 국민연금 납부의 의무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그러던 두 주인공이 갑자기 엉뚱한 배역을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스스로의 잘못을 시인하면서 앞으로는 달라지겠다고 선언을 했다. 돈이 최대의 무기였던 삼성은 역시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이었고, 입이 최대의 무기였던 유시민은 입으로 이미지 변신을 꽤했다. 그런데 과연 달라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필자가 보기엔 삼성과 유시민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잠시 변신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이다. 한쪽은 변칙증여와 불법 정치자금 제공 등으로 이반된 ‘반 삼성’ 민심을 회유해보겠다는 속셈이고, 다른 한쪽은 속이 뒤틀리지만 일단 장관이 되고 보자는 꿍꿍이가 엿보일 뿐이다.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변신’이 아니라 ‘변화’이다. 말투를 바꾸고 외모를 바꾸고 아까운 돈을 내놓았다고 해서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며 서서히 바뀌어 나가는 진정한 변화가 아닌 임기응변식의 변신이 과연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삼성의 진정한 변화는 문제가 됐을 때 8천억원이라는 거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사회의 어두운 곳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삼성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요상한 단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직원 스스로 견제 세력이 될 수 있도록 노동조합 설립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변화다.
유시민 의원의 경우는 사실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유창한 말솜씨와 거침없는 독설로 나름대로는 좋은 의미에서 ‘논리의 지존’으로 적지 않은 골수팬을 확보하고 있던 그가 스스로를 ‘잡티 투성이’로 인정하고, 그간의 논리를 식은 죽 먹듯이 바꾼 사람인데 뭐라고 평가할 수 있겠는가.

기업은 사회를 지탱해 나가는 중심세력으로서의 기업윤리가 필요하고, 지성인과 공직자는 사회의 지도계층으로서 옳다고 판단할 때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굽히지 말아야 하는 지조가 필요하다. 오늘날 대재벌 삼성이 이병철-이건희의 탁월한 경영능력 덕분에 만들어졌고, 그래서 아직도 대대손손 후손에게 물려줘야할 가산(家産)으로 생각하며 진정한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삼성이나, 47년간 쌓아온 자신의 개성과 이미지를 깡그리 무시하면서 자신의 정체성마저 부인하고 있는 유시민 의원에게 우리가 더 이상 무얼 기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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