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HMR 개척한 강소기업 사옹원의 도전과 성취

2년 연속 수출 300만 달러 달성, 대통령표창 수상 이인우 기자l승인2016.09.09l9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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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옹원 음성 본사 전경.

법인기업은 ‘법률상 인격체’와 같다. 한자로는 사람 인자를 넣은 법인(法人)으로, 영어로는 ‘juridical person’이라고 쓴다. 법적 해석을 따르면 법인은 자연인과 마찬가지로 법률관계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다.

이를 확대 해석하면 기업들도 사람의 인격과 같이 각각 다른 ‘격’(格)을 갖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일각에서는 기업에도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문학적 소양에 따라 격이 높은 기업과 낮은 기업이 나뉜다는 주장이다.

사람의 먹을거리를 제조·유통하는 식품·외식기업은 이같은 주장을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옹원(대표 이상규)은 ‘격’이란 관점으로 볼 때 어떤 식품대기업보다 높은 입지를 다져온 기업이다.

지난 1~4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2016대한민국 식품대전 첫날 충북 음성군에 본사를 둔 중소식품제조업체 ㈜사옹원이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수상부문은 식품수출유공자 표창이었다. 이상규 사옹원 대표이사는 함께 단상에 오른 사기(社旗) 깃봉에 표창 매듭을 묶었다.

개인의 수상이 아닌 150여 임직원이 함께 받는 표창이란 뜻이었다. 사옹원은 지난 2010년 11월 수출 100만 달러를 달성했고 2011년 수출증대 공로를 인정받아 농수산식품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또 최근 2년 연속 수출 300만 달러의 실적을 올리면서 지난 2014년 제19회 농업인의 날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 사옹원은 최근 2년 연속 수출 300만 달러 달성 공로를 인정받아 ‘2016대한민국 식품대전’에서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이 대표는 대통령상을 수상한 뒤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식품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더 끊임없이 연구하며 현지인의 기호에 맞는 제품 개발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앞으로도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선보이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사옹원은 이 대표가 강조한 ‘제대로 된 제품’을 ‘제 값 받고 판다’는 원칙을 고집하는 강소기업이다. 대기업과 같은 자금력과 인력, 전문적인 마케팅 시스템은 없으나 작지만 알찬 기업으로서 우수한 품질과 올바른 비즈니스 정책을 고수해 왔다. 대한민국 식품대전에서 받은 대통령표창은 이같은 고집이 일궈 낸, 충분히 자랑할만한 성과였다.

대기업 OEM 거절한 선도기업의 자존심

사옹원은 21년 전인 1995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전(煎)의 대량생산을 시작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작은 규모로 시작한 전 생산은 반자동화, 자동화 방식으로 진화했다. 당시 누구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전을 상품화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대형마트는 물론 편의점 식품진열대에도 대기업 브랜드의 전류와 튀김류 등이 깔리고 있다. 대기업에서 상품을 내놓고 중소기업이 뒤를 따르는 일반적인 시장 패턴과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 셈이다. 그렇다고 사옹원이 대기업 브랜드 제품을 대신 만드는 OEM에 나선 것도 아니다.

사옹원은 어떤 제조업체와도 OEM 생산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단지 최근 일부 유통업체의 요청에 따른 부분적인 OEM 생산만 진행 중이다. 대다수 중소 식품제조업체들이 자체 브랜드를 포기하고 OEM 생산에만 나서는 것과 전혀 다른 양상이다.

여기에는 전류와 튀김 등 전통한식을 최초로 제품화했다는 자부심이 깔려있다. 조리된 식품의 제품화는 쉽지 않다. 처음 제품화에 나설 경우 생산 공정 하나하나 구축해야 하고 각 기계설비도 모조리 새롭게 제작해야 한다. 전을 부치거나 튀김류를 성형하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하나의 금형부터 떠야 하고 유통과정의 콜드체인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투자규모도 만만치 않다.

현재 사옹원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김치전, 야채전, 녹두전, 부추전, 해물파전 등 전통 전류와 김말이, 고추튀김, 오징어튀김, 고구마튀김, 단호박튀김, 야채튀김 등 튀김류, 산적, 잡채 등이다. 여기다 다양한 호떡, 아이스경단, 콩도너츠, 옥수수맛탕 등 후식류도 생산하고 있다.

처음 전을 주력으로 하는 식품제조업을 시작할 때 기대보다 우려가 많았다. 집집마다 쉽게 부쳐 먹는 전을 만들어봐야 누가 사먹겠냐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전류와 산적, 튀김류 등은 ‘한식HMR’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사옹원은 “한식의 표준화를 만들다”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낸 창조적 기업이다.

성과보다 비전이 더 밝은 미래성장 기업

▲ 사옹원은 수작업에 의존해 온 한식 메뉴를 제품화하기 위해 자동생산라인을 일일이 구축하는 등 한식세계화에 공헌하고 있다.

사옹원의 한식HMR은 지금까지 일궈낸 성과보다 앞으로의 비전이 더 밝다. 해외 20개국으로 수출되는 각종 전류와 튀김류, 후식류는 한식이 건강식으로 알려지면서 현지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동남아 시장에서는 한류의 순풍을 타고 있고 미국과 중국 등에서도 특유의 담백한 맛으로 매출을 끌어올리고 있다. 사옹원은 미국 등에서 한인타운 등 교민시장보다 현지인을 타깃으로 공략한다. 미국 대형 유통기업의 제품 공급권을 따내 현지인 대상 유통망에 한식HMR을 판매한다.

사옹원은 해외시장을 더욱 확대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전체 매출 가운데 해외시장 매출 비중은 15% 내외. 지금 같은 추세라면 단기간 안에 수출 비중을 훨씬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해외시장뿐만 아니다. 사옹원의 전류와 튀김류, 잡채 등은 최근 대형마트와 편의점 매대를 점령하고 있는 각종 HMR 가운데 가장 큰 경쟁력을 갖춘 상품으로 평가된다. 청년층을 비롯한 1인 가구 증가로 급성장하고 있는 HMR은 편의점 도시락을 비롯, 한중일양식 등 국적을 넘나들며 상품의 폭을 넓히고 있다.

사옹원의 전류는 물론 전자레인지로 간편하게 데워 먹을 수 있는 잡채류는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HMR이다. 3가지 맛의 사옹원 잡채에다 즉석밥 하나면 도시락보다 훌륭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여기다 고추튀김 등을 더하면 훨씬 푸짐한 식사가 된다. 해외시장 전망이 밝지만 국내 HMR 시장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이러한 B2C 시장은 물론 B2B시장도 사옹원의 텃밭이다. 사옹원은 기업, 학교 단체급식업체와 케터링전문기업 등을 포함, 4천여 곳과 지속적인 거래를 진행 중이다.

미투 제품 난립에도 흔들림 없는 기업의 ‘격’(格)

사옹원의 가장 큰 고민은 우리나라 식품업계의 고질병인 미투(me too) 제품 난립이다. 특히 일부 식품대기업은 막강한 브랜드 인지도를 등에 없고 사옹원이 개발한 방식 그대로 한식HMR을 무차별 살포하고 있다.

국내외 식품박람회에 사옹원이 참가하면 타 식품제조업체의 타깃이 되기 일쑤다. 이들 대기업 브랜드는 사옹원의 제품을 그대로 카피해 영세 식품제조업체에 OEM 생산을 맡긴다. 과거 사옹원이 OEM 생산을 거절한 대기업들도 끊임없이 미투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사옹원은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 제 값 받고 판다’는 정책을 바꿀 생각이 없다.

그만큼 검증된 식자재만 사용하고 단가가 높아진 만큼 가격을 낮출 수 없다. 결과적으로 사옹원의 한식 제품은 믿을 수 있고 맛도 뛰어날 수밖에 없다. 사옹원은 조선시대 왕에게 올리는 음식을 준비하는 관원이었다. 사옹원이라는 이름은 중소식품 기업의 ‘격’을 상징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격이 높은 식품기업이란 뜻이다.

“대를 잇는 브랜드 가치 만들어내겠습니다!”
이상규 ㈜사옹원 대표이사
▲ 이상규 ㈜사옹원 대표이사.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만들어 왔습니다. 사옹원은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걸어온 회사입니다.”

이상규 사옹원 대표는 한식을 제품화했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남들이 우리 한식을 외면할 때 제품화 가능성을 확신했고 남들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외면할 때 한눈팔지 않고 온갖 역경을 이겨냈다.

그는 약관의 나이에 고향 경주에서 혼자 상경, 1970년대 초 국내 통조림업계를 석권하던 펭귄표통조림의 ‘대한종합식품’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대학진학의 꿈을 위해 퇴직했으나 곧바로 입대, 34개월 23일간 복무한 뒤 효성그룹에서 다시 식품관련 영업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오랜 기간 공을 들인 뒤 영업에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다”며 “영업이 천성에 잘 맞았지만 스물 한 살 때 공부하면서 갖게 된 제조업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한국냉장에서 근무하며 수산물유통을 배운 뒤 1983년 퇴사, 노량진시장에서 1년간의 조사를 벌인 다음 유통사업을 시작했다. 마침내 제조업을 시작한 계기는 88서울 올림픽이었다. 당시 올림픽선수촌 지원 인력이 머물던 가락시장 앞 올림픽패밀리아파트단지의 식당에서 전을 부치는 광경을 보면서 제품화 가능성을 읽었다.

이 대표는 “당시 1년 동안 시장조사와 냉동식품 공부를 동시에 진행했다”며 “방배동에서 직접 공장을 시작하려 했지만 주재료인 고추와 깻잎, 피망 등 계절별 가격 등락 폭이 최대 50배에 달하는 문제에 부딪혔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사옹원을 창립한 1995년까지 몇 차례나 식재조달 문제를 재검토할만큼 심사숙고했다. 마침내 전류의 제품화를 시작했을 때 주위의 걱정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고향 경주에서 시작한 사업은 5년이 지나면서 손익분기를 달성했고 2008년 음성군 대소면에 첨단 생산라인을 갖추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중소기업의 한계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겪어왔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낮은 브랜드 인지도를 극복하기 위해 저가 전략에 의존하고 수익성이 떨어지는만큼 값싼 식자재를 쓰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 제품은 소비자 외면 속에 시장에서 퇴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이같은 사례를 보면서 내가 제조업을 한다면 절대 저가정책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며 “남들이 100개 팔 때 10개만 팔고 사업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면 자식들이, 자식도 못 이룬다면 손자 세대가 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신 브랜드는 확실히 살려놓겠다는 밑그림이다.

이같은 장기적인 포석은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사옹원은 이제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글로벌 식품기업으로서 본격적인 도약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이 대표 곁에는 이지인 상무가 해외사업을 총괄하며 2세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

 


이인우 기자  liw@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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