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경시론] ‘음식’이 주는 감동
[외경시론] ‘음식’이 주는 감동
  • 관리자
  • 승인 2013.04.1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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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완수 상명대학교 외식영양학과 교수
봄이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베트의 만찬(Babette’s Feast)’이다. 정확히 그 영화 속에 나오는 계절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봄에 그 영화를 보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

영화의 배경은 덴마크의 작은 해안가 마을이다. 거기에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가난한 삶을 살아온 자매 마르티나와 필리파가 살고 있었다. 자매의 아버지는 목사였는데, 부인을 잃고 두 딸과 함께 금욕주의적 신앙으로 교회를 지키며 살고 있다. 목사인 아버지가 죽자, 두 딸은 아버지의 삶을 생각하며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이웃을 돌보며 생활을 이어간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의 빈 자리가 커졌고, 교회와 동네는 힘을 잃고 생기를 잃게 된다. 사람들 사이는 점점 금이 갔고 냉랭해져갔다.

그러던 중 프랑스 요리사 출신 바베트라는 여인이 예전에 필리파를 가르쳤던 오페라 가수 파펭의 추천장을 들고 자매의 집을 찾아온다. 그녀는 프랑스 내전으로 가족과 집을 잃은 채, 완전히 지쳐 있었다. 여유가 없는 살림이었지만, 자매는 그녀를 받아들여 같이 살기로 했다. 자매의 보살핌으로 기운을 회복한 바베트 역시 두 자매 밑에서 가정부 일이라도 하며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마을은 더 생기를 잃고, 사람들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나이가 지긋해진 두 자매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무엇인가 의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했다. 마을을 살리고, 교인들을 화해시킬 방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 때 바베트가 입을 열었다. 자신이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것이었다. 1만 프랑의 상금. 아마 대략 한국 돈으로 1천만원쯤 됨직한 돈이었다. 이것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만찬을 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만찬 준비가 시작되었다. 프랑스 요리사 출신의 요리! 만찬을 위한 준비는 몇 주에 걸쳐 진행되었다. 근사한 식기를 마련하고, 좋은 포도주, 비싼 소머리, 버섯, 심지어 진기한 거북이까지. 이제부터 영화는 풍성한 음식을 만드는 요리 프로그램을 방불케 한다. 드디어 만찬 당일! 최고의 사랑, 최고의 맛, 최고의 영양으로 차려진 성찬을 먹는 주민들의 표정이 바뀌기 시작한다. 갈등이 녹고, 앙금이 사라지며, 웃음과 화해가 피어난다. 그토록 돈이 귀한 바베트가 자신의 전 재산을 들여 사람들을 대접하는 마음이 음식에 깃들여 있었고, 영혼과 몸을 감동시키는 음식이 차려졌던 것이다. ,

나에게 ‘바베트의 만찬’처럼 특별할 것도 없는 작은 영화가 큰 감동을 준 적은 없었다. 거대한 스토리나 이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무대도 소박한 시골 어촌이었다. 영화의 소재도 너무도 단순했다. 사랑과 영양, 맛이 아름다운 ‘음식’ 하나였다. 이것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공동체를 화해시키는 힘을 발휘했다. 누군가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고 했다는데, 나는 이 영화를 보며 그것을 실제 느꼈다. 우리의 사랑도 이 작은 손길 안에 있고, 우리의 구원도 거기서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주말에는 우리 학과의 학생들과 가평으로 MT를 다녀왔다. 학생들과 즐겁고 보람된 시간을 가졌지만, 가평까지 가는 길은 온통 난개발 된 풍경 뿐이었다. 야외 혹은 교외로 간다는 설렘을 충족시켜줄 풍경은 거의 파괴되어 있었다. 1시간 30분이 넘는 거리를 가며 계속 그런 풍경이었다. 이튿날 아침 남편이 차로 마중을 와 오랜만에 동해안 양양으로 향했다. 바다도 바다지만, 거기에 특별히 기억나는, 가고 싶은 식당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식당의 어죽은 일품이다. 가격은 1만원 수준이었지만, 역시 어죽을 먹고 마음과 몸이 감동을 받았다. 깨끗하고, 영양이 좋고, 맛이 훌륭했다. 식당 주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고, 또 2박 3일의 여행 전체를 영롱하게 만들어주었다. 제대로 만든 어죽 한 그릇이.

진정한 음식의 힘

음식은 그런 힘을 갖고 있다. 사람이 단순히 허기를 때우고, 생명을 부지하는 것을 넘어 정직한 먹거리와 훌륭한 음식으로 세상을 다시 보고, 사람을 다시 신뢰하게 된다. 영혼까지도 밝아지고, 이것으로 구원을 나누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식재료를 불신하고, 농약 오염, 불량 음식, 돈만 떠오르게 하는 음식이라면 그리 반갑지 않다. 그건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의 포도청일 뿐이지 진정한 음식이 아니다.

음식을 통한 사랑과 화해는 우리 사회가 다시 생각해야 하는 중요한 가치다. 먹거리의 안전성을 정부가 규제를 통해서 해결하기에는 어려운 숙제다. 얼마든지 속일 수 있고, 또 법을 어기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품질과 수준은 좋아지지 않을 수 있다. 정직한 먹거리를 재배하고, 정성껏 음식을 만드는 것은 단순한 장사와 호구지책이 아니다. 그것은 이웃을 향해 손을 내미는 행위다. 우리 사회에 농부 혹은 외식업 종사자로서 기여할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이기도 하다. 스스로도 구원받고, 다른 사람의 영혼까지도 보살필 수 있는. 다시 ‘바베트의 만찬’이나 찾아 보아야 겠다. 이제 막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이 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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