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길, 자주 가던 곱창집 한 곳을 찾았다. 역에서도 한참 떨어진 으슥한 언덕배기 골목에 있지만 늘 자리전쟁을 치른다. 500g에 1만8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을 제외하고는 다른 곳과 비교해 특별할 것 없는 ‘그냥 곱창’이다.
낡은 식당이다보니 환기 시설이 부족해 온몸에 냄새가 배기 일쑤다. 가게 앞에 주차할 공간도 없다. 그럼에도 추운 겨울 가게 밖까지 줄이 늘어선 이유는 주인장의 입담 때문이다.
얼굴을 한 번 보면 외워버리는 기억력도 한몫 한다. 이렇다보니 주인장과 근황을 나누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손님이 적은 날엔 함께 앉아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누며 술잔도 기울이곤 했다.
어쩌면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는 ‘심야식당’처럼 나의 얘기를 나눌 곳이 필요한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심야식당 콘셉트의 1인 식당이 종종 눈에 띈다. 1인가구 거주율이 가장 높다는 서울 관악구에는 수 개의 심야식당이 자리한다. 가게 앞 조그만 대기 의자는 가게가 문을 여는 6시부터 밤 11시까지도 비지 않는다.
우리 업계는 이들이 집 근처 5~6천 원짜리 식당을 두고 굳이 1만 원을 호가하는 심야식당을 찾는 이유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음식 맛이 괜찮고, 가격이 비싸지 않음에도 손님이 찾지 않는 이유가 뭘까 묻는다면 음식 맛이 좋아야 하는 건 음식 장사의 기본이요, 가격이라고 하면 편의점을 당해낼 수가 없다.
음식·숙박업 창업자의 경우 1년을 버티지 못한 업체가 43.4%, 2년째는 60.5%로 증가해 5년째에는 10명 중 8명에 달하는 82.3%가 폐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창업을 희망하는 업종으로는 외식업이 무려 57.6%를 차지하고 있다.
지속되는 불경기,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 외식 창업자들이 고군분투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상권의 타깃 분석이 정확히 됐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정년퇴직 이후 주먹구구식 오픈은 이제 통하지 않는 시대다. HMR 시장의 확대로 인해 외식에 대한 지출은 점차 줄어갈 것이고, 소비자는 점차 가치소비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경쟁자는 같은 외식업이 아닌 편의점을 비롯한 간편식 시장이다.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좋은 HMR 제품이 속속 등장하다보니 이제 고객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내 식당’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1인가구의 증가는 ‘고독한 인구’의 비율과 비례한다고 한다. 최근 20~30대 연령층의 인스타그램에서는 ‘#집밥’이라는 해시태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홀로 도시에 나와 생활하며 어머니의 소박한 손맛과 따뜻한 한마디를 그리워하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이 단골 식당으로 향하는 이유는 어쩌면 기계처럼 놓여지는 반찬 접시가 아니라 ‘사람 소리’가 나는 곳을 찾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저 곱창집이 사라지고 나면 내가 그리워할 것은 곱창의 맛일까? 늘 반갑게 인사를 건네오던 주인장의 목소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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