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장독대의 미학
월요논단-장독대의 미학
  • 신지훈
  • 승인 2014.10.13 0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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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유의 민족적 전통을 이어오면서 실생활에 다양한 그릇 문화와 식탁 문화를 뒷받침해 주는 공간이 바로 장독대이다.

이곳에는 항아리를 비롯해 옹기와 뚝배기 등 다양한 저장용기가 각양각색으로 줄지어 보관되어 있다. 과거에는 어떤 집을 막론하고 햇빛이 잘 쬐이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집 뒷뜰에는 어김없이 장독대가 있었다. 장독대의 옹기는 된장, 고추장, 간장, 김치, 소금 등 식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음식들을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한 음식저장 창고의 역할을 했다. 집안의 만사형통을 위해 혼을 불살랐던 어머니의 소중한 마음과 정성이 담긴, 그러면서 맛과 향을 유지하고 오래도록 변질되는 것을 막아 가족들의 건강을 지켰던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보물단지였다.

특히 장독대에 있는 옹기의 크기와 종류, 규모를 보면 그 집의 가문을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집안의 안주인들은 장독대를 신께 제를 올리듯 소중하게 다뤘다.

옛부터 한 집안의 음식 맛은 “장맛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장맛이 좋으려면 우선 잘 띄운 메주와 몇 해 묵힌 천일염 그리고 물이 좋아야 제 맛을 낼 수 있다. 집안에서 음식을 만들 때도 장맛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식재료와 부산물이 있다해도 맛이 좋은 음식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과거 우리 선조들께서는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 불길한 일이 생길 징조라 생각했다. 그래서 장 담그는 데 있어 매우 꺼리는 날인 수흔일(水痕日)을 가급적 피했고 좋은 날만을 택해 장을 담갔다. 심지어 장 담는 날을 위해 고사까지 지내기도 했다. 특히 장맛이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장독에 금줄을 치고 또 담근 장 위에 숯이나 고추를 띄워 장맛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집안의 주부들은 철따라 메주를 잘 띄워 장 담그는 일을 집안에서 가장 소중한 일로 여기며 살아왔기에 우리 전통음식의 맛과 고유한 멋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선조들의 지혜와 슬기로움은 단지 장을 담그는 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장을 담그는 데 있어 가장 소중한 햇콩으로 메주를 쑤는 일, 메주 띄우는 일, 천일염을 여러 해 동안 묵히는 일, 장을 담은 커다란 장독대를 관리하는 일 등 면면히 배어 있는 모습에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식생활 문화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다.

메주는 과거 예식이 있기 전에 예물로 서로 주고받을 만큼 소중하게 다뤄진 물건이기도 했다. 메주가 우리의 전통음식 재료로써 자리매김을 했던 시기는 대략 부족국가 말엽이었다고 추정한다. 본격적으로 조선시대로 내려오면서 메주는 간장, 된장, 고추장, 청장, 즙장, 담북장, 청국장, 청태장, 소두장 등 무려 20여 종에 달하는 장의 원료로 쓰이고 있다.

이처럼 메주로 인한 우리의 전통 발효음식이 세계 어느 음식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더욱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메주는 분해효소와 전분 분해효소를 분비하여 색상과 맛, 그리고 향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꼭 볏짚으로 싸야 한다.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린 누런 빛의 메주는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문화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시골풍경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초가집 처마자락에 매달린 메주덩어리의 정겨운 자태지만 점점 우리 주변에서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1916년 식품학자인 헤닝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네 가지의 맛인 짠맛과 신맛, 그리고 단맛, 쓴맛을 가지고 모든 맛을 구성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느끼는 맛은 아주 복잡하다. 기본적인 맛 이외에도 매운 맛, 떫은 맛, 구수한 맛, 새콤한 맛 등이 바로 우리의 발효음식인 장류의 맛에서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음식으로 먹을 수 있도록 지혜로운 미학적 가치를 주었던 우리 선조들의 유산을 깊이 간직하고 전승해야 할 문화적 소명이 지금 우리에게는 커다란 과제로 남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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