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 쒀서 개주는 사회
죽 쒀서 개주는 사회
  • 관리자
  • 승인 2006.07.21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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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조 본지 데스크/편집위원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한국에서 제조업을 하면 바보’라는 풍자어가 유행했다.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노조가 극성을 부리면서 임금이 크게 올랐고, 88올림픽을 전후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데다가 만성적인 악성 고금리 등 이른바 3高 현상 때문이었다. 제조업체들이 물건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생산의욕을 상실한 시기였다.

3고를 견디지 못한 기업들은 임금수준이 낮고 임대료가 싼 중국 등 해외로 생산 공장을 이전하거나 아니면 아예 제조업을 포기하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쪽으로 전업을 하는 사례 까지 속출했다. 3고는 우리경제에 산업공동화 현상과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를 촉진해 결국 IMF 상황까지 연결되는 원인을 제공하기까지 했다.

오늘날 국내 기업들은 新3高로 고전하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국제유가와 원화가치 상승, 그리고 고금리가 바로 그것이다.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의 원료를 수입해서 상품을 만들고 이를 다시 해외로 수출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신3고로 또다시 생산의욕을 상실한 형국이다.

그렇다면 대표적인 내수업종인 식품 및 외식업계는 어떤가. 국가경제 전반에 구조적인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신3고에다가 또 하나의 악재가 더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유통업체와 건물주 등 ‘가진 자’들의 횡포다.

청계천 복원으로 상권이 부활하고 있는 종로의 어느 상가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피자 브랜드가 40평 규모의 가게를 1999년에 보증금 4억원에 월세 700만원에 임대해 영업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임대료가 1300만원, 올해는 1500만원이었는데 건물주는 또다시 500만원을 더 내라고 했고 보증금도 기존 4억원에서 5~6억원으로 인상을 요구했다. 이 업체는 결국 영업을 포기하고 점포를 비워주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지금 또 다른 업체가 건물주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다른 업종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모 닭갈비 전문 업체는 60평짜리 가게에 월 임대료를 3천만 원이나 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외국계 모 커피 브랜드의 경우 80평짜리 매장을 보증금 25억원에 월세 2500만원을 주고 영업을 하다가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가 없어 자리를 옮겼다는 후문이다. 종로 일대의 경우 임대료만 부담되는 것이 아니라 20~30평(1층 기준) 규모만 되어도 5억원이나 되는 권리금도 엄청난 부담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종로 일대에만 있는 특수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본적으로 인구 대비 외식업소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도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외식업소들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지나치게 높은 임대료 때문에 결국은 남는 것이 없는 ‘헛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사가 좀 잘 된다 싶으면 건물주가 턱없이 높은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고 이를 견디지 못한 업소는 ‘눈물을 머금고’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외식업소들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죽을 쒀서 개를 주는 꼴이다.

식품 제조 가공업체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식품제조 업체들은 대형 유통업체라는 또 다른 건물주의 횡포에 시달리고 있다. 납품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건물주인 유통업체의 불법적인 요구까지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시도 때도 없이 펼쳐대는 할인행사를 위해 납품업자들에게 염가납품을 부당하게 강요하고, 게다가 광고비와 경품비 등 판촉비용까지 부당하게 전가하고 있다. 할인행사 때는 제조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납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 제조업체들의 전언이다.

정부가 식품-외식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아무리 거창한 정책들을 내놓더라도 이처럼 보이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결국 사상누각이 되고 말 것이다.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아무리 많은 대책을 내놓더라도 그 부동산을 이용해 지나치게 불노소득을 추구하는 임대료 정책을 바로잡지 못하면 매매차원의 부동산 투기는 결코 근절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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