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를 즐겨라
손해를 즐겨라
  • 관리자
  • 승인 2014.05.26 11: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노석 한국관광협회중앙회 상근부회장 / 전 경향신문 파리특파원ㆍ문화부장
져주고 밑지는 자녀로 키워라
말이 되는가? 이기는 대신 지고, 이익을 얻기보다 밑지라니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작은 손해가 더 큰 이득을 가져다주는 원리를 가르치는 것이며 인간중심시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지혜의 말이기도 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운악 종가의 정부인 장계향은 외식인이라면 대부분 잘 알고 있는 최초의 한글 요리서 ‘음식 디미방’을 지은 저자로 자녀들에게 사회생활에서 손해의 이득에 대한 가르침을 잘 전해준 인물로 유명하다. 재령 이씨 영해파 운악 종가는 후손 중 퇴계 이황의 학맥을 잇는 갈암 이현일, 밀암 이재 등이 배출된 영남지방의 명문가로 꼽힌다.

장계향의 정신을 이어받은 ‘삼보 컴퓨터’의 창업주 이용태의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로 밑지는 것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어릴 적부터 이용태를 앉혀놓고 “남에게 지고 밑져라. 남에게 밑져도 잘해 줘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이어 어느 날 어수룩한 사람이 당신 집을 다녀가면 “두고 봐라, 저런 사람이 나중에 복도 많이 받고 자손도 잘될 것이다”고 말한 반면 똑똑한 체, 있는 체하는 사람에게는 “재물에 아등바등하는 저런 사람은 주위 사람들이 싫어하고 자기 자손에게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마켓 3.0 선언, ‘경쟁자를 존중하라’
지난 2011년 출간돼 마케팅 기법의 새로운 교과서로 추앙받은 책, 필립 코틀러의 ‘마켓 3.0’은 마켓 3.0 시대에 필요한 덕목을 선언문 형식으로 발표해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준 바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마케팅 이론을 뒤엎은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선언문의 제1신조가 ‘고객을 사랑하고 경쟁자를 존중하라’는 것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경쟁자는 누구인가? 마치 적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그러나 인간중심시대를 맞은 오늘날은 경쟁자의 의미도 달라졌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경쟁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이다. 이제 경쟁자는 마냥 사라져야 할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존중하며 따뜻하게 환대해야 할 존재로 변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는 적이라고 할지라도 경쟁자를 헐뜯고 비방하는 사람은 고객들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비단 경쟁자뿐만이 아니다. 경쟁자와의 선의의 경쟁을 통해 고객들에게 그 과실을 돌려줘야만 나조차도 이득을 볼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잘보고 있는 데로 동종 업종의 음식점들이 한 장소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유이다.

놀부 김순진 전 회장의 넉넉한 인심
종합외식기업 ㈜놀부NBG가 오늘과 같은 외식 대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손해를 기꺼이 즐겼다는 사실에 있다. 의도적인 손해를 자청한 것이 좋은 평판으로 이어진 덕분에 5평짜리 실내 포장마차에서 오늘의 대기업을 이루게 된 것이다.

김순진 명예 회장은 넉넉한 인심으로 유명했다. 그녀의 공짜 퍼주기는 서울 신림동 극장 부근 뒷골목에서 5평에 불과한 ‘골목집’을 열었을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식당 주변에서 노동직을 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해장국을 팔았는데 해장국을 시키면 소주 한 잔을 공짜로 준 것이다. 소주 한 잔에 해장국 한 그릇을 비우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고객들에 대한 환대 차원이었다. 보쌈을 주문한 고객에게는 된장국을 냉면 그릇처럼 큰 곳에 담아 국자와 함께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했고, 이 같은 넉넉한 인심은 훗날 IMF 시대까지도 이어졌다. 결국 입소문이 나면서 골목집은 ‘예쁘고 손 큰 여주인이 있는 곳’으로 평판이 났고 아침부터 식당 앞에 길게 줄을 설 정도로 인기 있는 장소가 됐다.

손해 예찬론
‘적게 주고 더 많이 얻는 것’. 이것은 손해를 즐기는 인간중심시대 경영기법의 핵심 중 하나인 ‘환대’를 의미한다.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버선발로 뛰어와 반겼던 우리네 전통적인 정(情)의 현대화인 셈이다.

이익보다는 손해에 가깝고, 남에게 뺏는 것보다는 주는 일에 가까운 이러한 행동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큰 성공을 가져다주면서 ‘손해 예찬론’이 만들어지고 있다. 중국 최고의 처세술을 기록한 ‘난득호도경’에는 ‘해유필익, 선손후익(害有必益 先損後益)’이라는 말로 오래전부터 손해를 즐기는 가치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해가 됨이 있으면 반드시 훗날 이익이 있고, 먼저 손해를 보면 뒤에 큰 이익이 있다’는 이 말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의 법칙임을 나타내고 있다.

데일 카네기의 저서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도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욕심에 눈이 멀어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만, 사심 없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 애쓰는 사람들은 대단히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적혀 있다. 이렇듯 인간중심경영의 기법으로 볼 때 손해의 가치를 깨달은 자와 모르는 자는 승패가 갈리기 마련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