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고령지농업연구센터 연구관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보통메밀을 가지고 국수나 부침을 해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쓴메밀은 주로 해발 2천m 이상 되는 중국에서 기원하여 현재 중국, 네팔, 부탄 등에서 주로 이용되고 있는 종으로 우리나라에는 최근에야 알려지기 시작한 메밀종이다.
메밀하면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 떠올려질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정서적으로 매우 친근한 작물이다. 예로부터 메밀은 ‘오방지영물(五方之靈物)’ 즉 다섯가지 색을 가진 영스러운 물건이라 하여 매우 귀하게 여겨져 왔다.
배고픈 시절 메밀은 척박한 땅과 기후에서도 잘 자라 주었고 병충해에도 강해 구황작물로 제격이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메밀이 현대인들의 고혈압, 비만, 당뇨 등과 같은 생활습관병에 효능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매우 유익한 식품소재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메밀은 우선 단백질 함량이 12~15%로 곡물 중에서도 매우 높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조성 또한 우수하여 다른 곡물에 부족하기 쉬운 라이신이나 트립토판과 같은 필수 아미노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메밀에 포함된 리파제는 지방을 흡수·분해하는 효과가 있으며 섬유소가 많아 변비, 치질, 대장암 및 비만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쓴메밀도 보통메밀과 그 영양성분이 크게 다르지 않다. 타 곡식에서 보기 드물게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고, 지방은 80% 이상이 불포화지방산이다. 8가지의 필수 아미노산을 포함하여 19가지의 아미노산, 비타민, 10가지의 광물질 영양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다.
메밀의 또 다른 영양학적 가치는 바로 강력한 항산화물질인 ‘루틴’ 성분에서 찾을 수 있다. 루틴은 식물체 스스로가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물질인데, 자외선이 강한 고산지대에서 진화된 쓴메밀의 루틴함량이 보통메밀에 비해 매우 높은 것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본다.
메밀의 ‘루틴’은 인체에 해로운 과산화물질의 생성을 억제하고 모세혈관의 탄력성을 조절하여 혈압을 낮추어 준다. 또한 혈액 중 나쁜 콜레스테롤(LDL)은 낮추고 좋은 콜레스테롤(HDL)을 높혀 고지혈증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쓴메밀 품종 ‘약선’의 루틴함량은 보통메밀에 비해 부위에 따라 20~70배 이상 높아 메밀이 가지는 약리적 효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쓴메밀은 보통메밀에 비해 쓴맛이 강하지만 요리할 때 열을 가하게 되면 쓴맛이 대부분 제거되기 때문에 식품으로 이용하는 데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최근 농촌진흥청에서 수행한 동물실험 결과 쓴메밀 새싹 추출물을 당뇨쥐에 투여하고 30분 후 혈당을 측정해 보았을 때 제2형 당뇨에 있어서는 추출물을 투여하지 않은 것에 비해 약 76%의 혈당저하 효과가 있었고 인슐린 분비가 되지 않는 제1형 당뇨에서도 대조구에 비해 25%의 혈당저하 효과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포도당의 분해, 이동 및 인슐린 분비와 관련된 조직의 유전자발현 실험으로 쓴메밀 ‘루틴’이 어떻게 당뇨를 개선시키는지에 대한 메카니즘도 밝혀냈다. 이 밖에도 쓴메밀의 루틴은 노화관련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고 피부세포의 활성을 증가시킴으로써 노화억제나 피부미백에 효능이 있음을 실험을 통해 입증한 바 있다.
쓴메밀은 보통메밀이 가진 풍미와 영양적 가치는 그대로이면서 강력한 항산화물질인 ‘루틴’성분이 증진된 기능성 메밀이다.
아직은 생소한 소재이지만 그 식품학적 가치나 각종 질환에 대한 효능들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최근 보통메밀을 대체하여 기능성을 높힌 쓴메밀 국수, 차, 컬러새싹 등을 개발하였고 이 밖에도 음료, 막걸리, 베이비스프라우트 등에 대한 개발도 진행 중에 있다.
또한 식품소재 뿐 아니라 고혈압, 당뇨, 치매예방 등 다양한 의약품소재와 미백 등 기능성화장품 개발을 위한 연구도 추진 중에 있으며 향후 식의약 산업에 새로운 블루오션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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