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이 마찬가지 이치이지만 한번 잘못된 길을 가게 되면 빨리 돌아나와서 다시 제대로 된 길을 가야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가고 있는 길이 맞다고 합리화하고 심지어는 변명까지도 하면서 계속해서 그 길을 가려고 한다.
이러한 일이 자주 반복되면 합리화와 변명이 거짓의 유혹에 빠지고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아 결국 죄악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특히 학문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갔던 길이 잘못된 길임을 아는 순간 절망에 빠지고 실망스럽더라도 재빨리 그 길이 진리의 길이 아님을 알리고 빨리 돌아서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학문의 진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대체로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학자들일수록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고 끝까지 그 길을 가려한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 자기 합리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그들은 진리를 찾는 데 써야 할 열정과 재주를 자기가 잘못 간 길을 합리화하기 위한 새로운 잡설을 꾸준히 만들어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국가적으로나 산업적으로 볼 때도 지극히 안타깝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서 자기 합리화를 할 때 그 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지 여기서 잠깐 살펴보도록 하겠다. 지난 호에 지적한 어느 연구원의 J모 교수는 말재주가 뛰어나 방송 등에 자주 나가고 있다.
상상과 과학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아 토론 등 학문적 연마도 많이 받지 않은 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고추가 임진왜란 때 들어왔다’는 설을 맹신한 나머지 수많은 잡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물론 ‘고추가 임진왜란 때 들어왔다’는 설에 대한 맹점을 인지하였으니까 이를 합리화하는 상상을 하였을 것이다.
문제점을 알지 못하였다면 이러한 잡설을 만들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분명 이 설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엇이 문제인지 하나도 들여다보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진리인 것처럼 간주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맹점을 합리화 하는 데 몰두한 나머지 수많은 잡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수많은 잡설 중, 김치를 장아찌의 후손으로까지 폄하한 잡설의 예를 들어보겠다.
김치는 장아찌와 짠지의 후손?
장아찌와 짠지의 후손이 김치란다(자연을 담는 큰 그릇, 69, 1999, 18쪽, 풀무원). 이것이 식품 과학적으로 말이 된다는 것인가? 비단 이뿐이겠는가?
이 이야기도 우리 김치는 결국 고추 없는 김치라는 잘못된 도그마에 빠져 아무 근거 없이 김치의 원조가 쓰게모노 또는 파오차이이니 주장하다보니 장아찌와 짠지까지 김치의 원조라는 말을 꾸며낸 것이다.
결국 잘못된 설을 붙들고 고집피우다 보면 쓰께모노와 장아찌나 짠지는 물러지는 배추로 담글 수 없음을 알고, 결국 김치는 원래 배추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로 만들었다고까지 상상을 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결국 자기가 판 함정에 스스로 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김치를 만드는 배추는 결구배추뿐이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고, 이 결구배추가 중국에서 들어온지 100년 밖에 안 되었다는 그의 주장(음식전쟁 문화전쟁, 76쪽, 사계절, 2010)도 사실이 아니다(J. Ethnic Foods, 9월호 참조).
배추와 배추김치를 나타내는 표현은 우리 오래된 고문헌에 숭(菘), 추숭(秋菘), 숭저(菘菹), 침숭채(沈菘菜) 등으로 다양하게 나온다.
구체적으로 김창업 (金昌業)의 연행일기(燕行日記)(1712), 정약용(丁若鏞)의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서거정(徐居正)의 사가집(四佳集), 이갑의 문견잡기(聞見雜記)에 다양하게 나온다.
이러한 다양한 문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00년 전에는 배추김치가 없었다는 것은 고추가 임진왜란 후에 있었다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터무니없는 잡설이다.
학자는 새로운 사실과 데이터에 승복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학자가 아니다. 데이터나 사실에 승복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경우 얼마나 큰 거짓으로까지 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