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시플레이션에 더워지는 여름
피시플레이션에 더워지는 여름
  • 관리자
  • 승인 2014.07.25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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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늦어지고 무더위가 지속되는 바람에 중부지방은 연일 찜통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날씨가 더우면 식욕이 떨어지고 밥맛이 없기 마련이다. 찬 음식만 찾거나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하려다 보면 자칫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 지를 결정하는 것조차 귀찮아 한다.

우리집 식탁에는 늦봄부터 여름까지 생선이 많이 올라온다. 4월부터 웅어를 시작으로 조기, 꽃게, 병어, 민어로 이어지는 이 계절의 해산물들은 산란을 앞둔 시기라서 살이 통통하니 올라있고 알이 가득해 찜이나 회 모두 맛이 좋다.

오래 전부터 내가 좋아하는 이 생선들은 대개 입이 작다. 특히 병어와 민어는 그 체구에 비해 입이 너무나도 작은데 이는 아무래도 이들의 먹이 선호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이들은 주로 작은 새우나 게를 먹기 때문에 입이 굳이 클 필요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오죽하면 입이 작은 사람을 ‘병치입’이라고 불렀으랴. 떡 벌어진 입으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어치울 것 같은 아귀에 비하면 병어나 민어는 순둥이 고기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도 입이 작으면 왠지 욕심이 적고 착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입이 작아도 맛이 좋은 병어와 민어는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이 많이 들어있어 참치 못지않게 혀에서 감기는 식감이 일품이며 영양도 풍부하다. 민어는 옛날부터 사대부가의 여름 보양식으로 사용되었을 만큼 귀한 고기로 알려져 왔다. 게다가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도록 말린 민어 건정은 제사상에 올리는 1순위 생선이었다. 같은 생선이라도 족보가 다른 고기였던 것이다.

오뉴월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누름에 먹는 병어는 살이 찰지고 부드럽다. 무나 감자를 깔고 조리한 병어조림은 살이 많고 가시가 적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잘 먹는다. 그래도 나는 병어를 회로 먹는 것을 더 즐긴다. 병어를 회로 먹을 때는 횟감을 잘 식별하여 고를 수 있어야 한다. 횟감은 우선 코끝이 불그레하며 비늘이 다 벗겨지지 않고, 손가락으로 눌러 탄력이 있으면 쓸 만한 것이다. 여기에 양쪽 등이 납작하게 붙어있지 않고 살이 통통하니 올라와 있으면 더욱 좋다.

병어는 껍질이 두껍지 않아 포를 뜰 필요가 없어 누구나 회를 쉽게 썰 수 있다. 비늘을 벗기고 대가리와 지느러미를 잘라낸 다음 내장을 꺼내고 흐르는 물에 씻는다. 면포로 감싸서 물기를 제거한 후 도마 위에 눕혀놓고 2~3mm의 적절한 두께로 어슷하게 썰어내면 된다. 병어회에는 상추보다는 깻잎이 더 잘 어울린다. 막된장에 다진 마늘과 참기름을 섞어내면 훌륭한 소스가 된다. 이른 철에는 푸른 햇마늘 대궁을 싹둑 썰어서 된장에 찍어 먹으면 마늘의 매운 맛을 피하면서 마늘향을 풍부하게 느끼기에 그만이다.

올해는 좋아하는 병어회 먹을 기회를 몇 번 갖지 못하고 병어 철이 지나버려 아쉽다. 직접적인 원인은 마리당 2만원이 넘는 비싼 가격 때문이었다. 사실 병어는 5~6년 전까지만 해도 흔한 생선이었다. 아무리 커도 한 마리에 만원을 넘지 않았으며, 회로 찜으로 먹었을 뿐 아니라 젓갈로도 먹었다. 이랬던 병어가 요즘엔 왜 이리 귀하고 비싸졌을까? 인터넷으로 주문해 먹는 단골집에 전화를 했더니 씁쓸한 답변이 들려온다.

중국 상인들이 병어를 싹쓸이해가는 통에 판매량 자체가 줄었고, 그에 따라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병어뿐 아니라 서대까지 쓸어간다는 것이다. 이웃을 잘 만나야 편하다고 했던가.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돼지고기, 오리고기, 닭고기를 선호하고 생선이래야 민물고기 찜이나 튀김을 먹었는데 언제부터 이들이 바다 생선을 좋아했단 말인가?

중국인들이 이제는 건강을 고려하는 식생활에 눈을 뜨기 시작하여 부유층을 중심으로 육류보다는 생선요리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생선회는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생선의 선도 유지가 가능했던 해안가에서 주로 많이 먹는 음식이었는데, 이후 급속한 산업화가 이루어지며 신속한 유통과 냉장기술이 발달하고, 지역 간 문화교류가 빈번해지면서 깊은 내륙 지역 사람들도 쉽게 먹는 음식으로 바뀌었다.

수산물의 어획량은 점점 줄어드는데 소비량은 갈수록 늘어나고, 이웃 중국인들마저 맛 좋은 생선이 무엇인지를 알아버린 마당에 생선가격이 오르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생선가격이 갑자기 오르고 이로 인해 물가가 오르는 이른바 피시플레이션(fish-flation)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좋아하던 병어가 귀해지고 이제 한여름의 민어마저 가격이 오르지 않을까 걱정돼 올 여름이 더욱 덥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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