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별 전용 쌀 품종이 사용된다
요리별 전용 쌀 품종이 사용된다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16.03.1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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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 이철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일본에서는 요즘 요리별 전용 쌀 품종의 사용이 한창이라고 한다. 카레전문점에서 ‘카레마이’라는 카레용 쌀을 사용하고 메뉴판에 ‘카레 전용 쌀품종을 사용합니다’라고 적고 있다. 초밥에 적합한 ‘사사유키(동북 194호)’가 초밥집에서 많이 사용되면서 사사유키의 재배가 늘고 있다. 지난해 여름 도쿄에서 열린 ‘초밥장인세계대회’에서 이 품종이 사용돼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요리의 종류에 따라 적합한 쌀의 품종이 있다는 말은 우리에게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보다 한 발 앞선 일본에서는 이미 쌀의 품종에 따른 가공특성의 차이가 상업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최근 출간한 ‘쌀의 혁명’에서 빵, 면류 등 밀가루 가공식품에 밀려 쌀의 소비가 급속히 감소하는 현재 상황을 개선하려면 유럽이 밀가루에 대해 연구한 만큼 우리도 쌀에 대해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밀은 단백질 함량에 따라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으로 나누고 빵은 강력분으로, 국수는 중력분으로, 케이크는 박력분으로 제조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화돼 있다. 이태리 스파게티를 만들려면 듀럼밀을 써야 한다. 이들 밀가루를 막 섞어놓고는 좋은 빵이나 면류를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 볶음밥, 곰탕, 백반 구분 없이 쌀이면 아무데나 사용하는 지극히 비과학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쌀로 만든 음식이 밀가루로 만든 음식에 밀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늦게나마 일본에서 카레용 쌀, 초밥용 쌀 등으로 쌀의 품종별 품질 특성에 따라 요리 전용쌀 개념을 도입했다고 하는 사실은 쌀의 소비확대를 위해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쌀의 가공특성을 면밀히 연구해 요리의 종류에 따라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는 품종을 선별, 사용한다면 쌀의 소비는 크게 확장될 수 있다.

최근 밥맛에 관심을 가지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이제까지 밥은 허기를 채우기 위한 음식으로 인식돼 왔으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밥의 맛을 음미하고 평가하게 됐다.

맞벌이 부부와 홀로 사는 1인 가구가 늘면서 편의점의 도시락 판매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이 전쟁의 승자는 최고의 밥맛을 만들어 내는 자가 될 것이다. 이미 햇반이나 컵반 시장은 최고의 밥맛을 내는 쌀 품종을 누가 잘 선택했는가에 달려 있다. 이제야 밥맛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쌀은 밀과 다르게 단백질의 함량이 낮고 성분 함량의 미세한 차이가 밥맛이나 다른 가공 적성에 아주 미소한 변화를 일으킨다. 그런데 우리가 느끼는 관능적 특성이나 기호도의 차이는 이 미소한 물리화학적 변화에 크게 좌우된다. 그러므로 쌀의 가공특성 연구는 밀보다 훨씬 어렵다.

필자는 33종의 호주 밀에 대한 제면 특성을 조사해 2종류의 밀 품종이 우리나라 국수 제조에 대단히 우수하다는 사실을 학회지에 발표했다. 이 내용을 본 국내 제면업계가 호주밀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현재 호주 밀은 국내 제면업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쌀도 마찬가지로 백반, 곰탕, 카레밥, 볶음밥, 김밥, 햇반, 컵반에 맞는 품종들이 각각 다르게 있을 수 있다. 쌀국수, 떡볶이, 쌀과자, 쌀라면에 적합한 품종 역시 다르다. 우리는 아직 이러한 연구를 깊이 있게 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은 이미 백 년 전에 밀에 대한 가공적성 연구를 시작했다.

이러한 연구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의해 시작된다. 소비자들이 최고의 밥맛을 추구하고 거기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을 때 밥맛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는 것이다.

일전에 어느 유명한 감자탕집에 갔는데 밥맛이 너무 나빴다. 묵은쌀로 지은 밥 같았다. 감자탕은 맛이 있었으나 이 집에는 다시 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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