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식품가격과 식품안전
[월요논단] 식품가격과 식품안전
  • 관리자
  • 승인 2013.10.1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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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우리 속담에 ‘싼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다. 값이 싼 물건은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표현이다. 원재료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식품업계가 세계 곡물가격의 고공행진으로 식품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대해 정부는 막무가내로 서민물가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다가 어딘가에서 큰 문제가 발생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사실 최근 들어 어처구니없는 부정식품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가락시장 쓰레기통에서 수거한 것을 대형 음식점에 식재료로 납품한 사람, 저질 원료로 맛가루를 만들어 유통한 사람, 유통기한이 한참 지나 버려진 육재료를 곰탕집에 대량 판매한 사람 등 상상을 초월한 범죄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은 무리하게 식품가격을 억제해온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견해들이 있다.

실제로 식품 대기업에 중간소재를 납품하는 중소기업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문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2008년 이후 식품산업의 원재료로 사용하는 수입 곡물가격이 2~3배 오르고, FAO 세계 식품가격지수가 200선을 넘어 지난 10년간 전 세계 식품가격이 2배 이상 올랐는데 국내 식품가격은 MB물가에 묶여 철저하게 통제되었다. 농식품부 장관이 식품가격을 올리는 회사는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공연히 위협을 주는 현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식품기업은 중간소재 납품가격을 후려칠 수밖에 없다. 중간소재를 가공하여 대기업에 납품하는 업자들은 납품을 포기하거나 가격에 맞춘 제품을 납품하게 된다. 많은 양심적인 업자들이 사업을 포기하는 상황이나 납득할 수 없는 저가로 납품하는 업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식품의 안전을 걱정하는 이유이다.

안전하고 품질 좋은 식품을 먹으려면 제값을 내고 먹어야 한다는 소비자들의 의식이 중요하다. 또한 세계 식량사정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수입식량에 주로 의존하는 우리의 경우 식품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식품가격의 세계적인 흐름을 무시한 가격 통제는 자칫 식품 품질의 열화와 안전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식품가격은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2008년의 세계적인 곡물파동 이후 우리나라 식품가격의 변화를 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2009~2010년 2년 동안 대두 국제가격이 41% 올랐는데 이를 수입하여 국내에서 제조한 대두유 가격은 고작 4% 올랐고, 두부값은 11% 올랐다. 같은 기간 밀의 국제가격은 30%, 원당은 152%, 팥은 21% 올랐으나 이를 원료로 사용해 만든 단팥빵 가격은 5% 올랐다. 팜유가격은 76% 올랐는데 밀가루와 팜유를 원료로 해서 만든 라면 가격은 오히려 6% 내렸다.

식품가격에서 원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40% 내외라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식품산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알 수 있다.
식품가격이 싸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가격에 따라 다양한 품질의 식품을 골라 사먹을 수 있어야 한다. 국산 식품을 저가로 묶어놓으니 값비싼 수입식품이 날개돋힌 듯 팔리고 있다. 식품기업이 고가의 고급제품에서 이윤을 많이 남겨 이윤이 낮은 저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여력을 주어야 한다. 이것은 경제 정의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안전한 식품을 공급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식품산업의 책임이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정부와 국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소비자물가를 잡는다고 식품가격을 무리하게 통제하는 것은 자칫 국민 건강을 해치고 국산 식품에 대한 불신을 야기할 수 있다. 마음 놓고 사먹을 식품이 없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이 없어진다면 서민 물가잡기는 국민의 행복과는 거리가 먼 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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