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격 사회에서 살고 싶다
고품격 사회에서 살고 싶다
  • 관리자
  • 승인 2006.07.2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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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문 前 타워호텔 대표이사
고 품격 高 品格 사회에서 살고 싶다

우리 축구대표팀의 16강 진출 좌절과 이탈리아의 우승, 그리고 지단의 박치기를 비롯한 28건의 선수 퇴장명령을 기록한 2006 독일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그동안 마치 전쟁 치르듯 64개 경기 중 56개를 중계했고 이 중 약 50개 경기를 동시에 내보내서 축구종가인 영국과 개최국 독일이 흉내도 내지 못할 만큼 월드컵 방송에 올인 했던 우리나라 공중파 방송도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이전 모습이라고 해서 뭐 특별하달 것도 없지만 온통 붉은 색으로 도배한 TV화면과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붉은 함성에 더 이상 매몰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2002서울 월드컵 이후 마치 중독 되듯 익숙해져 있는 붉은 셔츠와 붉은 함성이지만 그것이 결국은 축구와는 별 상관없는 전체주의적 권력의 변종쯤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열한 시민의식의 부메랑 효과

이처럼 대중적 정당성의 확보에 성공한 집단의 권력화에 따른 부작용도 무시 못하지만 저열한 시민의식으로 인한 피해 사례도 만만치 않다. 저급, 저열한 시민의식의 부메랑 효과인 셈인데 쩍하면 논의되는, 그래서 다소 진부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네거리에서 정지 신호에 따라 차를 멈추고 뭔가 잠시 생각하는 순간 신호가 바뀌고 말았다. 신호가 바뀐 지 0.5초, 벼락처럼 내리치는 뒷 차의 경적소리에 간 떨어지는 충격을 맛보아야 한다. 깜빡이를 켜며 그 차선으로 들어가겠다는 신호를 보낼 때 받아 주는 운전자는 손가락 꼽을 정도다. 반대로 얌체과, 싸가지과, 막가파 운전자들은 자유자재로 이 차선 저 차선 넘나들며 카 레이스를 벌인다.

주차장에서 앞을 막고 있는 차를 밀려고 했더니 끄떡도 않는다. 단단히 채워진 주차 브레이크 탓인데 방송을 했는데도 별 반응이 없다. 이번에는 메시지 내용을 바꿔서 '아무아무 승용차가 심한 접촉사고를 당했다. 운전자께서는 즉시 오셔서 확인하시기 바란다. 가해자가 기다리고 있다'라고 방송을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운전자는 그야말로 헐레벌떡이었다.

지하철 출입문 입구에서 바위옹벽처럼 버티고 서있는 사람들을 밀면서 가까스로 타고 보면 발 디디기조차 어렵다. 어렵사리 자리에 앉았더니 옆 자리 처녀가 화장을 시작한다. 갖가지 인상 다 쓰며 찍고 바르고 붙이고 매만지는 본격 화장이 가관이었다. 그 옆 처녀는 햄버거로 아침식사를 때우는데 옆의 화장품 냄새와 섞여 고약하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곳곳이 핸드폰으로 시끄럽다. 젊은 총각의 지각 사유에 대한 구질구질한 변명이 들리는가 하면. 왜 오빠와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가, 신파조 러브 스토리와 이달 말까지 갚지 않으면 경매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엄포도 들린다. 과거 같으면 안방에서나 있음직한 대담하고 노골적인 애정표현행위를 백주의 공공장소에서 중인환시리에 벌이는 젊은이들도 많다.

식당에서 나무젓가락이나 식사할 때 발려 놓은 생선가시를 이쑤시개 대용으로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수건으로 얼굴을 벅벅 문지르고 머리카락의 먼지를 닦아 내다가 심지어 겨드랑이 밑까지 훔치는 사람도 있다.

눌리고 차이고 터지며 살고 있지만

우리 보통 시민들은 선거철만 지나면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정치판 사람들의 오만방자한 군림을 끌탕으로 감수해야 하는 고단한 신세다. 각종 이익단체, 시민단체의 연중무휴 시위에 이리 시달리고 저리 터지며 이길 저길 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량한 신세이기도 하다.

어디 그 뿐인가 정부의 그야말로 통 큰 '까이 꺼 반응' 에도 불구하고 미사일의 시험발사에 놀란 가슴 쓸어내리는 새 가슴인데 물 폭탄까지 맞고 보니 새 가슴이 온전할 리 없다.

세금폭탄 예고편으로도 겁먹기에 충분한데 집을 팔지 않고는 못 배길 거라는 세금폭탄 본편이 목하 개봉박두라니 새 가슴은 팔딱팔딱 뛰다가 멎어버릴 지경이다. 게다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웬 엄살?' 이라는 생뚱맞은 막말 해설까지 덤으로 듣고 보니 새가슴은 차라리 숯덩이가 아닌가.

이래저래 평범한 보통시민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요즘이다. 하지만 무례와 무절제, 몰상식과 파렴치로 무장한 이웃을 못 본 체 지나가거나 없던 걸로 치부해야 편하게 살 수 있다면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지금은 비록 저 품격사회에서 눌리고 차이고 터지며 살고 있지만 앞으로는 예의와 절제, 상식과 염치가 통하는 고품격 사회에서 살고 싶다. 지금은 너무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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