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최고의 밥맛은 즉석밥?
[월요논단] 최고의 밥맛은 즉석밥?
  • 관리자
  • 승인 2013.03.0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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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최근 밥맛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보릿고개를 넘던 1970년대에는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밥의 맛을 가릴 겨를이 없었으나 풍요의 시대를 지나 미식(美食)의 시대로 들어온 요즘 밥맛에 관심을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를 반영하는 듯 지난해 농촌진흥청의 연구과제로 ’쌀의 소비자 식미감정단 구성을 위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쌀의 품종별 식미검사를 처음 시작하면서 놀란 것은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료 간 밥맛의 차이를 거의 분간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로는 밥맛에 대한 기호가 사람마다 크게 달라서 통계적 유의차를 얻을 수 없다는 것과 좋고 나쁜 밥맛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나 잣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변수가 많았다. 갓 퍼낸 밥은 시료의 우열을 분간하기 어려웠고, 압력솥으로 밥을 지으면 무슨 쌀이든 모두 비슷한 밥맛을 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관능검사에서 점차 쌀의 종류에 따른 식미차이를 느끼게 되었다. 압력이 걸리지 않는 취반기에서 밥을 지은 후 용기에 담아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 외양과 냄새 그리고 맛을 보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고서야 밥맛의 차이와 나름대로의 우열을 평가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하루 세끼 밥을 먹다보니 밥맛에 대한 분별력이 대단히 무디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자처럼 젊은 시절에 보릿고개를 경험한 사람들이나 군대 생활을 한 사람들의 특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쌀의 밥맛을 평가하는 사람은 많은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실제로 벼의 품종을 개발하는 육종가들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식미평가가 필수이다. 식미평가의 결과에 따라 최고 품질의 벼 품종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얼마전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재배 벼 품종들의 식미평가를 한 결과 국산 쌀의 밥맛이 일본쌀보다 우수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신빙성을 가지려면 식미평가를 수행한 사람들의 평가능력이 대단히 높아야 하는 것이다.

쌀의 식미평가 달인은 의외로 즉석밥을 제조하는 식품회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지난해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에서 ‘식품산업, 한식세계화에 날개 달다’를 기획 편찬하면서 즉석밥 제품개발의 뒷이야기를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무균포장기술로 집에서 지은 밥과 꼭 같은 밥을 제품화한 것이다. 밥의 무균포장 방법은 반도체 공장처럼 철저히 세균을 배제한 클린룸에서 살균한 포장재에 밥을 포장하는데 방부제를 넣지 않아도 장기 보존이 가능하다. 이 방법으로 포장된 밥을 전자렌지에 데우면 금방 지은 밥과 꼭 같은 밥을 먹을 수 있다. 이 제품의 성공비결은 어떻게 하면 가장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는가이다.

이 일을 위해 업체는 쌀 산지별, 종자별 밥맛에 관한 조사연구를 수없이 했으며 이 일을 담당했던 직원은 유명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국 쌀 맞추기 달인’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한번 맛을 보는 것으로 쌀의 생산지, 품종, 지어진 방식까지 맞춰내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매년 달라지는 쌀의 품질을 전국적으로 조사해 최고의 쌀을 구입하고 최상의 조리방법으로 균일한 밥맛의 즉석밥을 만든다고 한다. 최근에는 도정 3일 이내에 밥을 짓는 기준공정을 매일 도정을 원칙으로 최상의 밥맛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기름이 잘잘 흐르는 흰밥뿐만 아니라 현미밥, 오곡밥, 저단백밥까지 다양한 밥을 집밥을 능가하는 최상의 밥맛으로 지어내고 있다. 즉석밥의 시장 규모는 가파르게 증가하여 2011년 1400억원 시장으로 성장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멕시코 등 해외 시장을 빠르게 개척하고 있다. 100% 우리쌀로 만든 즉석밥이 세계인의 밥맛을 길들이고 있다.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항공기의 기내식으로 비빔밥과 쌈밥이 제공되는 것은 집에서 갖 지은 밥과 같은 즉석밥이 상품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011년 한 회사에서 420만개의 즉석밥을 기내식으로 제공하였다고 한다. 이보다 더한 한식세계화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하루 세끼 무심코 먹는 밥의 맛이 최고의 밥을 지으려는 업체 연구자들에게는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경외감마저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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