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無題)
무제(無題)
  • 관리자
  • 승인 2006.08.25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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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조 본지 데스크/편집위원
눈물이 그립다. 잔잔한 감동으로 가슴속을 촉촉이 적셔주는 그 눈물이 그립다. 눈물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의 원천이다.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든 가슴 벅찬 감동으로 흘리는 눈물이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가급적 감격의 눈물이라면 더욱 좋지 않은가.

지금 우리에게 감격의 눈물샘이 있는가. 눈에서는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지만 입으로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을만한 일들이 있는가. 왜 없겠는가. 감격의 눈물을 흘려본 기억이 없을 정도니 그 눈물샘이 말라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팍팍한 일들에 파묻혀가고 있을 뿐이다. 신문과 방송이 우리의 눈과 귀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무섭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오로지 총칼을 든 무사들만 있는 느낌이다. 철학자도 없고 종교인도 없고, 시인은 더더욱 없는 듯하다. 흥겨운 노랫가락 대신에 고함소리만 들리고, 칭찬의 박수 대신에 삿대질만 오간다. ‘배 째드리죠’ 등의 폭력적 언어가 우리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시적 언어를 망각케 하고 있다. 사랑과 희망의 어휘들은 사라지고 격음과 경음으로 뒤섞인 분열과 투쟁의 언어들만 난무한지 오래다.

눈만 뜨면 ‘전시작전통제권’이나 ‘바다이야기’가 우리들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대중 언론들은 마치 우리사회에는 그런 일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오로지 그런 일들만이 중요한 가치가 있는 듯 떠들어 댄다. 팽팽히 당겨진 시위의 끝은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만 향하고 있는 느낌이다. 누가 먼저 명중을 시킬까 시합을 하고 있는 꼴이다. 섬뜩하다. 우리사회가 어째 이렇게 됐는가.

스승이 그립다.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의 분열을 통합해주고, 우리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 진정한 스승이 그립다. 모두가 자기만 최고요, 나 아닌 다른 사람은 인정하지 않는 단세포적 사고를 치유해줄 어른이 그립다. 얄팍한 지식으로 우매한 대중들의 의식을 식민지화시키는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시간이 지나면 빠져나가는 손바닥 속의 물과 같은 권력을 영원한 전유물일양 안하무인격인 위정자들에게 겸손의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성자가 그립다.

칭찬하고 사랑하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고 했는데, 이제 더 이상 서로를 칭찬하는데 인색하게 굴지 말자. 요즘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맡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도 내가 보기엔 잘 하는 구석이 더러 있는 것 같은데 한 줄의 칭찬 기사도 찾아보기 힘드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야단만 친다고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지 않는다는 것 누구나 다 알지 않는가. 부족한 점도 칭찬과 사랑으로 가르칠 때 진정 고쳐지지 않을까.

그리고 이해하고 인정하자. 영어로 이해는 understanding(under + standing)이다. 상대방 위에 군림하는 over + standing이 아니라 상대방 밑에 서는 것이다. 상대방 밑에 서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인드로 대할 때만이 상대를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각자 살아온 환경과 처해있는 현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설계가 다른 이상 인간은 누구나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진리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고, 나와 다른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집단 폭행 하듯이, 인민재판 하듯이 어느 한쪽을 몰아붙인다면 이를 두고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한국사회는 칭찬도 사랑도 없고, 이해와 인정도 없는 느낌이다. 마치 영원히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 극단적인 싸움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니 스스로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임기를 제대로 채울까 걱정하게 되고(어떤 사람들은 중도하차 하기를 바라거나 그렇게 되기를 선동하고 있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한 영화감독이 자신을 “한국에서 살아가기 힘든 심각한 의식장애자”라면서 “저야말로 한국사회에서 기형적으로 돌출해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임을 알았다”고 까지 자학하고 감독 은퇴선언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니 평생 모은 재산을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며 서울대학교에 쾌척한 70대 노인의 아름다운 이야기, 메마른 가슴을 적셔주는 감동적인 이야기 거리도 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우리들의 눈에 띄질 않고, 그걸 보고도 감격의 눈물샘은 작동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다시 한번 눈물이 그립다. 각박해진 우리들 가슴을 순화시켜줄 수 있는 코끝 찡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자. 그리하여 비록 가난하지만 행복한, 정신적 풍요를 만끽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자. 그것만이 해답이다. 그럴 때만이 톨스토이가 설파한 것처럼 ‘인생은 정말 한번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것’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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