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 Too) 유감
미투(Me Too) 유감
  • 김병조
  • 승인 2006.09.07 0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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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일본의 한 TV 방송국에서 필자를 상대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인터뷰의 질문 내용은 한국 식품회사들의 일본 제품 베끼기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 식품회사들이 일본 식품회사 제품을 모방하는 이유가 뭔지 등등에 대한 질문이었다. 내가 우리 식품회사들의 일본 제품 베끼기에 대해 비판적인 칼럼을 쓴 적이 있었는데 이를 보고 뭔가 쓴 소리를 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인터뷰 목적을 물었더니 일본에서는 지적재산권 보호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면서 식품업체들도 한국 기업들의 무분별한 모방제품 출시로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에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당시 국내 모 제과회사가 일본 제과회사로부터 제품을 베끼기 했다고 해서 소송을 당해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 때 나는 한국 기업들이 일본 기업을 따라 하는 배경을 나름대로 이야기 하면서 일본 기업들에게도 따끔한 충고를 했다.

그 때 내가 말한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일본에 뒤져 있는데다가 문화가 비슷해서 일본에서 성공한 케이스를 따라하면 적어도 망하지는 않는다는 관념이 만연해 있다. 그것이 일본 베끼기의 배경이다. 나는 모방을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다만 창조적 모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기업들의 무분별한 일본 제품 베끼기는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도 지적재산권 보호에만 매달려 있을 것이 아니라 후발 업체들이 감히 따라오지 못하게 앞서 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일본이야 말로 모방 천국이요, 모방으로 발전한 나라가 아닌가.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일본 도시바와 한국 삼성전자를 비교해 설명했다. 한국의 삼성전자는 바로 일본 도시바를 모방하면서 기업을 키웠다. 그러나 단순히 베끼면서 뒤따라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창조적 모방을 한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은 삼성전자가 도시바를 능가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일본 TV방송국을 상대로 한 인터뷰이기에 국내 기업들에게 불리한 발언을 자제하긴 했지만 사실 나는 우리 기업들의 베끼기 관행에 대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기술적으로 앞선 선진국의 제품을 지적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창조적으로 모방하면서 산업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비난꺼리가 아니라 권장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기술수준이 엇비슷한 국내 기업들끼리 미투(Me Too) 제품 출시 경쟁을 벌이는 것은 꼴불견이다. 비생산적인 소모전에 불과한 것이다.

기업이 신제품을 내놓기 까지는 많은 투자비용이 들어간다. 업체들끼리 서로 베끼기 경쟁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생산 코스트를 높이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꼴이다. 신제품을 출시한지 얼마 되지 않아 경쟁사가 똑같은 제품을 내놓으면 먼저 개발한 회사의 제품 라이프 사이클은 그만큼 짧아질 수밖에 없고, 또다시 신제품 개발에 새로운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 똑같은 입장이기 때문에 결국은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식품업체들의 베끼기 관행을 막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는 없다. 외국의 경우 베끼기 문화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에 벤치마킹을 할 방법도 없다. 결국은 업계 스스로의 자정운동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업계가 자율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지켜나가는 길 밖에 방법이 없다. 가령 어떤 업체가 신제품을 출시하면 동종 업계의 다른 경쟁 업체들이 일정기간 최초 출시 기득권을 인정해주는 방식 등이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초 출시 후 일정 기간 경쟁적으로 유사제품을 출시하지 않도록 약속을 하거나, 아니면 후발업체들이 최초 출시 업체에 로열티를 지급하는 방법 등이 구체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억지로 만드는 ‘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업계 스스로가 도덕성을 갖추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베끼기 경쟁은 결국 스스로의 발등을 찍는 어리석은 짓이며 산업발전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을 인정하는 가운데 더 좋은 제품으로 승부하겠다는 선의의 경쟁의식이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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