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고기·고기 소비 트렌드 양극화
고기·고기·고기 소비 트렌드 양극화
  • 이원배 기자
  • 승인 2017.01.1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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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리필 반짝 인기… 프리미엄 브랜드 탄탄

요즘 외식하면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고깃집을 떠올리고 실제 고깃집을 많이 찾는다. 특회 회사나 단체 등의 회식과 가족 단위 고객들은 어김없이 고깃집을 찾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조사한 2016식품소비행태에 따르면 조사 대상 가구 중 외식 시 주로 이용하는 업소는 고깃집과 한식당으로 나타났다.

고깃집 이용 비율은 지난해 35.5%로 한식당(30.5%)보다 높았고 중식당(6.5%), 횟집(5.8%)을 압도했다. 그만큼 고깃집을 많이 찾고 있는 것이다. 지역의 유명한 속칭 ‘먹자골목’에 가보면 한 집 건너 한 집이 고깃집일 정도다.

고기구이 활성화 40년 안팎

하지만 우리가 돼지고기나 소고기 등을 편하게 접하게 된 시기는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1980년대 호황기를 건너며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하던 고깃집은 1990년대, 2000년대 들어 크게 늘었다. 고기구이 전문점의 대중화는 길게 잡아도 채 40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40년 동안 고기구이 전문점은 경기 상황과 소비 트렌드, 기기의 발전, 업계 마케팅 등에 따라 많은 변천을 해왔다.

고기구이의 역사는 아주 오래됐다. 선사시대부터 맥적이라는 구이가 발달했다. 맥적은 고구려의 고기구이를 뜻하는데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고기구이의 시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돼지·소고기는 예부터 아주 귀한 식재여서 평민은 물론 상류층도 흔히 접하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특히 소는 농경에 활용되므로 그 가치가 귀해 나라에서 잡거나 먹는 것을 엄격히 통제할 정도였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세종 29년, 1447년) 당시 소도둑이 많아져 고기와 가죽을 팔아넘겨 농민들의 고통이 크므로 소도둑은 곤장 1백대와 ‘도살우’라는 낙인을 찍거나, 유배를 보내고 두 번째에는 사형에 처하게 하는 등 엄하게 처벌하도록 했다. 

과거 귀하기 짝이 없었던 고기는 일제강점기 조금씩 생산량이 늘어나기 시작해 고기구이 외식문화도 함께 발전했다. 하지만 생산량도 부족했고 가격도 비싸 대중화되지 못했다.

고기구이 문화는 1970년대 이후 산업성장 등과 함께 생산량과 소비가 빠르게 늘면서 주요 외식 메뉴로 자리잡았다. 1970년대 일본에서 개발된 무연 로스터기가 한국에도 들어오게 되면서 고기구이 매장은 급속히 늘었다.

소비도 크게 증가해 농협중앙회 축산경제리서치의 자료를 보면 2015년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47.6㎏으로 1970년(5.2㎏)에 비해 9배 이상 늘었다. 소고기는 1.2㎏에서 10.9㎏로 돼지고기는 2.6㎏에서 23.7㎏으로 각각 10배가량 늘었다. 현재 고기구이 전문점 시장도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양분하고 있다.

외식의 상징 소고기집 등장한 1980년대

40여 년 전만해도 쉽게 먹기 어려웠던 소고기는 1980년대 경제성장의 호황기를 맞아 ‘가든형 고급 구이 전문점’이 활성화되며 특별한 외식 메뉴로 대접을 받았다. 1976년 서울 강남에 문을 연 삼원가든은 소갈비, 등심구이 등을 제공하는 최고급 한정식업소로 1980년대부터 중산층 이상의 높은 사랑을 받았다.

지난 1981년 설립한 송추가마골도 소고기와 한식 전문점으로 명성을 날렸다. 특유의 양념맛이 잘 배인 소갈비와 최상급의 소고기만 제공하는 맛 제일주의로 경기 북부 지역은 물론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서 고급 맛집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널찍한 매장과 고급 식재를 사용하고 만족도 높은 서비스 덕에 특별한 외식처로 인기를 모았다.

1989년 문을 연 강강술래도 대형 매장으로 규모에 걸맞는 고급 소고기, 돼지고기 메뉴와 서비스를 제공하며 가족 단위 고객이 많이 찾는다. 강강술래는 만족도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문턱을 낮춘 메뉴로 고급이면서 대중적인 전문 고깃집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밖에도 많은 고기구이 전문점이 생겨나며 전성기를 누렸다. 1980년대 말에는 소고기의 다양한 부위를 담은 ‘암소 한 마리’라는 매장이 생겨 1990년대까지 크게 유행했다.

1992년 등장한 소고기 뷔페도 히트했다. 일본에서 유행한 소고기 뷔페를 재일교포 이삼옥 씨가 들여왔으며 서울 용산 이태원 1호점이 효시로 알려졌다. 소고기 뷔페는 중급 이하의 상권에서 빠르게 퍼져 1992년 당시 서울에만 약 200개의 매장이 호황을 누렸다.

1990년대 초반부터 축협이나 대형유통 업체 등이 질을 우선시 하는 소비자 기호에 따라 직접 운영하는 정육점형 외식 매장도 앞다퉈 문을 열었다.

덤 마케팅 브랜드 인기

하지만 1986년 영국에서 처음 발병한 광우병으로 인해 한국에서도 소고기 파동이 일어나고 또 지방에 의한 건강 논란으로 소비가 크게 줄었다. 대신 돼지고기로 수요가 몰려 소비가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또 1997년 수입자유화에 따라 저렴한 수입 돼지고기가 들어오면서 돼지고기 소비 확산에 한몫했다.

특히 2006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금지되고 2008년 촛불집회 등으로 고급=한우, 중저가=호주산으로 시장이 나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마케팅 업체들이 속속 등장했다.

예로 4인분을 주문하면 추가로 4인분을 제공하는 ‘덤마케팅’ 브랜드들이다. 소고기 ‘4인분+4인분’을 내세운 그램그램이 지난 2013년 론칭해 빠르게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같은해 역시 ‘4+4’를 제공하는 황금소도 선을 보였다.

이같은 매장의 인기에 따라 같은 마케팅 방식의 불소식당도 2014년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소고기 덤 마케팅 업체들의 성장도 정체기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다보니 고기 품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진 면이 크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고급 한우전문점을 중심으로 매장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업계의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삼겹살, 저렴하고 고소한 맛의 유혹

돼지고기 구이는 소고기의 높은 가격이 부담스럽지만 육식의 욕구를 채워줄 대체재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돼지고기는 육식을 하고 싶지만 가격이 너무 비싼 소고기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의 육식에 대한 욕구를 해소해 줬다.

돼지고기 중 삼겹살은 단연 인기 부위이다. 삼겹살은 돼지의 배 부분에서 나오며 살코기와 지방이 세 겹 겹쳐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최근 통계를 보면 일반인은 4일에 한 번 정도는 삼겹살 1인분을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친근한 삼겹살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의 전통적인 돼지고기 조리법은 주로 삶는 방식으로 수육이 대표 음식이다. 삼겹살 구이 등 고기의 굽는 조리법이 확산된지는 대략 40년 남짓일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황교익·정은숙의 저서 ‘서울을 먹다’에서는 1970년대 대규모 양돈 시설이 지어지면서 안심과 등심 등은 주로 수출하고 남게 된 삼겹살을 소비하기 위해 국내에 삼겹살 붐이 일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삼겹살이란 단어가 국어사전에 등재된 해도 1994년으로 알려졌다.

1970년대 강원도 태백과 영월 지역 탄광 노동자들에게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광부들은 매월 고기 교환권을 받았는데 저렴하고 많이 먹을 수 있던 삼겹삽을 즐겨 찾았다.

또 노동자들이 저렴한 삼겹살을 간단히 슬레이트에 구워먹으면서 확산됐다는 것이다. 또 상술 좋은 개성 사람들이 양퇘지를 개량해 삼겹살 부위 맛을 발전시키며 널리 퍼졌다는 설도 있다. 이런 돼지고기구이 문화가 빠르게 퍼져 1980년대 이후 삼겹살 음식점이 크게 늘었다. 

솥뚜껑·대패·녹차 삼겹살 변신

초창기에는 개인 외식업소를 중심으로 ‘로스구이’란 이름으로 인기를 끌었다. 불판에 구워낸 삼겹살에 쌈장과 쌈채소, 밥을 곁들여 먹으며 저렴한 별미의 외식 메뉴로 각광을 받았다.

특히 회사나 단체 등의 단골 회식 메뉴로 이름을 올렸다. 황해도 개성 출신으로 한국전쟁 당시 월남해 서울 강남에 삼겹살 구이점 ‘개성집’을 낸 하정복 사장은 삼겹살 전문점 1세대쯤 되는 셈이다.

1997년 IMF 이후 경기 침체가 이어지자 돼지고기 전성 시대가 열렸다. 기존 소고기 메뉴에서 가격이 저렴한 돼지고기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불판과 식재로 차별화를 꾀하는 업소들이 생겨났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가마솥뚜껑을 불판으로 사용한 ‘솥뚜껑삼겹살’이 크게 인기를 얻었다. 솥뚜껑에 구우며 보는 재미와 먹는 맛을 동시에 충족시켜줬다. 현재도 전국에 430곳의 솥뚜껑삼겹살 이름을 단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이어 1인분 가격이 당시 짜장면보다 싼 대패삼겹살이 크게 유행했다. 대패삼겹살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실수로 1993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렴한 기계로 썰다가 고기가 말렸고 이를 그대로 제공했는데 소비자 반응이 좋아 지난 1996년 상표출원까지 했다.

냉동 상태에서 얇게 잘라내 빠르게 구울 수 있었고 특히 저렴한 가격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대패삼겹살이라는 이름을 단 업소가 우후죽순 생겨나 지갑 얇은 학생 등 소비자의 입맛을 채웠다.

대패삼겹살이 시들해질 무렵 다양한 식재를 활용한 삼겹살 전문점이 유행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미숫가루 삼겹살이 등장했고 2000년대에는 와인에 숙성해 맛을 높인 와인삼겹살이나 돼지 사육 시 녹차를 먹여 맛이 좋다는 녹차삼겹살 등 다양한 삼겹살의 변신이 시도됐다.

돼지고기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시대

2000년대 후반 삼겹살 등 돼지고기 구이가 확실히 자리를 잡으면서 돼지고기 전문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빠르게 늘었다. 2008년 돼지고기 구이 전문 브랜드 구이가가 론칭했고 갈매기살 삼겹살, ‘주먹고기’를 특화시킨 신마포갈매기도 2009년 시장에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또 갈매기살 구이를 전면에 내세운 서래갈매기도 2009년 론칭돼 히트를 했다. 2010년 경기도 하남에서 시작한 하남돼지집은 명이나물과 다양한 서비스로 돼지고기 전문점 프랜차이즈 성공 사례를 쓰고 있다.

2015년 후반 불경기가 이어지자 1인분 가격에 무제한 고기를 제공하는 ‘무한리필 삼겹살’ 집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과거 인기를 모았던 무한리필 매장이 주로 얇은 냉동·수입육을 제공한 반면 최근에는 두꺼운 돈육을 주로 사용해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대부분 저렴한 수입냉동육을 사용하지만 저장 기술의 발전으로 냉장육과 같은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소비 트렌드에 따라 ‘엉터리생고기 두번째 이야기 무한삼겹(엉터리생고기)’과 ‘삼겹싸롱’, ‘돈데이’, ‘호랭이곱창’, ‘불란서삼겹살’, ‘무통삼’ 등 많은 무한리필 삼겹살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소비자 공략에 나서고 있다.

축산업계 관계자는 “소고기는 물론 돼지고기 소비는 최근 프리미엄과 저가 시장으로 양분화되고 있다”며 “불경기 등에 따라 이같은 소비 양극화는 더 확대될 전망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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