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평론)은 왜 인간의 천성이 되었을까?
‘저 과일은 몸에 나빠’, ‘이 음식은 몸에 좋아’, ‘뱀은 위험해’, ’어디 마을은 살기가 좋대‘, ’음식평론과정은 미래의 각광받는 직업’ 등등.
인간 사회에서 쏟아지는 정보는 수없이 많다. 그 중에는 그릇된 정보 하나가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고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또는 나라를 건강하게 할 수도 있다.
잘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받으며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 잘 살기 위해 정보를 교환하는 습관이 오래되다 보니 우리의 마음에 유전자처럼 박혀 대대손손 계승되며 비평(평론)이라는 것이 천성이자 본성으로 자리잡게 됐다.
현대 사회를 일컬어 정보의 홍수 시대라 한다. 그러나 어떤 정보에 관심이 있고 또 중요한가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이 점에서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예술에 대한 정보 교환도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당신이 먹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주시오,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주리다.” 19세기 프랑스 미식가 앙텔므 브리야 샤바랭의 말이다. 그렇다. 음식은 인간의 생존 본능의 기본적 요소이면서 또한 인간의 본질을 대변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기제(機制)이다.
음식, 한 민족의 문화로 대변되기도
본능적으로,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먹는 음식은 그저 살기 위해서 먹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한 인간의 본성, 속한 사회, 계층 그리고 한 민족의 문화로 대변되기도 하며 각각의 음식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이미지는 마치 인간사회, 인간관계처럼 다양하게 분류된다.
같은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상호간 관계의 수위가 정해지고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해 진다. 음식을 통해 각인된 기억은 오랜 시간 우리의 뇌리에 깊게 새겨져 남아 있게 된다. 또한 음식을 매개로 인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는 장면은 훨씬 선명하며 보다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음식은 그저 단순히 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한 민족의 기질과 삶의 행태를 보여줄 수 있는 것으로 어찌 보면 우리 인간 혹은 삶의 본질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한 나라의 문화를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음식인 것이다.
음식평론이라는 것이 아직까지는 시행착오가 많다. 우선 정식 교육이나 시험 자체가 없었다. 따라서 제대로 평론하는 사람이 드문 편이다. 국내에서는 신문 기자들이 간혹 쓰는 맛집 기사가 음식평론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더불어 독자들 역시 그저 자극적인 글을 좋은 평론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시작 단계 음식평론, 담론부족으로 권위 인정 미흡
이렇듯 음식평론이 아직은 시작 단계에 놓여 있다 보니 평가의 기준이나 비판을 포용하는 능력과 같은 면에서 어려운 점이 많다. 맛있는 음식과 음식점, 조리법을 소개하는 매체가 텔레비전이나 인쇄매체는 물론, 인터넷이나 블로그를 통해 개인 차원으로 확산될 만큼 음식을 향한 사랑이라면 세계 어느 민족에게도 뒤지지 않는 우리에게 아직도 제대로 된 음식평론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음식 자체는 물론 과학이나 역사, 기타 다른 문화까지도 한 번에 아우를 수 있는 담론이 부족하고, 그런 까닭으로 음식평론의 권위를 인정하려들지 않는 분위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product’, ‘제품’이라면, 자연(nature)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produce’, ‘생산하다’가 아니겠는가. 식재료를 생산하는 ‘자연’이 존재하는 한 인간의 천성(본성)인 음식평론의 길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