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도폐기 위험에 처한 전통 국물음식
용도폐기 위험에 처한 전통 국물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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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5.2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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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농심 R&BD 식문화연구팀 팀장
지난 3월 13일 한 단체에서 ‘국 없는 날’ 선포식을 개최했다.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고민하여 내놓은 해법이다. 과다 나트륨 섭취의 주범으로 ‘국물’에 혐의를 두고 현재까지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 사이에서 ‘국 없는 날’에 대해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에 불을 놓는 처방이 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인체의 건강과 먹거리와 관련된 원인을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여러 요인이 유기적이고 입체적으로 관계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석학들이 제시한 영원불멸할 것 같던 과학적 증거가 그 후의 연구결과에 의해 새로운 증거로 갱신되는 일이 지금 이 순간에도 발표되고 있다. 오랜 시간 살아남은 음식문화에는 우리가 아직 다 밝히지 못한 그만의 경쟁력이 있을 것이고 특히 건강과 관련된 그 무엇인가를 담고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오랜 시간 우리 음식문화에서 ‘밥’의 단짝으로 함께 한 ‘국’을 용도폐기하기 전에 심사숙고해야 할 이유이다.

4월 2일 국내 한 연구진이 우리나라 전통식품인 ‘재래간장’에서 짠맛을 조절할 수 있는 물질을 발견했고, 재래간장 속 짠맛 조절물질은 간장이 숙성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숙성 기간’이 길수록 그 함량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전통문화의 ‘유지’는 새로운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원천 자원이기도 하다. 이번 재래간장에서 발견된 이 물질도 바로 과거 전통 음식문화 유산 속에서 이루어진 업적이다.

‘국’, 나트륨 과다 섭취 주범 아니다
이 시점에서 음식에 간을 맞추는 우리 전통 양념문화를 살펴보자.

특히 국물음식의 간을 맞추고 맛을 내는 기본은 전통발효 숙성한 장류이다. 전통장류는 숙성 연한을 다르게 관리하는 음식문화를 취했다. 한해에 소비할 양만을 담그는 것이 아니라 담근 시기에 따라 장독에 수년 간 별도 관리하며 ‘나이’를 먹게 하였다.

간장의 경우를 보더라도 나이에 따라 청장, 집진간장처럼 ‘이름’도 지어주었을 뿐 아니라 국을 끓일 때 맑은 집간장을, 조림 등에는 묵은 집진간장을 사용하는 등 그 ‘용도’도 달리 했다.

장독 모양도 지역마다 달랐다. 자연과 교감하며 장독 속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신비로운 작업을 통해 그 지역 자연환경에 맞는 최적의 장이 숙성될 수 있게 한 것이다. 집집마다 장독대 관리가 매우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다. 된장, 고추장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발효 숙성된 전통간장에서 짠맛을 조절하는 물질이 발견된 것이고 이런 ‘장류’로 간을 맞추고 맛을 낸 국물음식이 한국의 맛을 대표하고 있다. 향후 진행될 연구결과를 통해 한 때 나트륨의 주범이라고 지목되었던 전통발효 ‘장류’의 혐의를 벗길 더 많은 증거가 확보될 것으로 주목된다. 더 나아가 최근 나트륨 과다 섭취의 주범으로 용도폐기 위험에 처한 전통 국물음식을 지켜온 ‘미덕’에 대한 연구도 기대된다.

‘食治’ 음식문화 중심에 ‘탕’이 자리해
우리는 전통적으로 ‘탕류’가 발달한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서양과 차별화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밥과 국을 기본으로 한 시기를 고구려 시대로 상정한다 해도, 최소 2000년 이상 함께 하였다. 사농공상의 질서가 엄격한 조선시대에도 왕조, 반가, 서민, 빈부격차, 지역적 차별 없이 우리의 식탁을 지켜온 밥과 국이다. 변화의 물결이 거셌던 지난 세기에도 경쟁력 있게 살아남은 소중한 우리 음식문화 유산이다.

오한을 동반한 감기몸살 기운이 있을 때 더운 ‘국물’을 먹고 땀을 내며 감기를 떨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술 먹은 속을 달래주는 해장국과 추위와 더위를 이기게 하는 국물음식 한 그릇! 우리 몸으로 경험한 ‘식치(食治)’ 음식문화 중심에 ‘탕’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의 가정뿐만 아니라 외식산업과 식품산업에서 ‘탕류’를 모티브로 한 우리 음식문화 상품이 개발되고 있고, 고객에게 사랑받고 있다. 물론 지구촌 구석을 누비고 있다.

국 없는 날 캠페인을 보면서 군맹평상(群盲評象)의 뜻을 되새기게 한다. 한국 음식문화를 한쪽 방향에서만 보고 섣불리 재단하는 것은 아닐까?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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