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순환보직제도의 폐단
공무원 순환보직제도의 폐단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17.02.0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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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 이철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세월호사건이 일어났을 때 공무원들의 ‘아마추어리즘’이 적나라하게 들어났다. 당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과장급 이상 간부 중 재난 전문가는 한 명뿐이었다고 한다. 사고발생시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하지 못해 미증유의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세월호사고 후 박근혜 대통령은 순환보직제를 개선해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2014년 7월 각 부처의 직위를 장기재직이 필요한 분야와 순환보직이 필요한 분야로 구분해 관리하는 ‘직위유형별 보직관리’ 체제를 수립하고 전문직위는 4년, 전문직위군에서는 8년간 전보를 제한하는 원칙을 세웠다. 그러나 전문직위나 전문직위군의 설정이 모호하고 단편적이어서 공무원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전문성 결여와 무책임 행정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모든 분야가 고도의 과학기술과 전문지식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국가를 경영하는 공무원이 맡은 일을 해낼 전문성이 부족하다면 국가는 쇠퇴하고 국민은 불행하게 된다. 한자리에서 평균 1년도 근무하지 못하는 공무원 조직에서 전문성이나 책임행정을 논하는 자체가 무리다.

행정자치부의 자료에 의하면 2012년 일반직 전보자 5만2324명 중에서 1년 이내에 자리를 옮긴 공무원이 25.8%, 1~2년 사이가 38.3%, 2~3년 사이가 23.1%였다. 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은 90%가 2년 이내에 자리를 옮긴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니 어느 자리로 가든 맡은 일보다는 다음 자리에 신경을 쓰게 된다.  

철새와 같은 공무원 순환보직제도의 폐단은 심각하다. 우루과이라운드협상 8년 동안 우리 측 대표로 참석한 당시 농림부 국장이 일곱 번이나 바뀌었고 담당 서기관과 사무관도 2년 이상 담당한 사람이 없었다. 그로 인해 세계무역기구(WTO)가 창설되고 농산물 무역자유화가 본격화됐을 때 우리는 아무런 준비 없이 태풍에 노출됐다. 백기를 들 수밖에 없는 싸움에서 일본은 WTO 5년 만에 쌀시장을 개방하고 의무수입량을 최소화하는데 성공했으나, 우리는 20년을 끌다가 국내 쌀이 남아도는데도 연간 40만t(국내생산량의 8%)의 쌀을 매년 수입해야 하는 폭탄을 맞은 것이다. 이것은 그대로 쌀 재고량 누적으로 인한 쌀값 하락과 쌀농사 붕괴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은 오래전부터 테크노크라트(전문직공무원)를 중시해온 나라들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장급 고위공무원들이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공무원의 자긍심과 책임행정이 가능하다.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쌓은 경험과 노하우로 대외협상에 능통한 고수들이다. 1996년의 신한일어업협정과 1997년의 한중어업협정에서 상대방 고수들에게 한국대표들이 초보자로 농락당하며 불평등조약을 맺은 쓰라린 경험을 했음에도 고쳐지지 않는 것이 순환보직제도이다.

10여 년전 필자는 당시 식약청장을 만나 순환보직제도의 폐해를 설명하고 전문직 공무원을 가장 많이 가진 식약청이 전문직 장기근무제도를 시작할 것을 건의했다. 식약청이 이 제도를 도입했으나 2년도 되지 않아 유명무실해졌다. 한자리에서 장기 근무하면 승진에 불이익이 온다는 이유에서 신청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전문직 근무기간에 따른 수당과 가점, 승진 등의 인센티브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렇듯이 순환보직제도의 혁파는 국가차원의 대대적인 공무원법 개혁으로만 가능하다.

최순실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진통을 겪으면서 새로운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정부 고위공무원은 고사하고 과장급도 권력의 입김에 흩날리는 것은 순환보직제의 또 하나의 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의식이나 사명감이 결여된 허약한 공무원조직에서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전문 테크노크라트들이 권력의 횡포에 영향 받지 않고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어야 나라가 안정되고 발전할 수 있다. 새로운 헌정질서는 순환보직제도의 과감한 혁파와 전문직 공무원제도의 정착에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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