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하선정 선생님을 다시 생각한다
故 하선정 선생님을 다시 생각한다
  • 관리자
  • 승인 2009.03.1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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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조 본지편집위원
우리나라 요리연구계의 大母라고 할 수 있는 하선정 선생님이 6일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하선정 선생님과는 특별한 관계여서 선생님의 별세 소식이 더욱 안타깝다.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 3~4년 전까지만 해도 왕성한 활동을 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선생님은 주말이면 어김없이 나를 집으로 불렀다. 일 이야기, 인생 이야기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주로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나는 그저 들어주는 입장이었다. 사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시는 편이라 듣기가 지루하긴 하지만, 선생님은 돌아가신 필자의 어머니와 같은 하씨 성을 가진데다가 연세까지 같아서 어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준다는 생각으로 지루해도 그대로 다 받아 주었다.

큰 집에 함께 기거하는 사람이라곤 몸이 불편한 막내 여동생과 가정부 밖에 없었으니 얼마나 적적하셨을까. 주말마다 말동무가 되어주는 내가 기특했는지 선생님은 갈 때마다 있는 것 없는 것 챙겨주시고, 내가 술을 좋아하는 줄 아셔서 가정부 아줌마에게 양주를 사 오라고 해서는 못 마시는 술을 나를 위해 마셔 주시기까지 하셨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토요일 아침에 잠에서 깼는데 간밤에 선생님이 돌아가신 꿈을 꾼 것이었다. 영정 앞에서 울고 있는데 옆에는 사위가 앉아있는 꿈이었다. 별 희한한 꿈을 다 꾼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가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힘이 없었다. 급히 상의할 것이 있으니 지금 당장 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간밤에 꾼 꿈이 이상한데다가 선생님의 목소리까지 이상해서 급히 달려갔다. 선생님은 나에게 사위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이야기 하시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내 생각을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시던 선생님이 세상을 떠셨다. 선생님은 나에게 두 가지 큰 인상을 남기셨다. 하나는 열정적으로 일하는 여성의 상을 보여주셨고, 다른 하나는 잘못된 우리의 음식문화를 개선하고자 하는 집념과 열의였다.

선생님은 3~4년 전까지만 해도 25년 전 창간한 요리 관련 월간 잡지의 내용을 일일이 직접 챙길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선생님은 1954년 서울 종로에 국내 최초의 요리학원인 ‘수도가정요리학원’을 설립해 요리학원의 신기원을 이루셨다. 이 학원은 지금도 ‘수도요리학교’로 발전해 친동생이 운영을 하고 있다. 또 강남에는 ‘하선정요리학원’을 설립해 유일한 피붙이인 딸이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선정김치’를 비롯해 자신이 직접 개발한 가공식품을 제조하는 ‘하선정종합식품’ 회사를 성공적으로 키워 지난 2006년 CJ제일제당이 인수하기도 했다. 누가 뭐래도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요리와 음식문화 발전에 기여한 1등공신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선생님이 생전에 나에게 입이 닳도록 강조하신 말씀이 있다. 그것은 “반찬공장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음식점마다 각자 매장에서 반찬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자원낭비이자 그로 인한 음식물 쓰레기가 문제라는 것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그래서 직접 필요한 만큼 덜어서 먹을 수 있는 회전밥상을 개발하시기까지 하셨다. 반찬공장에서 국내 최고의 요리사들이 만든 반찬을 음식점에서는 필요한 만큼만 주문을 해서 사용하고, 음식점 내에서는 회전밥상을 활용함으로써 음식쓰레기를 줄이자는 생각이셨다. 음식점에서 남는 반찬을 재탕으로 사용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된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선견지명이 더욱 높이 평가된다.

그런 선생님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1960~70년대 식량이 부족해 정부가 분식장려운동을 펼칠 때 전국을 돌아다니시며 밀가루로 요리를 해먹는 기술을 가르칠 때는 돈을 많이 벌기도 했지만 돈에는 욕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저 일이 좋아서 열심히 일만 하며 바보처럼 살았다고 하셨다. 당신은 바보처럼 살았지만 세상은 그를 바보가 아니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위대한 인물로 평가할 것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선생님의 회고록을 써 드리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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