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식품안전관리의 권한과 책임
[월요논단] 식품안전관리의 권한과 책임
  • 관리자
  • 승인 2012.12.1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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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식품안전관리는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식품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일이므로 도시화, 세계화 시대에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농수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이 일을 나누어 수행하도록 하고 있으며, 검찰권에 해당하는 행정처분권과 회수명령권을 이들 기관에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식품안전관리 기관은 과학적 근거에 의한 위해평가 분석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안전관리 기준을 설정하고 위해관리를 하는 것이다.

위해관리 과정에서 과학적 근거가 흔들리면 관리기관은 엄청난 과오를 범하게 되고 국민의 불신은 물론이려니와 국민 건강과 국가 경제에 큰 피해를 주게 된다. 우리사회는 불행하게도 과학적 근거를 상실한 식품안전관리 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특히 국회의원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관리기관에 부당한 압력을 가해 과학적 판단을 흔들리게 한 경우가 적지 않다.

김치 기생충알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 국회의원이 김치의 납 오염 방지를 강력히 주장해 김치의 납 허용기준치가 설정되었다. 김치원료나 제조과정에서 납이 오염될 개연성은 거의 없으므로 납 허용치를 설정할 필요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이 기준치가 만들어진 것이다. 불필요한 기준을 만들어 김치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김치를 납이 오염될 수 있는 식품으로 인식하게 만든 대표적인 사례이다.

고춧가루의 쇳가루 오염문제를 어느 국회의원이 들고 나와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결국 식품의 쇳가루 허용치 10ppm이 설정되었다. 식품의 제조 분쇄공정에서 일정 크기 이하의 미세한 쇳가루가 혼입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며, 쇳가루는 소화 흡수되지 않고 배설되므로 어느 나라도 이런 기준을 만들지 않고 있다. 식품 중에는 아무리 쇳가루 제거장치를 많이 부착해도 잘 제거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외국에서 수입하는 원료 중에는 국내 기준치를 초과하는 경우가 많다. 수입품의 쇳가루 관리는 허술하고 국산 제품만 강요하는 역차별이 발생하고 있다.

라면의 벤조피렌 사건은 19대 국회에서 일으킨 또 하나의 뼈아픈 사건이다. 한 국회의원이 기준치를 초과한 가츠오부시 원료를 라면스프 제조에 사용한 것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식품위생법 주원료 기준에는 복원된 양을 기준으로 함량을 평가하도록 되어 있다. 식약청은 그동안 이러한 위해평가 기준에 따라 문제 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의 말 한마디에 회수명령을 내리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식품안전관리를 하는 기관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국민의 당혹감과 정부에 대한 불신은 물론이려니와 이로 인해 중국, 대만 등 세계 시장에서 우리 라면제품이 회수처분 당했다. 라면뿐만 아니라 한국식품 전체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다. 그런데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국회의원들의 면책특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회의원들의 무책임한 발언으로 선량한 국민과 기업이 고통 받고 있다. 이들의 무소불위한 권한이 식품안전관리 기관을 주눅들게 하고 정부 정책을 왜곡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 우리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말 한마디에 곤두박질치는 식품행정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식품안전관리의 과학화를 위해 학계와 업계가 연구하고 저술하고 세미나를 수없이 열었어도 우리 정부 담당자들의 자세가 바뀌지 않고 있다. 식품안전관리를 위해 박사학위를 가진 최고의 과학자 수백명이 관련기관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국회의원 말 한마디에 힘없이 무너지는 이들을 보면서 절망감과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관리기관이 과학적으로 무장되어 어떠한 외부의 오판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능력이 없고 책임 있는 행정을 못한다면 그들이 가진 관리권한 또한 인정받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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