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혼례(婚禮)
<월요논단> 혼례(婚禮)
  • 관리자
  • 승인 2012.10.1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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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미 북촌음식문화포럼 대표
작금 일부 계층에서만 이루어지던 호화 결혼식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일어나는 폐해로 인해 이에 대한 논의가 연일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이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동참하고 있다. 일생에 가장 성스러워야 할 결혼식이 위세를 과시하고 물질을 자랑하는 듯하는 졸부들 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을 부끄럽게 알아 왜곡된 결혼문화를 지양하고 좀 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데 뜻이 있을 것이다.

또한 성인이 되어도 경제적으로 자립 못하는 부메랑 세대인 자식을 돌보고 자녀 결혼비용까지 부담하느라 수천만원의 빚까지 지게 되어 자신의 노후 준비를 못하고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는 부모 세대의 존재 때문일 수도 있다. 이미 한국의 노인빈곤률은 45%로 OECD 국가 중 제 1위이다.

결혼과 출산연령이 점점 높아지고 수명 100세 시대를 맞이할 때 국가가 노인문제를 해결하는데도 한계가 있고 자식세대의 부담도 커진다. 노인 빈곤이라는 국가적 재앙을 막고 자식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식에게 쏟아붓는 금전적 지원이 자식에 대한 부모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당연하다고 받아드리는 자식들 간에 이루어지는 잘못된 가족문화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혼례는 일생에서 가장 기쁜 길례(吉禮)일 뿐 아니라 대례(大禮) 중의 대례로 소년·소녀가 자라 성인이 되고 신랑·신부가 되어 남편과 아내라는 새로운 지위를 얻는 중요한 의례이다. 이 귀중한 날 허례허식에 사로잡혀야 되겠는지 조선조 혼례의식의 사상을 통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단군신화의 곰과 범이 신웅(神人 환웅)이 준 마늘 20개와 쑥 한 줌을 삼칠일 동안 공식하므로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 이는 신이 내린 신령한 음식을 먹음으로 신의 축복 하에 미성숙 상태에서 성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왕조의 일관된 지도이념인 유교는 BC 108년경 한무제가 한사군을 설치할 때부터 한반도에 유입되었으나 태종 이후 조선조의 종교로 군림하면서 모든 의식은 주자가례를 기반으로 예치주의를 장려해 가례가 사회적 규범이 되었다. 그러나 혼속에서만은 주자가례의 친영례(시집살이)가 수용되지 못했다. 이는 부여의 혼속에서부터 고구려 시대 이후 17세기에 이르기까지 가장 보편적인 혼례형태였던 처가살이혼이 그 이유라 볼 수 있다.

중종 12년에 치른 문정왕후 혼례 때 친영지례를 행했으나 이는 왕가에서만 지켰을 뿐 사대부와 서민은 서류부가(처가살이)를 지켰다. 이에 명종대에 이르러 서화담 등 일부 사대부 사이에서 처가살이 혼과 친영의 예를 절충한 반친영의 예가 시작되어 오늘까지의 혼속을 이루고 있다. 『의례』 「사혼례(士婚禮)」에서 의혼, 납채, 납징, 고기, 고유, 임헌초계, 동뢰, 예녀우방중(醴女于房中), 조현의 절차를 밟았다.

납채 때 신랑은 신부 아버지에게 절개의 상징인 살아 있는 기러기를 드리고, 임헌초계는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러 가기 전 사당에서 신랑의 아버지가 조상신에게 술을 올리고 신랑에게 술을 내리며 훈계하는 예식을 치렀고, 동뢰연 또한 음복을 통해 조상신으로부터 축복을 받아 성인의 도를 갖춘 신랑과 부덕의 능력을 갖춘 신부로 재탄생되고, 합근배로 술을 마시는 의례와 어린 돼지고기를 안주로 먹는 의례를 통해 마음과 몸의 결합을 완성시키고 있다.

또한 신부상의 음식은 신랑의 일가친척이, 신랑상의 음식은 신부측 일가친척이 나눠 공식하므로 한가족을 이루는 예를 행한다. 동뢰연이 끝난 후 시부모를 뵈러 가기 전 예녀우방중이라 하여 부모가 딸의 방에서 딸과 함께 식혜를 들며 부녀의 도리와 경계를 알리는 예를 지켰다. 그 다음 날 시부모를 뵐 때(조현) 음성의 식품인 조율(대추, 밤)은 시아버지(양)께, 양성의 식품인 단수포(생강과 계피가루를 뿌려 길게 말린 포)는 시어머니(음)께 폐백으로 올렸다. 이러한 폐백음식에는 시아버지께 “공손하게 갖추어 진심어린 마음을 많이 드린다” 시어머니께 “공경하고 노력하여 배우고 익히며 장수를 빌어 올린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전통의 혼례예식에는 음복과 공식의 과정을 통해 조상신으로부터의 축복과 함께 독신의 세계에서 아내, 남편, 어머니, 아버지, 며느리, 사위라는 새로운 사회적 단위세계로 이행되는 의례절차의 경건함과 신랑신부를 둘러싼 두 가문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삶의 질서로 이행되는 장엄함이 녹아 있다. 우리 전통 혼례의식에 깃들여있는 정신을 안다면 외화내빈의 화려한 출발보다 내실 있고 가치 있는 결혼문화가 정착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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