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가 한국포채(泡菜)? 식품용어에도 국격이 있다
김치가 한국포채(泡菜)? 식품용어에도 국격이 있다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15.04.2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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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대영 한국식품연구원 박사

몇 개월 전에 김치 포럼과 관련해 중국에 갔더니 김치를 한국파오차이(韓國泡菜)라 부르고 있었다. 최근에 어느 심포지엄에 갔을 때는 발표자가 고추장을 자꾸 한국고추장이 부르고 있었다. 

다른 분들은 크게 거슬리지 않았는지 모르나 필자에게는 상당히 귀에 거슬렸다. 식품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중국에 식품을 수출할 때 용어 선택을 신중히 해야 할 것 같다.

인삼을 세계에서는 영어로 ‘인삼(insam)’이라 하지 않고 ‘진생(ginseng)’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때 인삼을 진생이라고 배우면서 학생들이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ginseng’이라 하니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열심히 ginseng이라고 공부하는 학생이 있고, 또한 부류의 학생은 왜 인삼이 ‘insam’이 아니고 ginseng이어야 하느냐고 질문을 하는 학생이 있다.

인삼이 한국이 원산지고 한국 인삼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인삼에 대해 제일 연구를 많이 하고 논문을 낼 때 인삼의 일본식 발음인 ginseng(人蔘)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그 때부터 세계 모든 사람이 인삼을 ginseng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십여 년 전에 필자가 청국장과 된장을 연구해 영국의 세계적 식품잡지에 논문을 낼 때 ‘chongkukjang’, ‘doenjang’으로 그대로 써서 보내니 심사위원들이 처음에는 ‘청국장과 된장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해 자세하게 설명하였더니 두 번째로 지적이 왔는데 청국장과 된장을 ‘Korean Natto’, ‘Korean Miso’라고 친절하게 코멘트해 왔다. 

청국장과 된장이 우리나라가 원조이고 일본으로 넘어가서 natto와 miso가 되었음에도 일본이 상업화를 시키고 관련 연구가 진행돼고 소개되는 바람에 청국장과 된장이 세계 사람들에게 이미 많이 알려져서 청국장을 natto의 한 종류인 Korean natto로 쓰게 된 것이다.

된장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 여러가지 miso가 있는 데 그중 한국에 있는 Korean miso로 쓰란 뜻이다. 이에 장문의 글을 써서 청국장과 된장의 역사와 발효방식 등을 설명해 chongkukjang과 doenjang을 고수하고 그대로 싣게 된 것이다.

지금은 chongkukjang, doenjang을 쓰면 세계 사람들이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만일 그때 필자가 그들과 싸우지 않고 권유를 받아들였다면 인삼과 같이 청국장과 된장은 한국식 나또 한국식 미소된장이라고 알려져 있을 것이다.

한때 우리나라 김치가 ‘kimchi’가 아니라 ‘kimuchi’가 될 뻔했다. Codex 등 국제기구에서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김치의 주권을 되찾는데 성공해 한숨 돌리나 싶었더니만 이제 우리나라 김치가 중국의 파오차이 일종인 한국포채(韓國泡菜)가 될 위기에 처해 있다. 

단언컨데 중국에는 김치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포채는 수천년 된 우리의 고유의 김치와 완전히 다르다. 중국에서 말하는 파오차이는 발효과정도 거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포채라고 하면 중국에 오래전부터 포채가 있었는데 비슷한 제품이 한국에 있으니까 한국포채로 하라는 것을 받아들인 꼴이다. 

우리 조상들은 한글창제 이전부터 있었던 우리말 김치를 양반의 글(한자)로 표기하기 위해 그와 소리가 가장 유사하고 의미도 비슷하게 침채(沈菜)란 단어를 만들어 표기할 정도로 지혜로웠다.

이와 같이 우리말 김치를 음과 뜻 둘 다 담겨진 중국식 한자어 김치를 만들어 보려고 많은 사람이 노력해 보았는데 불행하게도 현대 중국어에는 김(kim)이란 소리를 낼 수 있는 한자가 없다. 그래서 많은 노력에도 kimchi의 운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현대 한자어는 만들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포채라고 쓰는 것은 김치 종주국인 국가의 품격과 자존심을 잃는 것이다.

한자 조어가 어려우면 차라리 kimchi로 표기하도록 해야지 우리 김치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한국포채를 쓰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국식 고추장 표현도 마찬가지다. 조심해야 한다.

식품의 이름에도 국격이 있다. 자존심을 지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게 한식 세계화의 첫 걸음이다. 마찬가지로 침채(沈菜)가 김치의 어원이라는 잘못된 주장은 우리 김치를 다시 한번 욕보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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