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뿌리
<월요논단>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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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1.1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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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 미 북촌음식문화포럼 대표
산림경제를 지은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은 제철에 제 맛을 맛 볼 수 있는 시식락(時食樂)을 인생 8대 즐거움 가운데 하나로 손꼽았다.
우리의 세시기를 보면 기후가 변하는 시간의 마디인 24절기마다 특유의 시식들이 즐비하여 이를 즐기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일년 열두달 사시사철 온실재배 등으로 모든 음식물을 계절과 관계없이 항상 먹을 수 있어 철철이 많던 그 시식을 즐길 수 있는 멋도 상실한 채 삭막하게 살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이 성립하기 이전부터 몸의 적응력을 키우기 위해 음양오행설에 근거한 고유의 시식과 절식을 통해 음양오행의 개념을 적용시켰다. 이는 동양철학의 우주만물이 운행되고 유지되는 법칙은 음양중, 오행(목, 화, 토, 금, 수) 육기(간장, 담낭, 심장, 소장, 비장, 위장, 폐, 대장, 신장, 방광, 심포, 삼초의 육장육부) 육음(풍, 한, 조, 습, 서, 화) 의 상생, 상극, 상화에 의한다는 우주관에서 출발한 것으로 우리 생활에 깊숙하게 스며있었다.

또한 우리의 음식문화는 평상시의 건강관리를 일상의 식생활에서 식품을 선택해 병을 예방했다. 또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식품 자체가 갖고 있는 성분이나 약리효능 또는 용도에 따라 보기, 보혈, 보양, 보음 음식으로 분류되는 보양양생식품을 발달시켰다.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의약으로도 못 고친다고 해 질병 치료에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허준의 ‘동의보감’에서도 음식과 약으로 병을 치료하는데 몸을 편안히 하는 근본은 음식이라 했다. 또한 “임금이나 부모에게 질병이 있으면 먼저 음식으로 치료하고 그래도 낫지 않으면 약을 쓴다”하여 음식을 질병치료에 우선했다.

동의보감에 의한 우리 음식법을 몇 가지 살펴보자. 봄철에 완두콩밥, 애탕국 등을 즐기고 푸른 채소를 많이 먹으라 했다. 이는 봄철에 겨울에 축적된 기운으로 양의 계절을 만나 솟구치는 기운이 넘쳐 간장부의 기능이 떨어져 생리적 활성이 왕성해 과로로 인한 병 즉 춘곤증, 봄을 타는 것 등의 현상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여름은 왕성한 열기가 발산하므로 몸에 열이 많이 생기는 병이 생길 수 있어 추운 겨울을 이겨낸 보리밥으로 열기를 내리고, 풋고추, 상추, 쑥갓, 취나물 등 쓴 맛이 나는 채소들을 먹었다. 또한 외부 기온이 더우므로 표피 쪽으로 열이 몰려 몸의 내부는 차서 토사, 곽란, 소화기병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이열치열의 뜨거운 음식을 먹었다. 인삼, 황기, 보신탕 등이 계절음식인 이유이다.

우리가 여름철 일광욕을 많이 즐기는데, 밀이 주식인 서양인은 속이 뜨겁고 피부가 차므로 일광욕을 해도 피부에 화상으로 물집이 생기거나 벗겨지는 일이 없으나 쌀이 주식인 동양인은 속이 차고 피부가 뜨거우므로 일광욕시 피부가 화상을 입어 벗겨지는 경우가 많다.

가을은 곡식과 열매를 맺기 위해 끌어 모으는 성질이 있고 생리적 활성의 축소로 해수, 천식 등의 병이 생기기 쉽다. 따라서 폐와 대장에 좋은 매운맛의 음식을 먹게 했다. 가을 무는 인삼과 바꾸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듯이 매운맛의 대표적인 음식이 무로 가을에 가장 좋은 음식재료다. 매운 맛의 속성을 가진 배숙, 생강차 등도 같은 이유로 많이 먹었다.

겨울은 끌어내리는 성질이 강하고 몸에 열이 부족해 한기를 느끼는 병이 많아 일반적인 감기, 노인해수, 천식, 신장병, 대사질환에서 오는 쇠퇴 등의 병이 발병하기 쉽다. 겨울에는 짠 맛 성질을 가진 김, 파래, 다시마, 미역 등과 서리태, 서목태, 검은 깨 등의 음식을 먹음으로 신장과 방광을 보해준다.

동식물은 각자 나름대로의 고유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데 약성이 강하고 재배, 채집이 어려운 것은 약초가 됐고 약성이 약하고 재배, 채집이 쉬운 것은 식품이 됐다. 식품마저도 고유의 기운이 있어 상대적 기운을 가진 식품과 혼합해 중화시켜 사용하기도 했다.

우리 음식문화 속에 녹아있는 질병치료가 아닌 질병예방의식이 원칙의 뿌리를 찾아 정리하고 채소, 보양식이라는 우리말을 두고도 야채, 약선식이라는 일본어를 남용하는 현시점에서 음식용어의 뿌리를 찾는 작업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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