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예방원칙’의 허(虛)와 실(失)
소위 ‘예방원칙’의 허(虛)와 실(失)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15.09.1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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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 이철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식품의 안전관리를 완벽하게 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전통적인 안전관리 방법은 식품위생법의 규정에 따라 식품제조업소를 불시에 위생점검 하거나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의 표본 조사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면 규제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제조 업소에 상주하지 않고 제품을 전수조사하지 않는 한 완벽한 안전관리는 불가능하다.

관계 당국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식중독 사건이 발생하고 소비자들은 불량식품을 구입하게 된다. 식품은 옷이나 신발처럼 착용해봐서 맞지 않으면 벗어 놓고 다른 물건을 고를 수 있는 성질의 물질이 아니다. 일단 입에 넣고 먹으면 되돌릴 수 없는 제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식품의 안전관리는 대단히 중요하고 완벽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도 실제 완벽한 안전관리는 불가능하다.

최근에는 식품안전관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을 만들어 제조업체가 지키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식품의 위해 유무를 최종 제품에서 검사하기보다 제조 과정에서 위해가 발생할 수 있는 부분(critical point)을 중점 관리하도록 해 불량식품의 제조를 사전 예방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해썹인증제도를 광범위하게 실시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최근 식품안전관리의 예방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예방원칙은 환경분야에서 거론되기 시작한 개념으로 윤리적 원칙에 가까운 개념이다. 예방원칙을 실천하기 위한 Wingspread 회의에서 내린 정의를 보면 ‘만약 어떤 행동이 인간의 건강이나 환경에 위해를 미쳤다면 비록 그 원인과 결과의 관계들이 과학적으로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도 예방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일반 국민이 듣기에는 대단히 당연한 이야기인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안전관리를 맡고 있는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과학적 위해평가를 무시하는 감상적인 선동에 불과하다.

과학적 위해평가는 위해요소를 확인 규명하고 노출평가해 위해도(risk)를 결정 한 후에 관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위해요소(hazard)의 검출과 위험(risk)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다. 이것이 구분되지 않으면 분석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먹을 수 있는 식품이 없게 된다.

미국 식품의약청(FDA) 국장을 지낸 스탠퍼드 밀러 박사는 소위 ‘예방원칙’의 언어적 불확실성과 반과학적 전제를 고대 윤리원칙인 무해원칙(Nonmaleficience)의 재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 법의학윤리연구소의 소렌 홈과 죤 해리스 박사는 최근 네이쳐(Nature)지에 보낸 서한에서, 현재 정의된 예방원칙은 조금이라도 위해 가능성이 있는 모든 기술의 발전을 막을 수 있는 여러 심각한 결점이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생명공학 기술과 원자력 기술은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

소위 ‘예방원칙’을 잘못 적용했다가 현실성이 없어 폐기한 경우가 많지만 아직도 여러 분야에서 그 영향을 받고 있다.

발암물질에 대한 델라니 클라우스(Delany clause; 발암물질은 극소량이라도 식품에 존재해선 안 된다)는 크게 수정됐다. 이온화 조사식품의 표시를 확대 의무화하면서 가장 안전하고 경제적인 미래 식품저장기술이 사장되고 있다. 유전자변형생명체(GMO)의 재배를 금지하거나 이를 사용한 식품에 대해 표시를 강조하는 것도 예방원칙이 낳은 반과학적 사고의 산물이다.

미국 국민 3억 명이 지난 20년간 GM 콩과 옥수수를 아무런 표시 없이 먹고 있으나 부작용이 보고된 예가 한건도 없고, 세계적으로 GM 농작물의 재배가 급격히 늘고 있는데도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최근 우리 법원이 GMO 정보공개 청구소송에서 원고의 편을 들어준 것은 ‘GMO는 위험하다’는 반과학적 전제를 수용한 것이어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식품안전관리는 그 일을 담당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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