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은 같은 뜻을 갖고 있으면서 글자가 다른 경우와 뜻은 다르나 비슷한 글자로 표기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조리와 요리도 같은 뜻인 것 같으면서도 곰곰이 되뇌어 보면 의미가 조금 다르다.
한글학회가 편찬한 우리말 큰 사전에서 보면 조리(調理)는 ‘여러 가지 재료를 알맞게 맞춰 먹을 것을 만듦’이라 정의하고 있다. 요리(料理)는 조리와 비슷한 말이라 적고 있다.
요리의 뜻에서 흥미로운 것은 ‘일을 솜씨 있게 휘어잡아 적당히 처리함’이란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점이다. 여기서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조리는 물리적인 배합이요, 요리는 사전에서 뜻한 바와 같이 의지가 베어든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영어에서는 cooking이란 말과 cuisine을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일생 살면서 가장 맛있고 평생 잊지 못하는 음식은 무엇일까? 품목일수도 있고 또 다른 한상차림의 식단일수도 있겠으나 어떻든 어머니가 요리해 만들어준 음식이 아닐까? 어느 장소건 어느 시점에 있건 어머니의 음식은 냄새와 맛으로 감별할 수 있고 그 근본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태어나서 성장할 때까지 정성들여 만들어주신 그 음식에 젖어들어 적응된 결과라고 치부할 수도 있으나 또 다른 면은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과 마음, 그리고 혼을 불어넣은 음식이요 이 정신의 결정체가 혼합된 음식이 결국 내 정신세계에 파고든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조리는 여러 재료를 다듬고 잘라서 혼합하고 가열처리하는 것으로 끝이나나 요리는 이 모든 과정에서 내 마음과 정성, 그리고 정신의 결정체를 불어넣는 또 다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음이 재료에 작용함으로써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무엇인가가 음식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아닐는지.
최근 집밥이 유행하고 있다. 그 뿌리는 집에서 만든 음식, 장소를 뛰어 넘어 여기에 어머니를 연결시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우리 집은 즉 어머니요, 어머니가 아니 계신 집은 내 집, 내 고향이 아니다. 그렇다.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음식이 집밥이요, 그 집밥에 대한 향수가 현대인의 감정에 맞아 떨어진 결과가 집밥의 유행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만들지 않은 음식을 집밥이라고 하기에 무언가 허전하다.
앞으로 더 많은 학문적인 연구가 뒷받침돼 증명돼야 하겠으나 전통식품에 대한 끌림의 뿌리는 고향과 그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그 그리움을 넘어 몸에서 끌어들이는 자석 같은 그 무엇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평생 잊지 못하고 끌림을 당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우리 인체에서 생명유지에 가장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한 수단인 음식은 그 자체로 흡수돼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성분이 우리의 유전자에서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이런 현상을 연구하고자 후생유전학이라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즉 내가 먹어왔던 음식이 내 몸을 구성함은 물론이요, 나를 관리하는 기본 지도인 유전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모든 형질을 후손에게 전달시켜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전자에 각인된 정보가 내 의지를 결정하고 호불호를 결정하나보다.
유전자의 변화는 몇 백 년의 시간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수만에서 수십만 년 동안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하기 위해 서서히 일어나 한 번 적응된 것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근세에 갑자기 밀려들어온 서양음식들은 우리 몸이 유사 이래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성분과 구성으로 상당한 거부반응을 보이며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제 좋은 재료를 사용해 어머니의 정성과 마음으로 조리가 아닌 요리를 해야 한다. 소비자 모두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자세를 갖출 때다. 이를 위해 가정은 물론이요 외식업계나 식품제조업체 종사자의 마음가짐을 재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