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외식경제 보며 외식산업 이끌어온 ‘20년 독자’
식품외식경제 보며 외식산업 이끌어온 ‘20년 독자’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6.07.04 18: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6~2016년 강산이 두 번 바뀐 세상…외식현장과 강단에서 지켜본 외식업계

지난 20년 전 4월 창간준비호가 발행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온 독자가 있다. 긴 시간동안 지령 제1호부터 제933호까지 단 한 차례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지면을 살펴온 독자들이다. 독자는 언론매체의 수용자이자 한 축을 떠받쳐주는 탄탄한 기둥이다. 창간호부터 단 한 주도 쉬지 않고 식품외식경제를 읽어준 독자는 식품외식경제의 가장 귀한 고객이자 가장 큰 자산이다. 창간 20주년을 맞아 여러 창간독자 중 외식업 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는 노호봉 ‘백제령’(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3·15대로 383-1) 대표와 권창심 중앙대 외식산업경영아카데미 주임교수를 만났다.

‘매주 1면에서 시작 15면 사설에서 마침표 찍지요!’
마창진의 외식명가(外食名家) ‘백제령’ 노호봉 대표

▲ 본지 20년 독자인 노호봉 ‘백제령’ 대표(왼쪽)와 2세 경영수업 중인 현우 씨가 본관 정원에 나란히 앉아 밝게 웃고 있다. 사진=이인우 기자 liw@foodbank.co.k

창원시의 한 택시기사는 ‘백제령’에 대해 “옛 마산뿐만 아니라 마창진(마산·창원·진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요즘엔 점심, 저녁시간이면 긴 줄을 서야 들어가 식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982년 마산시의 번화가인 창동에서 처음 문을 연 삼계탕 전문점 백제령은 마창진의 대표 외식업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워낙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면서 주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게 2003년. 옛 요정 자리였던 단아한 한옥을 인수했고 널찍한 주차장 한 켠에 기다리는 고객을 위한 파라솔 테이블도 갖췄다.

본관과 별관을 합쳐 약 160여 석을 갖춘 백제령은 최근 하루 1천 명 이상의 고객이 방문한다. 한 겨울에도 600여 명의 고객을 맞이할 정도다.

노호봉 대표는 창업 직후 식품외식경제를 발행하는 한국외식정보㈜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올해 창간 31주년을 맞은 월간식당(본지 자매지)과 서비스아카데미(현 한국외식정보교육원), ㈔한국외식산업경영연구원에서 진행하는 세미나,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고 참가하면서부터다.

노 대표는 “국내 외식산업이 체계적인 틀을 잡기 시작하던 당시 한국외식정보는 새로운 정보와 외식업 운영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고 회상했다.
월간식당 애독자였던 만큼 ‘외식경제신문’이란 제호로 창간했던 식품외식경제도 반갑게 받아보게 됐다.

그는 “월간식당은 한 달 주기로 발행되기 때문에 실시간 업계 정보를 얻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일주일마다 새로운 소식을 가득 담은 주간지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고 전했다.

식품외식경제에서 꼼꼼히 읽는 지면은 매주 14, 15면을 털어 배정하는 ‘오피니언’ 섹션이다. 그때그때 외식업계의 이슈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필요한 경우 대안까지 제시하는 사설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하는 칼럼을 빼놓지 않고 읽는다. 물론 1면부터 13면 ‘피플&이벤트’ 지면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노 대표는 “종합면의 외식업계 관련 뉴스와 정책뉴스, 각 지면의 업계 소식도 한 눈에 살필 수 있어 사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며 “1면부터 쭉 훑어본 뒤 마지막 사설에서 마침표를 찍는 방식”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식품외식경제에 이만큼 애정을 쏟는 이유는 그의 외식업에 대한 사랑과 맞닿아 있다. 당초 일식전문점으로 처음 외식업계에 발을 디딘 노 대표는 1979년 10·26 사태 이후 정치적 격변기에다 2차 오일쇼크 등으로 사업이 어려워지자 한식으로 업종을 바꿨다.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외식업에 뛰어든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외식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건 물론 큰 자부심을 갖게 됐다. 바로 마창진 지역을 대표하는 백제령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일궈냈다는 자부심이다.

노 대표는 “백제령은 매월 한 차례씩 열리는 마산지역 기관장 회의 장소가 됐다”며 “그만큼 지역의 내로라하는 외식공간으로 인정받았다는 것 아니겠냐”고 뿌듯해 했다.

노 대표는 지난 2005년 본관 옆의 한옥을 인수해 ‘아자방(亞字房)’이란 이름을 붙이고 별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아자방은 가야의 전설이 얽힌 지리산 칠불암의 승방(僧房) 이름에서 따왔다. 칠불암 아자방은 일자형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형식으로 동쪽 2칸은 부엌 칸이고 나머지 3칸은 방과 툇마루다.

방은 바닥 층과 침상으로 만들었고 침상이 ‘다’자형으로 양쪽에 있어 방바닥이 십자형(十字形)으로 됐다. 이 때문에 아자방(亞字房)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별관에 이같은 이름을 따올 정도로 노 대표는 고미술에 높은 식견을 갖췄다. 별관의 계산 카운터도 고가구를 활용해 운치를 높였다.

또 사진에도 일가견이 있어 정물사진에 페인팅 작업을 덧입힌 추상적인 작품 등으로 본관과 별관 곳곳을 장식했다. 별관의 작은 정원도 노 대표의 자랑이다. 미려한 곡선의 자태를 뽐내는 노송을 적절히 심어 가꾼 정원은 식사를 마친 고객들이 잠시 한숨 돌리며 쉬어가기에 그만이다.

백제령은 노 대표의 2세인 현우 씨가 부사장 직책을 맡아 10년째 경영수업 중이다. 현우 씨는 생명공학을 전공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뒤늦게 진로를 바꾼 뒤 일본 최고의 요리학교인 ‘핫토리영양전문학교’에 유학, 외식조리와 경영의 기초를 닦은 재원이다.

노 대표는 “아직 아들에게 경영을 물려줄지 여부는 정하지 않고 있다”며 “외식경영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수업을 한 뒤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해 함께 있던 현우 씨를 멋쩍게 했다.

부자간의 이런 대화는 30년 넘은 백제령의 100년을 위한 경계의 말처럼 들렸다.

외식경영 주임교수 된 창업 꿈꾸던 전업주부
식품외식경제 창간호와 함께 외식 연구 시작한 권창심 교수

▲ 권창심 중앙대 평생교육원(서울) 외식산업경영아카데미 주임교수는 본지 기획특집 섹션은 빼놓지 않고 보관한다며 더욱 심도 있는 기사 발굴을 제안했다.

권창심 중앙대 평생교육원(서울) 외식산업경영아카데미 주임교수는 20년 전 본지와 함께 외식경영연구를 시작했다.

가정교육학을 전공한 권 교수는 지난 1995년 외식창업을 꿈꾸며 중앙대 외식산업경영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렸다가 덜컥 주저앉고 말았다. 1년 동안 진행된 교육과정을 모두 수료한 뒤 본지 창간년도인 1996년 연구원 자리를 차지하고 앉게 된 것이다.

연구원으로서 한 일은 외식산업경영연구원 원우 대상 매거진 제작이었다. 외식업 창업을 계획했던 전업주부가 졸지에 외식전문 매거진 에디터가 된 셈이다.

권 교수는 “당시는 외식 관련 자료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며 “월간식당과 당시 막 창간했던 식품외식경제의 기사가 가장 큰 정보원이었다”고 추억했다.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지난 1998년 외식경영전공 석사과정을 시작했고 결국 강단에 서게 됐다. 지금까지 배출한 원우들도 일일이 헤아리기 어렵다. 현재 권 교수는 외식산업경영자 과정 45기째 교육을 진행 중이고 이밖에 글로벌외식산업최고경영자과정, 강남구청과 함께 하는 중앙대외식산업최고경영자과정, 파리바게뜨 가맹점주 MBA 과정까지 총 4개 교육과정을 이끌고 있다.

그는 식품외식경제가 지금까지도 외식업계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최고의 정보매체라고 평가했다. 창간호부터 매호마다 중요한 기사는 무조건 스크랩해 보관하고 있다.

권 교수는 “신년특집과 창간특집호에 진행하는 특집면은 가장 소중한 지면”이라며 “국내외 외식산업의 최신 트렌드와 미래 전망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기사는 두고두고 참고할 만큼 가치가 있다”고 전했다.

무려 20년 동안 봐온 만큼 아쉬운 점도 있다. 최근 온라인과 모바일을 중심으로 빛의 속도로 유통되는 정보를 담아내기에 너무 낡아보이는 지면구성이 가장 아쉽다.

권 교수는 “일부 종합일간지는 다양한 섹션과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지면구성으로 달라진 정보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는 것 같다”며 “식품외식경제도 새롭고 참신한 아이템과 편집을 선보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조언했다.

신문을 만드는 당사자로서 뼈저리게 와 닿는 애정 가득한 조언이었다. 그는 외식산업인들의 정보생산과 수용방식의 변화도 지적했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정보유통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정보 접근 방식이 천양지차라는 것이다.

그는 “최근 젊은 외식인들은 무척 열정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찾고 있다”며 “여기다 과거와 다른 행동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외국의 최신 외식 트렌드가 궁금하면 일단 현장으로 날아가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다”고 전했다.

또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한 소그룹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그룹 간 정보공유 등이 활발히 진행되는 등 넓고 깊은 전문정보유통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다 몇몇 업계 ‘마당발’이 출연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등 업계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했다.

권 교수는 “세대가 바뀌면서 젊은 친구들은 우리 같은 초창기 이론을 가진 이들을 ‘꼰대’라고 부른다”며 웃었다.

이른바 꼰대라고 불려도 젊은 세대에게 바른 것을 바르다고 알려주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되지만 변화하는 세대에 맞춰줄 부분도 있다고도 했다. 특히 젊은 외식경영인들이 역점을 두는 온라인 활용에 기성 외식인들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요즘은 융복합이 대세 아니냐”며 “외국에 나갈 때마다 느끼는 점 중 하나가 우리 외식산업의 식재료가 너무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리고 본지의 새로운 연재 기사 아이템을 제안했다, ‘외식업계의 새로운 식재료’ 시리즈를 연재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이다. ‘감자탕과 토마토’의 조화를 구체적인 예로 들었다. 한식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토마토를 넣어 감자탕을 조리했을 때 전혀 새로우면서 참신한 맛을 낸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아카데미에서 수업 받는 ‘스타족발’의 30대 대표는 족발에 동남아시아 스타일의 허브 등을 조화시킨 족발샐러드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며 “이러한 새로운 식재료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공부에 더 전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다양한 식재료를 골고루 쓰게 되면 농업 활성화 효과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농축수산물의 최대 소비처인 외식업계가 먼저 변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권 교수는 “기성세대는 흔히 젊은 외식인들에게 ‘네가 고생해봤냐?’ ‘일단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며 기를 꺾으려 한다”며 “이보다 젊은 세대의 기를 살려주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영역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중대로 174
  • 대표전화 : 02-443-436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우대성
  • 법인명 : 한국외식정보(주)
  • 제호 : 식품외식경제
  • 등록번호 : 서울 다 06637
  • 등록일 : 1996-05-07
  • 발행일 : 1996-05-07
  • 발행인 : 박형희
  • 편집인 : 박형희
  • 식품외식경제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정태권 02-443-4363 foodnews@foodbank.co.kr
  • Copyright © 2024 식품외식경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food_dine@foodbank.co.kr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