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잡느라 장독 깨는 나라

이철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신지훈 기자l승인2016.12.30l수정2016.12.30 17:11l9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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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소위 ‘청탁금지법’ 제정을 처음 이야기할 때 국민들의 기대는 컸다. 그러나 막상 만들어진 ‘청탁금지법’은 역시 이 나라는 희망이 없다는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그동안 각종 부정부패 사건에서는 ‘직무와 관련된 대가성 비리’를 입증해야 했다.

쥐구멍으로 큰 도적들을 모두 풀어주던 관행을 고쳐야 한다는 국민적 염원에서 청탁금지법은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국회를 거치는 동안 이 법은 누더기가 됐다.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돼 온 국회의원들이 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 특권층으로 공식화됐고 대신 언론인과 교사를 포함시켜 권력기관에 대한 견제장치로서의 기능을 상실시켰다. 결국 전 국민에 대한 규제 장치로 희석된 것이다. 교수가 강의실에서 학생에게 캔커피를 받아 마셔도 안 되고 가난한 아주머니가 경찰에게 떡을 선물해도 걸리는 기막힌 사회가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현실에 맞지 않는 접대 상한액, 경조 상한선 등을 제정해 농업 생산자와 외식업계가 된서리를 맞게 된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된 후 대부분의 외식업체 매출이 반 이하로 떨어졌고 육류, 유제품, 과일, 수산물 등 고급 식품의 판매가 급감했으며 화훼산업은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대외적으로 불안요소가 점증되는 한국경제에 내부에서 치명타를 안긴 것이다. 쥐도 못 잡고 독만 깨버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 누더기로 우리 사회를 덮고 있는 악법을 하루 속히 개정해야 하겠으나 생선가게에 앉은 고양이에게 쥐가 보일리 없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3만 원짜리 음식을 대접받거나 한우 선물세트를 받는 것이 무슨 그리 큰 일이 되겠는가? 결혼식이나 장례식장에서 화환도 받고 10만 원이 넘는 경조금을 받으면 어떤가?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팔아넘기고 저축은행에 모인 서민들의 피맺힌 돈을 강탈하고 판사가 외제차를 선물 받고 검사가 100억 원대의 주식을 받아도 벌주지 못하는 사회가 이런 사소한 일을 가지고 할 일을 다했다고 호도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다.

문제의 본질에는 눈을 감고 당리당략과 패거리의 이권에 몰두해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가는 이 나라의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불행하게도 청탁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반대여론은 최순실 사건으로 인한 대통령 탄핵 정국에 묻혀버렸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고발과 소문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은 충격과 혼란에 빠졌고 탄핵지지와 탄핵반대 시위로 6.25동란 전 친탁, 반탁운동을 방불케 하는 국가적 혼돈사태로 치닫고 있다. 지금처럼 온 국민이 국가의 안위를 걱정했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는 헌법 개정으로 오늘의 상황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기를 원하지만 그마저도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지 못하면 오늘의 소요사태는 이 나라의 뿌리 깊은 부정부패가 반복되는 악순환의 하나에 불과하게 된다.       

정치 수준은 국민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봉건사회를 벗어나 민주주의를 시작한지 반세기 밖에 안된 우리 사회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물질만능 사조로 사회 정의나 윤리도덕이 피폐해진 것이 사실이다.

철권통치로 안정된 북한의 정치체제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나 취약하다. 비판의식은 높으나 스스로 법을 지키거나 정직하지 못한 국민이 됐다. 문제의 본질을 쉽게 잊어버리고 분위기에 휩쓸려 장독을 깨뜨리는 우매한 국민이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

우리 속담에는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한다. 소요와 혼란으로 나라가 위태로울 때 국민이 할 일은 정신 차리고 한발 물러나 사태를 확실히 파악하고 법에 따라 일이 수습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뜯어 고칠 변화가 필요한 시점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혁명이나 적화통일이어서는 안 된다. 


신지훈 기자  sinji27@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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