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으로 디자인하는 소비서비스
기다림으로 디자인하는 소비서비스
  • 관리자
  • 승인 2014.12.08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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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관광객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오면 가장 빨리 배우는 말이 바로 ‘빨리빨리’다. 외국인 관광객을 태우고 다니는 관광버스 안의 여행가이드들 조차 한국에서 이동할 때는 빨리빨리 행동해야 된다고 연신 강조하는 모습들이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시장에서는 빨리빨리라는 단어가 지금은 너무나 익숙한 문화로 자리잡아버렸다. 이런 문화를 소유하고 행하는 사람들의 삶 자체가 각박하지만, 익숙해지면 편리하기 그지없는 생활 패턴이 아닌가 싶다. 수많은 상품과 서비스가 치열하게 섞여져 있는 소비시장의 격전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빨리빨리가 소비시장에서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무엇이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기다리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기다림으로 서비스를 받는 시대가 도래됐다는 것이다. 만약 식당을 방문해 종업원한테 “주문메뉴가 밀려서 잠시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한다면 예전 같으면 망설임 없이 다른 식당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전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자기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면 끝까지 기다려 자신만의 만족감을 채워간다.

기다림이 소비자들의 소비심리인 망설임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 것이기에’라는 기대심리가 차오르기 시작하면서 가치소비의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소비자를 기다리게 하는 소비 트렌드는 외식업체를 비롯해 서점가나 화장품 업계, 명품전문점까지 확대되어 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잘 되는 가게는 더 잘 되고 안 되는 가게는 더 안 되는 매출 양극화 현상도 바로 소비자들의 기대심리의 원인이 아닌가 싶다. 기다릴수록 더 사고 싶고 부족할수록 더 재밌으며 무심할수록 더욱 끌리는 서비스, 이제는 기다리는 소비자들을 어떻게 디자인해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가에 업체들의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커피전문점인 스타벅스 역시 기다림을 팔며 서비스를 제공한다. 다른 커피전문점들처럼 주문과 동시에 진동벨을 주면서 기다리도록 하는 게 아니라 주문과 동시에 카운터 앞을 서성이는 불편함을 주고 있다. 이는 기다림과 불편함이 기업과 소비자간의 특별한 관계 맺기의 과정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소비를 통해 ‘Only One’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소유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기다려주고 애태워도 참아주는 것 쯤이야 행복한 불편으로 간주해 버리는 실정이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 출시되던 날, 서점 개점과 동시에 판매하지 않고 12시부터 행사를 시작함으로써 고객들을 줄을 서게 만들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사용했다고 하는 프리미엄 화장품 브랜드 노예사는 3주 이상 기다려야 살 수 있는 불편함에도 오히려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려는 사람들이 더 급증했다.

이 회사는 처음부터 제품을 대량으로 시장이 풀지 않고도 초고가와 웨이팅 리스트 전략으로 국내 시장에서 50%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했다.

한정된 제품을 가질 수 있다면 기다림도 행복하다는 소비자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만 있다면 웨이팅 룸에서 1시간 이상 기다려주는 고객들, 명품브랜드를 살 수 있다면 새벽부터 명품점 앞에서 줄을 서는 소비자들, 조급하기론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한국 사회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광경이 되어 버렸다.

줄이 길면 길수록 기다린 사람들의 기대가치는 더 커지는 것이다. 무언가 소유하기 위해서 줄을 섰다는 수고가 일종의 성취감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 그 자체가 고객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된다. 이런 이유로 루이비통이나 구찌, 프라다 등 유명 브랜드 매장에서는 더 이상 고객들을 공손하게 매장으로 직접 모시지 않고 가끔 줄을 세우곤 한다.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소비자들에게 ‘Only You’ 로 선택받기 위해 특별한 관계 맺기에 나섰다.

소비자는 왕이 아니라, 친구 또는 연인이 되어 편안하게 디자인된 공간에서 접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새롭게 구성하는 서비스는 바로 기다림이 행복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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