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주몽을 탄생시킨 술
<월요논단> 주몽을 탄생시킨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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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0.27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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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철 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술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가공음료이며 술의 발효기술은 오늘날 생명공학(Biotech nology)의 모체가 되는 것이다. 술의 제조기원은 오래된 문화민족마다 신화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곡주를 개발하였다는 이집트의 오시리스신, 포도주를 처음 빚은 희랍의 박커스신, 감로주를 만든 인도의 소마신과 더불어 중국에서는 우(禹)임금의 딸 의적(儀狄)을 주신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술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이보다 훨씬 이른 시기로 본다. 동아시아에서는 기원전 6천년 전후 대한해협 주변에서 시작된 원시토기문화시대에 술의 발효기술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토기를 사용하면서 젖은 알곡이나 근채류를 담아두면 고온 다습할 때에는 곰팡이가 자라 전분을 당화시키고 여기에 공기중의 효모가 들어와 자라면서 알코올이 자연적으로 생성된다. 사람들이 향긋한 냄새에 먹고 취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발견하고 이 발효기술을 즐겨 발전시켰을 것이다.

초기에는 아마도 여과도 하지 않은 걸죽한 죽 형태의 알코올 음식이었을 것이다. 한반도 해변가에서 채집생활을 하던 수렵인들이 술을 만들기 위해 알곡을 생산하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어 곡류를 재배하는 농업의 발전을 촉진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에서 농업이 시작된 것은 기원전 3천~4천년 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점차 누룩을 사용하게 되고 직조기술이 발달하면서 천으로 여과하여 맑은 술을 만들었을 것이다. 시경(詩經)에 요주천종(堯酒千種)이라 적혀 있는 것을 보면 기원전 2천년경의 요(堯)나라 시절에 이미 수많은 종류의 술이 빚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어에서 주정을 스피릿(spirit, 영혼)이라고 하는 것을 보아도 술은 단순한 음료라기보다는 인간의 정신세계와 깊은 관련이 있는 물질임을 알 수 있다. 신에게 바치는 제사에 술이 빠지는 법이 없고, 연회와 애경사에 술은 항상 같이한다. 인류 역사에도 술이 미친 영향은 대단히 크다.

삼국유사와 비슷한 시기인 고려 충렬왕 13년(1287년)에 이승휴가 저술한 ‘제왕운기’에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탄생설화가 나온다.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물을 관장하는 신 하백(河伯)의 세 딸을 초대하여 술을 취하도록 마시게 하니 그녀들은 놀라 달아났으나 큰딸 유화는 해모수에 잡혀 그날 밤 술에 취해 해모수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 술에 얽힌 하룻밤의 인연으로 유화가 잉태하여 낳은 아이가 바로 고구려를 창건한 주몽이다.

우리 역사에는 유난히도 술과 얽힌 이야기가 많다. 김부식의 삼국사기(1145년)에 의하면 삼한시대에는 이미 전통곡주 발효기술이 정착되어 제천, 영고, 동맹 등 제 행사에 밤낮을 술과 노래와 춤으로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청주(맑은술)의 음용이 상류사회에 성행하였으며. 고구려 낙랑주법이 신라주를 완성시켜 당나라에까지 수출하였다고 한다. 아직 증류법이 알려지지 않은 신라에서 만든 술이 당나라에 까지 수출되려면 청주의 알코올 농도가 꽤 높은, 아마도 18% 정도의 고급 청주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역사서인 고지기(古事記)에 의하면 3세기경 응신천황(應神天皇) 시절에 백제에서 인번(仁番, 수수보리)이란 사람이 와서 누룩을 써서 술을 빚는 법을 가르쳐 일본의 주신(酒神)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 경도의 마쓰이진샤(松尾大社)에는 주신을 모시고 있는데 신주는 신라에서 귀화한 진씨(秦氏)라고 한다. 매년 이 지역의 청주업자들이 이 신사에 모여 술이 잘 만들어 지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술의 역사는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쇄와 함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문헌들에는 300종이 넘는 술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양조곡주와 증류주, 약용가향곡주들이 가정마다 자유로이 제조 음용되었으며, 일본, 중국등지로 수출되었다. 그러나 일제시대에는 조선총독부령으로 주세령이 공포되어 한국술의 제조가 단속의 대상이 된다.

해방과 6·25 동란을 거치면서 식량이 부족하게 되자 양곡관리법으로 탁약주 제조에 쌀의 사용이 금지되고 밀가루로 대치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야 쌀의 사용이 다시 허용되고, 요즘은 한국의 막걸리가 일본을 열광시키고 있다. K-팝과 어울려 밤낮을 음주가무하는 한국인의 얼이 세계를 사로잡는 시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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