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음식의 뿌리를 찾아서
우리 음식의 뿌리를 찾아서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17.03.0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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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 이철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회원 저술 지원사업에 내가 신청한 ‘한국음식의 역사’가 채택됐다는 소식과 함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출판 취지에 맞게 좀 쉽게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막내딸에게 원고의 일부를 보내 의견을 물었다.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아빠, 너무 어려워서 나도 읽기가 힘들어요”였다.

한번 써놓은 원고를 쉽게 다시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대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고치기로 했다. 먼저 책 제목부터 ‘우리 음식의 뿌리를 찾아서’로 고치고, 제1장의 제목 ‘구석기시대의 동북아 식생활 환경’을 ‘구석기시대에는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았나?’로 바꿨다.

나는 젊은 날 10여 년의 외국 유학시절에 식품과학을 공부하면서 많은 우리 고유의 음식들이 일본이나 중국의 것으로 세계에 알려진 것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도 유명했던 고려인삼의 영어명칭이 일본식 발음대로 진셍(ginseng)으로 표기되고, 한반도가 원산지인 콩으로 만든 두부가 ‘토푸(tofu)’로 불리고 있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에는 짧은 기간이었으나 36년간의 일제 강점기가 동양이 본격적으로 서양에 알려졌을 때였으므로 우리 고유의 문화가 대부분 일본의 것으로 소개됐기 때문이다.

더 길게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사대주의사상으로 인해 우리 문화의 상당부분이 중국에 예속돼 찬란했던 한(韓)민족의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원인도 있다.

나는 귀국해 대학에서 식품공학 강의를 하면서 틈틈이 우리 음식의 과학성과 역사에 대해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우리 세 딸들에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잃어버린 천년의 역사를 되찾는 일이 오늘을 사는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 덕분에 우리 첫째 딸은 한국미술사, 둘째 딸은 동양사학 교수가 돼 미국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 식품사 연구는 그동안 많은 석학들에 의해 다뤄졌다. 윤서석 중앙대 교수, 강인희 명지대 교수, 황혜성 성균관대 교수, 이효지 한양대 교수 등의 전통 음식조리에 관한 연구는 많았지만 사학계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음식사학 연구는 많지 않다.

이 방면의 연구에는 이성우 한양대 교수와 장지현 가톨릭대 교수가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이성우 교수는 일본에서 수학한 관계로 일본의 자료를 주로 사용했고, 장지현 교수는 한문으로 된 문헌을 근거로 연구해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식품 고대사를 다룰 수 없었다.

우리의 시각에서 본 한국 음식문화의 원류를 찾으려면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연구가 필요했다. 나는 한동안 한국 고대사와 고고학 연구에 몰두해 우리의 식품 고대사(食品古代史)를 정립하는 일에 매진했다.

그 결과 ‘동북아시아 구석기시대의 식생활 환경’과 ‘동북아시아 원시토기문화시대의 특징과 식품사적 중요성’이라는 2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러한 논문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서양이나 일본보다 100여 년 늦게 1970년대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된 우리나라 고고학 발굴과 연구 성과에 힘입은 것이다.

우리나라 고대사(古代史)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해방직후 서울대 사학과 이병도 교수가 주도한 정통사학의 한국 고대사가 식민사관에 치우쳐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로잡지 못했다는 재야 역사학자들의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의 우리나라 고고학 연구 성과와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발굴된 중국 요하문명의 홍산문화 유적들이 알려지면서 실증주의를 표방해온 정통사학의 한국고대사 옹호론자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필자의 연구에서 제안한 한반도 원시토기문화시대(기원전 6000-3000년)는 동북아 국가형성기에 우리의 조상들이 어떻게 동북아의 엘리트 그룹으로 성장하였는가에 대한 영양인류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음식의 역사를 통해 잃어버리고 왜곡된 우리의 역사를 다소나마 바로 잡으려는 과거 속으로의 여행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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