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고도의 과학기술시대에 산다는 것
[월요논단] 고도의 과학기술시대에 산다는 것
  • 관리자
  • 승인 2012.12.14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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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우리는 지금 고도의 과학기술시대에 살고 있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전기로 어두운 밤을 대낮같이 밝히고, TV로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현란한 색채 그대로 안방에서 보고 있다. 컴퓨터를 켜면 끝없는 정보의 바다 속을 유영할 수 있고, 지구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과 마주보고 대화를 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기적 같은 일들이 어떤 원리로 어떻게 가능한지 알기는 쉽지 않고 알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이 편리함을 받아들이고 즐기면 된다.

그러나 고도의 과학기술 시대에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고 이해해야 하는 사항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식품의 위해물질 검출에 관한 사항이다. 필자가 대학 시절이었던 1960년대 초에는 분석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식품에서 분석할 수 있는 성분이 대략 30여종이었으며 밀리그램(㎎) 단위로 분석할 수 있었다. 이때에 식품에서 수은이 검출되었다면 밀리그램 수준의 농도로 검출된 것이므로 인체에 해로운 것이며 먹어서는 안 된다. 즉 위해성분(hazard)의 검출은 대부분 위험(risk)한 것이었다.

분석기술이 점차 발달하여 1980년대에는 식품에 들어있는 성분을 마이크로그램(백만분의 1그램) 수준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되었고 검출되는 성분도 100여종으로 늘었다. 이때에는 독성물질 중에 백만분의 1그램 농도로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성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성분도 있다. 그래서 위해성분이 검출되면 이것이 위험한 수준인지 아닌지 위해평가를 거쳐 사용여부를 결정했다. 사람들은 위해평가의 결과를 기다려야 했으므로 검출된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하게 된다.

2000년대는 분석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첨단과학기술 시대이다. 식품에 들어있는 거의 모든 성분을 나노그램(10억분의 1그램) 수준으로 분석할 수 있는 시대이다. 분석기에 시료 한 방울을 넣으면 400여개의 성분 함량이 순간적으로 분석되어 수치가 나오는 기적 같은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분석 장치는 식품에서 영양성분, 맛성분, 중금속, 독성물질, 알레르기 물질, 발암물질 등 자연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화학성분을 극미량까지 분석해 내고 있다.

식품은 자연에서 채취하여 저장 가공된 물건이므로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화학성분이 직간접으로 혼입되어 있다. 이중에는 밀리그램 수준으로 들어있을 때 인체에 뚜렷한 위해를 나타내는 성분들이 있고 일부는 마이크로그램 단위일 때도 유해한 성분들이 있다.
그러나 나노그램 수준에서 해를 줄 수 있는 극독성물질은 그리 흔하지 않다. 다이옥신이나 일부 화학 합성품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므로 자연계에 존재하는 일반 성분들이 나노그램 수준에서 검출되었다고 하는 것은 인체 위험성과는 대부분 상관없는 일이다. 이것을 문제시하면 먹을 수 있는 식품이 없게 된다.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식품안전성 논란은 1960년대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검출은 위험’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통조림 포르말린 사건, 아크릴아마이드 사건, 트랜스지방 사건, 최근의 벤조피렌 사건까지 예전에는 검출되지 않아 마음 놓고 먹던 것을 분석기술이 발달하면서 식자우환이 된 것이다. 고도의 분석기술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에피소드들이다.

이제 검출은 위험이라는 등식을 버려야 한다. 유해물질이 검출된 농도가 위험한 수준인지 아닌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식품의 위해평가기술은 1995년 유엔 FAO/WH O 전문가 자문위원회에서 공식화된 이래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과학적 안전관리를 하는 나라이다. 정치인들과 언론계에서 지나친 공명심으로 식품안전의 문제를 섣불리 제기하는 관행을 삼가야 한다.

식품안전의 문제는 고도의 과학기술과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사안으로 감상적이거나 하루 세 끼 밥을 먹으니 식품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덤벼들면 큰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잘못 거론된 식품의 안전성 문제는 국민을 불안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가는 우리나라의 식품산업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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