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강팀>“전통주와 전통문화를 복원해내는 마술사”
<열혈강팀>“전통주와 전통문화를 복원해내는 마술사”
  • 관리자
  • 승인 2009.06.11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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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순당 ‘전통주 복원 프로젝트’팀
우리 조상들은 계절에 따라 산에서 들에서 자라나는 다양한 재료로 술을 담가마셨다. 특히 제사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제사에 올릴 술을 집에서 빚곤 했다. 집에서 빚는 술을 가양주(家釀酒)라고 했는데 지역마다, 집안마다 술 빚는 방법이 다르고 종류도 600가지가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박정희 정권의 양곡법 시대를 거치면서 집에서 술을 빚는 일은 강제적으로 금지가 됐다. 이후 가양주 문화는 다리가 끊겼고 그 건너편에 우리가 서있다. 우리는 공산품으로 만들어지는 소주를 싼맛에 삼키거나 와인, 사케, 위스키 등 외국 술 사대주의에 빠져 살고 있다.

그런데 이 끊어진 역사의 다리를 건너려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 속에 꽁꽁 숨어있는 전통주를 어떻게든 현실 세계로 꺼내오려는 사람들, 바로 ‘우리술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국순당 연구소 사람들이다. 100여년이나 되는 이 공백을 그들이 어떻게 뛰어넘으려고 하는지 들어보자.

집집마다 다채로웠던 우리술 복원

국순당은 2008년부터 두세달에 한번씩은 새로운 전통주를 출시하고 있다. ‘우리술 복원 프로젝트’를 실시하며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잊혀졌던 우리술을 복원하겠다는 의지다. 복원된 술은 궁합이 맞는 안주와 함께 국순당이 운영하고 있는 주점 프랜차이즈 ‘백세주마을’에서 만날 수 있다. 지금까지 창포주, 이화주, 자주, 신도주, 송절주, 소곡주, 동정춘, 약산춘 8가지 술이 복원됐다.

‘우리술 복원 프로젝트’는 국순당 연구소 전체에 내려진 ‘특명’이다. 오래전부터 전통주에 대한 사명감을 가진 국순당 배중호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를 연구원들에게 주문했다. 연구원들은 3~4년전부터 전통주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수십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2008년부터 전통주를 턱턱 내놓기 시작했다. 10명의 국순당 연구소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두세달에 한번씩 전통주를 복원해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신우창 부소장이 총괄하고, 손순기 책임연구원이 뒷받침하고 있다. 지금까지 복원된 8가지 술은 권희숙 선임연구원(자주, 약산춘), 류수진 선임연구원(신도주, 동정춘), 조규종 선임연구원(창포주), 조인영 주임연구원(송절주, 이화주를 복원하고 전체적인 메뉴개발 담당), 박재승 연구원(소곡주)이 담당했다. 앞으로 이상진 선임연구원, 김기원 선임연구원, 김지윤 주임연구원이 새로운 술을 복원할 예정이다.

▶ 사진 왼쪽부터 박재승 연구원, 조인영 주임연구원, 권희숙 선임연구원
전통주에 대한 사명감으로 뛰어들어

국순당에서 11년째 술을 연구해온 권희숙 연구원은 ‘전통주’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회사라는 사명감, 그거 하나로 우리술 복원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주, 맥주가 여느 공산품보다 대량 생산되는 주류시장에서 전통주를 복원한다니 누가봐도 당장에 돈되는 일은 아니다. 역사를 편찬하는 사업에 어디 사업가가 뛰어들던가? 그런데 국순당이 스스로의 힘으로 그런 망망대해를 건너려고 하는 것이다.

또 국순당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옛날옛적에 마시던 술과 함께 전통문화도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옛 술을, 옛 음식을, 그때의 문화를 복원해 오늘날의 입맛에 맞게 다듬는 것. 그리고 이를 체계적으로 과학적으로 정리해 전파하겠다는 의미다.

국순당 관계자는 “사실 전통주를 만드는 장인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장인 혼자 전통주를 복원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일이죠. 지원체계가 부족하기 때문에 술을 만들 때 마다 맛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요. 2년전쯤에 유명한 장인의 전통주를 마셔보려고 모 박람회에 참가했는데, 술을 안주는거예요. 알고 보니 그때 만들어진 술이 너무 시게 나와서 술을 안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체계가 부족한거죠”라고 말했다.

“막걸리도 전통주라고는 하지만 예전에 먹던 그 맛인지는 알 수 없어요. 지금 마시는 건 ‘버전3’이라고 할까요? 일제강점기에 한번, 박정희 정권에 한번, 최근 화학 감미료인 ‘아스파탐’을 이용해서 한번, 이렇게 세 번 변했으니까요.” 진정한 전통주 찾기가 시작됐다.

창포주, 이화주, 소곡주, 약산춘…

전통주 복원 프로젝트의 첫작품은 ‘창포주’이다. 고려시대부터 단오에 창포로 머리를 감았다는 것은 유명하지만 술을 담가 마셨다는 것은 생소하다. 우리 조상들은 창포가 단오에 액(厄)을 막아준다고 믿었다. 지난해 6월 창포주가 나온 이후로 줄줄이 전통주가 쏟아졌다.

조인영 연구원이 복원한 ‘이화주’는 백세주마을에 상시 메뉴로 자리잡았다. 이화주는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을 정도로 걸쭉하고 벨벳처럼 매끄럽고 부드러운 촉감이 독특한 막걸리다. 여름철 갈증과 더위를 잊기 위해 마셨던 이화주는 요구르트처럼 새콤한 향과 단맛이 어우러진다.

“이화주는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호불호(好不好)가 뚜렷합니다. 제 동생은 입도 안대는 반면 백세주마을에 올 때 이화주만 찾는 사람도 있어요. 이화주가 동이나는 날에는 예약을 걸어놓고 가는 손님도 있더라고요.”

박재승 연구원은 백제시대 왕실에서 마시던 술 ‘소곡주’를 복원했다. 1500년대 말에 기록된 ‘수운잡방’에 소개된 제법에 따라 누룩을 적게 넣어 담갔다. 술의 맛이 좋아 한번 마시면 일어나지 않고 계속 마셨다고 해서 ‘앉은뱅이술’이라고도 불렸다. 그 달콤한 맛 때문에 박 연구원은 “(이성과 데이트 할 때 마시는) 작업용(?) 술”이라고 했다.

물을 넣지 않고 만든 술은 어떤 맛일까? ‘동정춘’은 물을 넣지 않고 고두밥을 발효시켜 만든 술이다. 이 술은 중국의 동파 소식의 시에 ‘좋은 이름을 붙이고 싶을뿐 술의 양은 묻고 싶지 않네’라고 기록돼 있을 정도로 양이 적은 술이다. 쌀 4.4kg에서 간신히 술 1ℓ만 나온다고 한다. 곡류의 풍미와 벌꿀처럼 입에 착 달라붙는 무게감이 일품이다.

동정춘을 복원한 류수진 연구원은 “술을 빚어보니 항아리에 뻑뻑한 고두밥만 가득차있는데, 여기서 어떻게 맑은 술이 나올까 싶어 거의 포기했었어요. 그런데 점점 고두밥이 촉촉해지더니 향긋한 향이 올라오면서 진하고 달콤한 술이 나오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권희숙 연구원은 이달에 약산춘을 복원해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 약산춘은 1827년경에 기록된 ‘임원경제지’에 따른 제법으로 복원됐고, 우리 술인 약주의 기원이 되는 술로서 의미가 크다. 문헌에서는 약산춘의 맛이 널리 알려지면서 ‘약산춘을 대접하다’, ‘약주 한 잔 하자’라는 말이 일반화돼 약주가 됐다는 설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약산춘은 조선시대 서울 지역 상류층에서 즐겨 마시던 약주로 ‘춘(春)’자를 붙인 술은 탁주보다 도수가 높고 맛이 뛰어난 최고급 명주를 의미한다. 약산춘은 쌀과 수국(물누룩)으로 빚어 다른 약주에 비해 누룩냄새와 맛이 적어 깔끔하고 깨끗하며, 저온 장기 발효를 통해 맛과 향이 은은하고 부드럽다. 정월 상해일(上亥日)에 빚어 100일 정도 발효해 늦봄이나 여름에 주로 마셨다.

이와 함께 조 연구원은 백세주마을에서 전통주와 함께 나가는 주안상을 개발하는 역할을 한다. 창포주에는 단오날 먹었던 쑥전, 어알탕을, 송절주에는 매콥쌉쌀한 맛과 어울리는 녹두전, 죽순채를, 약산춘에는 계삼채(닭, 인삼), 월과채(애호박)를 엮어 찰떡궁합을 선보였다.
“맨땅에 헤딩이란 이런 것”

전통주 복원은 속시원한 ‘해답’도 ‘정답’도 없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다. 만일 요리를 하는데 ‘차지도 덥지도 않은 곳에 음식을 놓으라’고 한다면 어디에 음식을 두겠는가? 옛 문헌에는 이처럼 애매모호한 표현이 많고, ‘물 한바가지’처럼 수치가 정확하게 나와 있지도 않아 연구원들이 애를 먹었다.

박재승 연구원은 “한번은 문헌에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의 가지를 꺾어 술을 저어라’고 써 있길래 연구소 근처 산에 올라가 복숭아나무를 찾아 다닌 적도 있고, ‘백세침숙대냉(百洗浸宿待冷:쌀을 백번 씻고 하룻밤 담가 차게 식힘)’이라고 해서 쌀을 정말 백번씻으려고 한 적도 있습니다”고 회상했다.

결국 박 연구원은 복숭아나무가지로 술을 저으라는 말은 ‘쇠로 젓지 말라’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이고, 쌀을 백번 씻으라고 한 것은 ‘쌀을 매우 깨끗하게 씻으라’는 말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또 연구원들은 옛문헌을 따라 술을 복원하더라도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없는 고충이 있다. 술을 담그면 발효시키는데 40일에서 100일은 걸리기 때문이다. 약산춘도 정월 상해일에 빚어 늦봄이나 여름에 마시는 술이다. 약산춘을 복원한 권희숙 연구원은 옛문헌에 쓰인 말을 유추해 해당 계절을 알아내고, 그 계절에 맞는 온도와 습도를 조성해 술을 여러 독 빚어 놓는다고 한다.

연구원들은 “미묘한 제법을 알아갈 때 보람을 느낀다”고 의견을 모았다. 프로젝트의 세 번째 작품인 ‘자주’를 만들 때에 권희숙 연구원은 많은 것을 배웠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자주는 맑은 약주에 꿀과 호초(후추)를 넣어 중탕한 후 차게 식혀먹는 여름 술이다. 문헌에서는 ‘쌀을 물에 3일 동안 담그라’고 했는데, 그 사이 큼큼한 냄새가 연구소에 진동을 했고, 권 연구원은 결국 창문 밖으로 쫓겨났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결과물은 매우 향긋했다. 알고보니 3일 동안 쌀에 자연유산균이 생겨 쌀의 나쁜 단백질을 먹어치워 오히려 깨끗한 맛의 술이 탄생한 것이다. 연구원들은 또 한번 옛사람들의 지혜에 감탄했다.

전통주 600가지를 바탕으로 현대적 우리술 만들 것

국순당 연구소에서 앞으로 만들어야 하는 술은 몇가지나 될까. 문헌, 구전(口傳)으로 전해지는 전통주만 해도 6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매번 국순당 연구소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진행하는데, 연구원이 총 10명이니까 한 사람이 60개의 전통주를 복원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걸 어떻게 다 하느냐고 묻자 연구원들은 빙그레 웃었다.

“전통주를 복원하면서 저희도 이게 맞는 건지 확인할 수 없을 때가 많았아요. 그래도 한작품씩 나올 때 마다 조상들의 제법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고,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데 의미가 있죠. 게다가 옛문헌에 따라 만들어낸 술을 소비자가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그 이상으로 뿌듯할 수 없습니다.

약산춘에 이어 조만간 ‘삼해주’도 선보일 예정인데 소비자들의 반응이 기대됩니다. 삼해주는 여름에 마시기 좋게 새콤한 맛이 나는 술이지요. 앞으로 600여가지의 옛술이 다 복원되면 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술을 만드는데 도전할 겁니다.”

최밍키 기자 c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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