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밥 예찬론
[월요논단] 밥 예찬론
  • 관리자
  • 승인 2013.01.25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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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나는 식당을 선택할 때 특히 밥맛이 좋은 집을 고른다. 쌀밥 특유의 고소한 향기와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적당히 차진 밥은 다른 어떤 반찬보다 나의 식욕을 돋우고 한 끼 식사의 만족감과 쾌감을 준다. 학교 근처에 이런 집이 있다. 도자기로 만든 품격 있는 밥주발에 밥솥에서 갓 퍼낸듯한 향긋한 밥 한 사발에 맛깔스런 김치와 각종 반찬이 고루 나온다. 밥의 양에 맞춰 반찬을 고루 먹으면 남는 음식이 별로 없다. 이 집은 내부 장식도 과하지 않으면서 고급스런 품격이 있어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밥맛과 김치 맛이 좋은 식당을 골라 찾아가는 것이 나의 식도락이지만 가끔 급한대로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면 영낙없이 기분이 상해 나온다. 우선 싸구려 스테인레스 주발에 언제 퍼 담았는지 모를 밥을 스티로폼으로 만든 보온통에서 꺼내 가져다주는 것을 보면 식욕이 싹 가신다. 심한 경우는 그릇 가장자리에 꾸둘꾸둘 굳어있는 밥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고기를 많이 먹게 할 요량으로 그릇에 반도 차지 않는 밥그릇을 대할 때면 허탈감마저 느낀다. 밥을 마치 기름진 음식을 먹기 위한 부식 정도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밥을 이렇게 홀대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 시작은 아마도 6·25전쟁을 겪으면서 극심한 식량난으로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에 의존하면서부터라고 생각된다. 전쟁의 극한 상황에서 우유죽 배급으로 허기를 면하면서 유당불내증이 심해 우유를 먹지 않던 민족이 우유를 먹는 민족으로 바뀌었고, 전후의 식량부족 사태를 분식장려 정책으로 넘기면서 밀가루 음식이 보편화되었다. 그 시절 많은 영양학자들이 밀가루 음식의 우수성을 홍보하기도 했다. 그 결과 1970년~80년대에 빵과 라면, 서양식 과자의 소비가 급격히 늘었다.

두 번째 밥의 수난은 통일벼의 보급이었다. 재래종보다 30% 이상 증수되는 통일벼를 개발하여 쌀 자급의 숙원은 풀었으나 인디카계열 장립종을 모본으로 개발한 통일벼는 부슬부슬한 안남미에 가까운 밥맛으로 소비자들의 밥에 대한 기호를 크게 떨어뜨렸다. 1980년~90년대에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육류와 우유류의 공급이 원활해지면서 맛없는 밥 대신 고기와 기름진 음식을 더 먹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통일벼 생산을 중단하고 새로 육종한 단립종 다수확 품종으로 대체하였으나 잘못 들어선 소비자들의 식습관을 되돌리지 못했다.

2000년대에 들어와 기름진 동물성식품의 과잉 섭취로 비만과 성인병 환자가 크게 늘어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쌀밥을 적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쌀밥의 양을 늘리고 육류와 기름진 음식, 쥬스와 커피, 청량음료 같은 단 음식을 줄여야 한다. 쌀밥으로 배를 채워 식염과 콜레스테롤, 포화지방 등 몸에 해로운 성분이 많은 고기반찬의 섭취를 줄여야 한다. 실제로 쌀의 소비량이 줄면서 비만율과 성인병 환자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미국 듀크 의과대학에서는 ‘쌀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70년째 운영하고 있다.

다이어트를 위해 쌀밥의 섭취량을 줄이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고기와 기름진 음식을 잔뜩 먹고 나중에 쌀밥을 조금 먹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식습관은 대단히 위험하고 건강에 나쁜 식습관이다. 충분한 양의 쌀밥과 반찬을 고루 놓고 균형 있는 식사를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쌀밥은 염분이나 콜레스테롤, 포화지방이 거의 없고 비교적 낮은 열량과 적당한 소화 흡수속도를 가진 순수한 음식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주스나 커피, 청량음료 대신 순수한 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쌀밥에 김치와 콩반찬(두부, 콩나물, 된장찌개), 그리고 숭늉을 마시는 식습관은 우리가 물려받은 최고의 건강 식사법이다.

우리의 건강을 지키고 건전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물려받은 식습관을 지켜나가야 한다. 외식업계가 먼저 이 일에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 밥의 섭취량을 늘리기 위해 밥맛이 좋은 쌀을 구입하고 맛이 좋은 밥과 김치로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식당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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