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예전에 뭐가 있던 자리인데’ 라고 말할 수 있게 되면 그때부터 뉴요커라는 얘기. 그러나 서울러(Seouler: 서울시민을 표현한 신생어)는 이런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서울러들은 동네의 이름대신 대기업의 이름을 택한다. 자신들이 깔고 앉은 땅의 기억을 지우는데 모두들 필사적이다. 서울에선 “아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는 군 멋진데”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그것이 서울러라고 한다.
단편집 ‘스테이’에서 김영하 작가의 ‘서울 단기기억상실증’ 중 일부 발췌문이다.
씁쓸한 글이지만 아쉽게도 정부도 서울러가 되가는 모습이다.
최근 정부는 한식세계화 추진을 위해 스타한식당 육성 방안으로 고급한식당 거리를 조성하고 삼청동, 인사동 등을 고급 한식당 거리로 조성하겠는 계획안을 내놨다.
그런데 정작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최근 피맛골을 가보았다. 피맛골은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주상복합 건물들로 모두 바뀌고 있었다. 자그마치 600여년의 역사를 가진 한식의 대표 거리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주상복합 건물들의 초입에 걸려있는 피맛골이라는 입간판은 무색해 보이고 그 어디에도 피맛골에 대한 옛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진정성은 느낄 수 없었다.
심지어 1945년 광복 직후 문을 열어 서울 종로 피맛골의 선술집 골목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해온 ‘청일집’은 새 건물로 이사하면서 기존에 쓰던 막걸리잔과 주방용품 등 기물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해 옛 모습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이러한 재개발 파동은 근처인 무교동과 다동 일대로 퍼져 이들 거리 역시 조만간 자취를 감출 예정이다.
2005년 미국의 문화비평가 스콧 퍼거슨도 이러한 서울시의 피맛골 정책을 ‘피맛골의 강간’이라고 질타를 하며 “한국이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는 최상의 방법은 피맛골 같은 랜드마크를 파괴하고, 영혼이 없는 고층건물을 세우는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다행히 서울시도 마찰이 있었는지 이달부터 피맛골 고유의 선형을 보전하면서 구간별로 이야기가 있는 특화거리로 재구성시키겠다며 재개발 방침을 바꿨다.
그렇다고 한들 이미 변해버린 피맛골의 옛 분위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트렌드 세터들의 본 고장인 뉴욕도 최근 재개발을 실시하면서 ‘각 지역의 특색을 인정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서울시 역시 지역의 특색을 먼저 인정하고 보전 및 개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먹거리에 대한 우리 내 서민의 정취가 묻어나 있는 맛 골목 또한 그 특색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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