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추락, 날개는 있는가?
김치추락, 날개는 있는가?
  • 관리자
  • 승인 2006.08.10 04: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선유(사단법인 한국김치협회 사무총장)
* 자승자박(自繩自縛), 그러나 누구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김치를 국제통용어로 ‘kimchi'라 가까스로 등재해 놓은 것 말고는 우리가 김치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지금 우리가 그나마 누리고 있는 ’김치의 영광(?)‘은 우리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획득한 게 아니라 거의 다 남(他)들이 준 것이다. 한때 냄새가 지독하다느니, 너무 맵다느니 하면서 김치를 타박하고 폄하했던 그들이 준 것이다. 이 아이러니를 어찌 할까.

‘우리는 우리 김치를 위해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라고 용기있는 인정없이는 오늘 우리 김치의 추락을 진단할 수도, 그 대안을 찾을 수도 없다.

물론 김치연구에 평생을 바친 학자도 있고, 김치운동에 가산을 쏟아 부은 시민운동가도 있다. 달랑 김치 하나 들쳐 메고 국경을 넘나든 사업가도 있고, 김치 캐릭터를 하나 탄생시키려 무수히 날밤을 새운 공무원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김치가 국제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인정과 갈채에 비해 이런 우리의 노력이라는 것들이 너무 파리해 보인다는 것이다.

미국의 권위있는 잡지 ‘Hearlth'가 우리 김치를 ’세계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했을 때, 정작 우리 김치는 혼절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이 미국발의 엄청난 호재조차 우리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우리의 공적 시스템이 가동불능이었기 때문에 혼절상태를 벗어나는데 아무 효험도 발휘할 수 없었다.

‘기생충 파동’때 일본열도를 경악시킨 문제의 ‘비이커 속 또아리를 튼 성충’ 화면은 정작 우리나라에서 제작, 방영되었던 방송분이었고, 나레이터는 대한민국 식품의약품안전청이었다. 우리가 우리의 김치에 가한 이 매조키즘을 먼 훗날 어떻게 회고하고, 평가할 지 모르겠다.

* 설상가상(雪上加霜),그러나 더 이상 나빠질 수는 없다

사나흘 전, 도하 신문과 방송들이 일제히 ‘김치무역 역조’를 다루었다. 한때 그리도 재빠르던 언론이, 환자의 맥박이 희미해 진 다음 생뚱맞게 비상등을 누르는 이 능청(?) 앞에, 우리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기까지 한다.

이미 우리 김치는 의식불명이었다. 수많은 공장들이 줄도산을 했고, 그나마 연명하고 있는 곳조차 오늘 내일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김치산업 자체의 기초체력이 허약하기도 했다. 산업이 마땅히 갖추어야할 구조적 기반이 취약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책임이 김치산업 종사자들만의 것이라 할 수 없다. 국가의 공기능이 그 부분을 채워야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김치 수입실태를 보면 1998년 10t에 불과했던 것이 1999년 92t, 2000년 473t, 2001년393t, 2002년 1041t, 2003년 28706t, 2004년 7만2605t, 2005년11만1459t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왔다.

‘기생충 파동’ 직후인 2005년에도 11월 4106t으로 반짝 급감 현상을 보이다가, 채 1달도 못가 원상회복되고 말았다. 식당마다 ‘중국산이 아닌 우리 김치만 사용한다’는 벽보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면서. 결국 ‘기생충 파동’은 의도가 어떠했던 간에 우리 김치는 죽이고 중국 김치만 키우고 만 꼴이 되고 말았다.

필자가 ‘설상가상’이라는 한자 숙어를 사용한 것은 기왕에 벌어진 ‘기생충 파동’ 자체가 아니라 그 사태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김치라는 독특한 메카니즘과 미량의 유해요소와의 관계에 대해 변론이라도 제대로 했는가. 또 유, 무해를 떠나 어떤 엄격한 기준에서도 안전한 김치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었노라고 증명하고 설득했는가. 때마침 들려온 ‘헬스지’의 낭보를 십분 활용하여 난국을 돌파하는 전투력을 발휘했는가. 김치산업의 붕괴를 ‘복걸복’이라는 후안무치한 생각으로 수수방관하진 않았는가.

우리는 국제사회에 자랑스럽게 내놓았던 고부가 문화상품을 제 손으로 망쳤다. 수천년 우리의 얼과 문화였고, 국제사회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김치’라는 덕목을 스스로 발기발기 찢어서 쓰레기통에 내팽개친 것이다.

과연 ‘김치’만한 문화상품을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의 시간과 비용이 들까?

과연 시간과 돈만 있으면 만들 수는 있는 걸까?

* 전화위복(轉禍爲福),그러나 희망은 있다.

아직 늦진 않았다. 우리 김치, 아직 절명(絶命)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봉착한 시련을 제대로만 응시(凝視)한다면, 우리는 기필코 살려낼 수 있다. 일본 김치, 중국 김치가 비록 약진하곤 있지만 아직은 아니다. ‘우리 김치’가 그렇게 어깨 너머로 대충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천년 동안 수많은 이들의 손맛과 지방마다의 풍속이 다양성하게 녹아들어, ‘식탁의 으뜸’이 된 김치를 그 단순한 미감과 손맛으로 어찌 따라 오겠는가.

다만 우리가 ‘우리 김치’에 대한 특단의 자세를 갖추었을 때 그것은 가능하다. 예서 ‘특단의 자세’라 함은 먼저 우리들 스스로 ‘우리 김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다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동해의 작은 섬 독도에 그랬던 것처럼, 월드컵의 붉은 기적처럼, 한번 우리의 자긍심으로 바라보고, 뭉쳤을 때 그래서 ‘한번 살려볼 만한 우리 것’이라는 공동인식을 갖는다면, 그 순기능으로 내수시장을 살찌우고, 해외로의 진출에도 힘과 슬기를 보태고, 정부가 머뭇거리면 준열히 꾸짖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치과학을 체계적으로 알리고,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위생안전 시스템을 완비하고 디자인, 포장 등에 우리가 갖추고 있는 인프라를 접목시켜 나간다면, ‘또 하나의 한류’라고 못 만들게 뭐란 말인가.

결국 ‘우리 김치’를 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트렌드로 번쩍 들어 올렸을 때, 누구나 바라볼 수 있도록 깃발로 게양되어 나부낄 때, ‘또 하나의 기적’을 우리 손으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김치찌개를 유독 좋아한다는 안동교구의 상징이었던 프랑스인 신부 ‘드봉’ 주교는 이런 말을 했다

“김치는 참 매력적인 음식이다. 날 것으로 먹어도 상큼하니 좋고, 익으면 익을수록 맛있고, 팍 곰삭으면 지져서 별미를 맛보니 이런 전천후 음식은 세계 어디에도 없지. 아, 글쎄 이 밥상에도 이렇게 겉절이와 묵은지 찌개가 나란히 있잖아.”

한 이방인 신부의 말에서 ‘김치의 희망’을 본다면 엄살이 심하다 타박할까. 엄살이면 어떠냐. 희망인데. 희망이 얼마나 소중한 건데.

환국한 두봉 주교는 오늘도 프랑스 어느 변두리에서 교인 몇 모아놓고 필경 ‘김치자랑’에 빠져 있을 게다. 수억원씩 쳐바른 광고보다 더 야무지게, 더 아리땁게 ‘우리 김치’를 전파하고 있을 게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 ‘우리 김치’의 날개는 어떠한가? 날개는 있되, 날기에 충분한 날개 힘이 없는 걸까. 아니면 날개의 깃털이 망가져서 날개 짓하기에 걸맞지 않는 걸까.

날아야 한다. ‘우리 김치’가 다시 한번 저 푸른 창공으고 솟구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날개힘도 돋구고, 날개깃도 다듬어야 한다.

날자. 한번 날자꾸나. 눈물겨운 ‘우리의 김치’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중대로 174
  • 대표전화 : 02-443-436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우대성
  • 법인명 : 한국외식정보(주)
  • 제호 : 식품외식경제
  • 등록번호 : 서울 다 06637
  • 등록일 : 1996-05-07
  • 발행일 : 1996-05-07
  • 발행인 : 박형희
  • 편집인 : 박형희
  • 식품외식경제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정태권 02-443-4363 foodnews@foodbank.co.kr
  • Copyright © 2024 식품외식경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food_dine@foodbank.co.kr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