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에는 장관도 있고, 유명한 회사의 CEO도 있고,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 여직원도 있고, 대학교수도 있다. 농업계에 종사하는 사람, 식품업계에 종사하는 사람, 외식업계에 종사하는 사람 등 분야도 다양하다. 그러나 겉으로만 보면 하나 같이 등산복 차림의 평범한 등산객에 불과하다. 모두 계급장을 뗀 상태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른 시간에 모여 조별로 김밥과 족발, 막걸리 등 먹을거리를 챙겨 산에 올랐다. 낮 기온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도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 정상을 정복했다. 칠순이 넘은 노신사는 고산증세를 호소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산을 처음 타보는 듯한 20대의 여직원은 등산화도 아닌 운동화를 신고도 뒤처지지 않았다.
가파른 ‘깔딱 고개’를 오를 때 숨이 차기는 장관이나 과장이나, 사장이나 비서나, 늙으나 젊으나 매한가지. 내가 힘들면 남들도 힘들고, 그래서 내가 쉬고 싶으면 남들도 쉬고 싶은 심정은 같으리라. 계급장을 떼고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이 숨 쉬고 행동하다 보면 공감하기 마련이다. 나는 이것이 소통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에 올라 돗자리를 깔고 힘들게 지고 온 배낭을 풀어 놓고 먹을거리를 나눠 먹으면서 각자 자기소개도 하고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는 모두가 친구가 된다. 평소 근엄해 보이던 공무원도 피로를 풀어주는 한 잔의 막걸리에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가 된다. 20대 여직원들은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의 어른들에게 평소 같으면 말조차 붙이기 어려워하지만 이날만큼은 세대를 의식하지 않고 재잘거린다. 이것이 소통의 시작이다.
안전하고 깨끗한 식품과 음식을 만들어 식품외식업계가 글로벌경제위기 극복의 선봉장이 되겠다는 업계의 뜻을 모아 ‘우리의 다짐’을 선언하고, 모두 다 함께 파이팅을 외치는 순간은 이미 화합의 시작이다. 딱딱한 회의실, 넥타이를 매고 계급에 따라 앉는 위치가 다르고, 계급에 따라 발언하는 순서와 시간이 다른 상황에서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산을 내려오면서 장관과 몇 마디 주고받았다. 업계 사람들과 이렇게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면서 허물없이 편하게 대화도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너무 좋다”면서 “앞으로 분기별로 한 번씩 하자”고 말했다. 장관은 하산 후에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행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 앞에서도 이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다음 행사가 기대된다.
행사가 끝나고 ‘산중문답’ 카페에서 순간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을 봤다. 모두들 행복한 모습들이었다. 필자에게 “수고했다”고 감사와 격려의 뜻을 전해오는 사람도 있고,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는 이미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정보를 교환하는 등 소통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행사를 기획한 필자로서는 가슴 벅차고 뿌듯하기 그지없다.
몇 년 전에 어느 정치인이 국정의 중대 현안을 놓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계급장을 떼고 논하자”고 말한 적이 있다. 계급장을 달고서는 도저히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계급장을 떼지 않고서는 눈높이를 상대방에게 맞추기가 쉽지가 않다. 우리는 오랜 세월 봉건주의와 유교사상에 물들어 알게 모르게 계급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오늘날 계층 간, 세대 간의 소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해고를 당해 졸지에 가정이 파탄에 직면할 위기에 처했는데도 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고집, 정당이기주의에만 빠져 있는 정치권을 보면서 “계급장을 떼고 논하자”고 한 그 정치인의 속마음이 어떠했는지를 더욱 절감하게 된다. 계급장을 떼고, 가식의 옷을 벗고, 똑같은 조건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면 서로 통하지 않을 것이 없는데 말이다. 농림수산식품부와 그 산하기관, 그리고 식품외식업계만이라도 이번 합동산행을 계기로 계급장을 떼고 소통하는 법을 조금이라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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