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공유테이블’(卓上共論)의 무한한 변신
‘긴 공유테이블’(卓上共論)의 무한한 변신
  • 신지훈 기자
  • 승인 2016.05.20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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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경기대 관광전문대학원 교수/한국관광연구학회 회장
▲ 김기영 경기대 관광전문대학원 교수/한국관광연구학회 회장

얼마 전 미국 LA쪽으로 연수 겸 해외한식당 관련 일을 보기 위해 갔다가 저녁식사 차 우연히 한인타운에 있는 한식당에 들렀다. 홀에 놓여 있었던 대부분의 식사테이블은 거의 사각형이나 원탁이 전부였으나 유독 내 눈에 들어왔던 ‘바(bar) 스타일의 긴 테이블’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젊은 층 고객위주의 카페나 커피숍에서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으나 한식당이라는 특수한 식사패턴에서는 생소한 테이블이다.

삼삼오오 젊은 고객들이 둘러 앉아 노트북을 꺼내놓고 보는 사람,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사람, 그 옆자리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사람 등 서로 안면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끼리 긴 테이블에서 자연스럽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약간의 의아함 속에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새로운 소비트렌드라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최근 들어 긴 테이블 하나에 서로 붙어 앉아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말을 섞어가면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문화가 정착돼 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문화의 특성 중 하나인 공유성과 이동성에 대해 새삼 실감하고 있다. 더 나아가 집이나 사무실에서도 이처럼 네 다리 위 상판이 견고하게 놓인 평범한 가구가 요즘 우리의 삶 한가운데 깊숙이 파고들어 라이프스타일까지 바꿔놓고 있는 것 같다.

공유테이블의 시작은 프랑스 혁명 무렵이라고 한다. 자유, 평등, 박애를 내세웠던 프랑스 혁명 당시 계급의 구분을 없애고 평등을 주장하는 차원에서 대표적으로 보여줬던 도구가 바로 공유 테이블이었다.

그 이후 ‘현대판 공유 테이블’을 소개한 건 프랑스가 낳은 유명한 디자이너 ‘필립 스탁’이었다. 그는 1980년대 아시아 드 쿠바(Asia de Cuba)라는 뉴욕의 레스토랑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30여 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초대형 테이블을 선보이면서 시초를 만들었다. 벨기에에서 유기농 빵집으로 급성장한 글로벌 체인그룹 ‘르 팽 쿼티디앙(Le Pain Quotidien)은 공유 테이블을 기업의 경영철학으로 내세워 체인업체를 이끌고 있다.

긴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주인과 손님이 담소하는 풍경으로 유명한 ‘카페 원테이블’은 올레꾼들에게는 꽤 소문난 집이다. 이태원 경리단길에 있는 일본 가정식 요리전문점인 ‘메시야’는 12인용 테이블 하나를 두고 생전 처음 보는 이들이 둘러앉아 주인이 내놓는 한 가지 메뉴를 먹으면서 날씨 얘기, 음식 얘기 등을 하며 어색함을 없애고 나갈 때는 친숙한 모습으로 만들어 주는 매장으로 알려져 있다.

혼밥(혼자 밥 먹는 것), 혼술(혼자 술 먹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가 된 요즘, 공유 테이블 공동체가 만들어지면서 외식업계의 서비스패턴도 바뀌고 있다. 요즘 우리 가정에서 기다란 테이블을 주방과 거실 중간에 두고 가족 구성원들의 생활공간으로 활용하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오랫동안 거실에서 TV시청용이나 수면 침대에 가까운 푹신하게 놓여 있던 쇼파를 과감하게 구석으로 밀어냈다.

긴 테이블은 가족과 마주하게 만들었고, 싱크대 붙박이나 다름없었던 엄마도 식탁 겸 작업대로 쓰이던 테이블에서 벗어나 온 가족이 함께 둘러 앉아 커피와 함께 대화를 할 수 있는 긴 공간테이블로 불러 모은 것이다. 또한 아이들도 공부방에서 벗어나 부모와 마주앉아 서로 눈 마주치며 이야기하고 가족 사랑을 만들어 가는 공간으로 정착되고 있다.

어떤 이에겐 밥상이고 어떤 이에게는 창작의 텃밭이 될 수 있는 긴 공간 테이블이 사람들의 온기를 되찾아 줄 수 있는 유일한 도구로 변신한 것이 아닌가 싶다. 테이블이 맹활약하는 곳은 집만이 아니다. 가림막으로 경지 정리하듯 네모반듯하게 잘라둔 회사 사무실 배치를 뒤집어 사무실 중앙에 대형 테이블 하나를 둬 업무가 달라 부딪힐 일이 없던 동료들과 테이블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예기치 못한 아이디어도 얻고 계획하지 않은 협업이 일어나기도 한다.

차가운 디지털의 시대, 멀어져가는 사람들의 온기와 소통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긴 공유 테이블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줌으로써 이 시대의 새로운 문화트렌드로 정착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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