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레퀴엠’
[월요논단]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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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5.09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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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문 (사)한국외식산업경영연구원장/前 전주대 문화관광대 학장
강의시간 중 거의 빠짐없이 스크린에 띄우는 음악 동영상물의 레퍼토리가 최근 3주간 계속 바뀌고 있다. 수강학생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부끄럽고 안타까운 심정을 고백하고 그들의 명복을 빌기 위함이다.

오늘 강의 시간에도 학생들과 나는 정명훈이 지휘하고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교향악단과 합창단이 연주한 롯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슬픔의 성모)’ 음악과 함께 묵상으로 기도했다. 지난주에도 정명훈이 지휘하고 맹인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와 합창단이 연주한 프랑크의 ‘파니스 안젤리쿠스 (생명의 양식)’와 함께 기도했었다. 강의 중 음악 동영상을 적극 활용하는 건 오래된 내 강의스타일이다.

‘문화경쟁력 시대의 클래식 음악’시간은 내 손으로 직접 편집한 20여개의 클래식 동영상물을 소개하며 진행한다. ‘이병철과 정주영의 기업가 정신’과 ‘외식문화산업’ 관련 과목에서도 1~2편의 음악동영상물은 빠지지 않는데 세월호 대참사에 따른 곡목변경과 준비로 한동안 바빴다. 주로 엄숙, 경건한 교회음악 중심으로 바꿨는데 학생들의 반응 역시 매우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었다. 수업시간 내내 유지된 진지한 분위기가 그 근거다.

음악의 기능과 역할, 그리고 효과는 이처럼 크고 놀랍다. 생각보다 훨씬 크다.
지난 1월 런던 방문 시 여러 차례 들렀던 트러팰거 스퀘어에서의 추억도 음악의 힘과 무관하지 않다. 위풍당당 카리스마 넘치는 넬슨 동상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위치한 박물관, 미술관에서 귀한 전시품들을 둘러보면서도 머릿속은 13년 전 그 곳 트러팰거 스퀘어에서 열린 남아공 자유선거 7주년 기념 ‘남아공 프리덤 데이 콘서트’ 의 명장면들로 가득했으니 나에게 음악의 힘은 얼마나 큰 것인가.

그 콘서트는 보통의 콘서트가 아니었다. 한때 세계 최고의 걸 그룹으로 인기 돌풍을 일으켰던 ‘스파이스 걸스’ 멤버였던 멜라니B를 비롯하여 코어스, 아토믹 키튼 등 영국과 남아공 출신의 글로벌 톱 아티스트들의 출연 무대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국을 상대로 한 오랜 투쟁과 협상 끝에 이끌어낸 자유총선거를 통하여 최초의 유색인 대통령으로 뽑혀 5년간 재임했던 만델라와 남아공 국민에 대하여 왕년의 종주국 영국과 영국민들이 진심으로 드리는 감사와 위로의 헌정무대로 읽혀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만델라는 콘서트 중간에 무대에 등장하여 블레어의 3분여의 짧되 박력 넘치는 소개 연설 직후 10여분 남짓 답사형식의 연설을 했다. 연설 중 그는 그의 조국 남아공의 낙관적 미래를 확신하는 근거로 남아공 어린이들의 존재를 꼽았는데 그 대목에서 블레어 영국총리를 비롯한 2만 청중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으니 그날 축하콘서트의 의미를 웅변하는 듯 했다. 무대를 오르내릴 때 만델라의 겨드랑이와 두 손을 꽉 잡고 부축하는 영국 현직총리 블레어와 전직 남아공 대통령 만델라의 아름다운 동행 그림만으로도 청중들과 전 세계 수억 시청자들의 가슴은 충분히 촉촉해졌으리라.

트러팰거 스퀘어에서의 내 추억은 그것으로 그치질 않았다. 이번엔 실망과 좌절의 추억이다. 우리나라 이야기다. 1993년 여름, 중국 땅에 수십 년 묻혀 있던 독립운동가 다섯 분(노백린, 신규식, 박은식, 김인전, 안태국)의 유해가 돌아왔다. 역사적 비중이 크신 분들이라 정부에서도 크게 신경을 써서 크고 작은 기념행사를 준비했었지만 정작 추모음악회는 빠져 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 환경이나 형편은 그 때에 비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천안함 46명의 순국장병을 위한 추모음악회의 경우, 방송분을 포함해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이처럼 척박한 우리나라의 추모문화 환경이지만 며칠 전 팝페라 테너 임형주의 노래 ‘천개의 바람’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곡으로 발표되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그것을 계기로 2001년 9.11 뉴욕참사 희생자를 위한 다니엘포의 ‘미국 레퀴엠’ 같은 고품격 클래식 대작이 나온다면 슬픔 속의 한 가닥 희망이 아닐까 한다.

다음 주 강의시간에 쓸 추모음악으로 나는 베르디의 ‘레퀴엠’ 중 제5곡 ‘아뉴스데이(하나님의 어린 양)’나 제7곡 ‘리베라 메(주여 나를 구하소서’를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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