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학교급식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했던 말이 새삼스럽게 기억이 났다. 학교에서 우유를 주는데 맛없는 우유를 줘서 안 먹고 그냥 버리고 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야단을 쳤지만 한편으로는 아이의 행동이 이해가 갔었다. 집에서는 어미의 극성으로 비싸고, 아이들의 입맛에 맞는 우유를 먹다가 학교에서는 특정회사의 값싼 우유를 먹으려고 하니 내키지 않을 만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한테 “너는 학교에서 주는 우유가 맛있니?”라고 물었더니 “네”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무슨 우유를 주는데”라고 했더니 “뼈로 가는 칼슘우유”라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급식 우유의 질이 많이 좋아졌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마다 입맛이 달라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의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급식에 대해 불만족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학기 초라서 모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급식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 직업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 셋을 키우는 학부모로서 학교급식에 특별히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편이다. 학교급식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늘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밖에서 5천 원짜리 밥을 먹으면서 아이에게는 2300 원짜리(서울지역 중고등학교 급식평균단가) 밥을 먹이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2300원 주고 먹는 급식이라도 영양이 풍부하고 맛있다면 미안할 리가 없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욱 미안한 생각이 든다.
딸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는 이번에 위탁업체가 바뀌면서 복수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니 그나마 그날그날 좋아하는 메뉴를 선택이라도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가 단일 메뉴로 급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맛이 없어도, 좋아하지 않아도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왜 이래야만 될까. 필자가 보기에는 학교급식에 관한 한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학교급식을 교육적 차원으로 인식, 소관 부처도 교육인적자원부로 돼 있지만 현재 학교급식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상은 교육적 차원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급식 납품업체와 학교 관계자들과의 비리 사례 등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비교육적인 악영향은 차치하고라도 급식비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급식장에서 쫓겨나는 사례 등은 학교급식이 얼마나 잘못 진행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업체들은 낮은 급식단가로 인해 아이들에게 맛있고 영양이 듬뿍한 음식을 제공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현실이고, 아이들은 뭐가 뭔지도 모르고 맛이 없거나 좋아하지 않는 메뉴라도 주는 대로 먹을 수밖에 없고, 부모들은 자기네가 밖에서 먹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싼 급식비를 내고 있으면서도 급식의 질이 낮다는 불평만 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학교급식의 현주소다.
학교급식은 미래의 국가 주역이 될 아이들 704만 여명이 무려 12년간이나 이용하는 서비스다. 본지 이번 호 1면에 소개된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 한 아이들이 일생에 처음, 그리고 앞으로 12년간 이용할 학교급식을 처음 제공받는 모습을 보면서 개학 시즌에 과연 정부 당국자들은 학교급식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소관부처인 교육인적자원부 내에서도 학교급식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고작 1~2명에 불과하고, 각 시도별로도 마찬가지니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라고 해봤자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이 뻔하다. 하지만 학교급식을 더 이상 교육부 차원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범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으며, 정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 것이 그 개선책의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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