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원’ 상표등록 반려했다 업체 바뀌니 인정

상표권 분쟁, 상식 벗어난 특허청 인정과 법원 판결 … 법조 관행 문제 수면 위 김상우 기자l승인2017.06.27l9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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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황해북도 도청 소재지인 ‘사리원’을 상호로 쓰는 불고기 전문점과 냉면 전문점이 상표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특허청은 불과 4년의 시차를 두고 불고기 측의 상표등록을 반려한 반면 냉면 측은 상표권을 인정해줬다. 

결국 특허청의 상표권 인정이 빌미가 돼 양측은 법적 공방을 벌이게 됐고 법원은 상표권을 가지고 있는 냉면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을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법정대리인의 역할이 판결에 일부분 작용하지 않았겠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고질적인 법조 관행 문제까지 수면 위로 오른 것이다.

이번 사건의 요지는 지명인 사리원을 상표권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사리원불고기를 운영하는 라성윤 대표는 지난 2015년 8월 김래현 ㈜사리원 대표로부터 상표권을 침해당했다며 가게 간판을 내리라는 내용증명을 받았다. 깜짝 놀란 라 대표는 특허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고 김 대표 역시 소송을 내면서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

사리원불고기는 라 대표의 외할머니 시절부터 시작된다. 고향이 사리원인 외할머니는 서울에서 사리원식 불고기를 팔았고 1992년 외손자인 라 대표에게 가게를 물려줬다. 라 대표는 외할머니의 특화된 레시피를 표준화시키는 수완을 발휘, 전국에 8개 지점을 내는 등 20년 동안 사리원불고기를 운영했다. 부드럽고 달콤 짭조름한 불고기의 특징을 가장 잘 살렸다는 평판이 이어지면서 불고기 맛집으로 자리매김했다. 

라 대표는 가게를 물려받을 당시인 1992년, 가게를 보호하겠다는 목적에 사리원을 상표 출원을 시도한 바 있다. 이번 사건처럼 상표권을 가지고 있는 특정인이 침해소송을 낼 경우 사리원을 빼앗길 수 있다는 조바심이 발동한 것이다. 

그러나 특허청은 황해북도 사리원시가 지명이기에 상표법 6조 1항 4호(현저한 지리적 명칭, 그 약어 또는 지도만으로 된 표장은 상표 등록이 불가능하다)에 의거, 상표 출원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1988년 똑같은 이유로 거절당한 판례도 엄연히 존재했다. 

라 대표는 특허청의 판단이 사리원은 누구나 쓸 수 지명이기에 안심하고 써도 된다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1996년 사리원면옥의 김 대표가 신청한 사리원 상표 출원은 특허청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라 대표는 이 사실을 이번 분쟁을 통해 알게 됐다. 왜 자신은 거절당했고 김 대표의 신청은 받아들여졌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욱이 1996년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20년이 훌쩍 넘어서야 상표권 침해소송에 나선 것인지 김 대표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만약ㅌ 사리원불고기가 유명 맛집이 아니었다면, 또 사리원을 쓰는 다른 식당들은 왜 내버려뒀는지 의문이라는 시각이다. 

라 대표는 재판부 탄원서를 통해 “고향이 사리원인 부친을 기리고자 3대째 사리원이라는 상호를 썼고 전국에 사리원 지명이 들어간 상호를 쓰는 음식점들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라며 “수십 년간 다 같이 써오던 사리원이라는 지명을 한 개인이 상표권으로 독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간판을 내리라 하는 건 열심히 노력해 쌓아온 명성은 물론 피땀 흘려 얻은 수요자들의 신뢰까지 모두 강탈해가려는 파렴치한 행위”라고 강조했다.  
     

▲ 사리원불고기 서초본점은 현재 '원'자를 뺀 서초 사리로 간판명을 바꾼 상태다.

현저한 지명의 기준은 여론조사?

재판이 진행된 결과 현재까지 1심과 2심은 모두 사리원면옥이 이겼다. 김 대표가 특허법원에 낸 ‘상호사용금지 가처분 신청’ 역시 받아들여져 라 대표의 사리원불고기는 서초 본점을 위시로 9개 매장 모두가 사리원을 쓰지 못하게 됐다. 서초본점은 사리원의 원을 뺀 ‘사리’로, 여타 매장은 ‘사리현’으로 간판을 갈았다. 불행 중 다행인지 간판갈이에도 불구하고 식당은 여전히 붐볐다.      

사리원불고기를 10년 넘게 찾고 있는 김모(55) 씨는 이번 소식을 전해 듣고 “사리원이 독점된다면 서울도 대한민국도 상표권을 내고 독점할 수 있다는 말이냐”며 “내가 법은 잘 모르지만 누가 보더라도 상식 밖의 판결”이라고 말했다.  

법정에서 쟁점이 된 부분은 사리원이 특허법상 상표등록을 금지할 수 있는 기준인 ‘현저한 지명’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특허청의 상표심사 기준에 따르면 ‘현저한 지리적 명칭은 그 지역주민의 상호로 많이 사용되고 있어 이런 지리적 명칭을 등록시켜준다면 해당 지역에서의 자유 사용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규모 이상이나 널리 알려진 지리적 명칭에 대해서는 특정인에게 독점 배타적인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라고 명시됐다. 

또한 ‘현저한 지리적 명칭과 그 약어라 함은 국가명, 국내의 특별시, 광역시 또는 도의 명칭, 특별시·광역시·도의 시·군·구의 명칭, 저명한 외국의 수도명, 대도시명, 주 또는 이에 상당하는 행정구역의 명칭 그리고 현저하게 알려진 국내외의 고적지, 관광지, 번화가 등의 명칭 등과 이들의 약칭을 말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라 대표는 이를 근거로 사리원은 현저한 지명이기에 김 대표의 상표권 침해 소송은 부당하다 주장했지만, 법원은 사리원이 우리 국민에게 생소한 북한 지명이므로 현저한 지명으로 볼 수 없다는 김 대표의 주장을 인정했다. 

라 대표와 김 대표는 사리원의 현저한 지명 여부를 둘러싸고 여론조사까지 진행했다. 라 대표는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사리원을 지명으로 안다는 결과는 26.8%가 나왔다고 밝혔다. 김 대표의 조사에서는 16.5%의 인지도가 나왔다. 

지난 5월 12일에 선고된 특허법원 제4부(재판장 이정석)의 판결문은 “특정 지명이 ‘현저한 지리적 명칭’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상표심사기준에 따라 획일적으로 판단될 수 없고 국내 수요자나 거래자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원고(라 대표) 스스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서조차 일반 수요자의 인지도가 낮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사리원이 지리적 명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결국은 본질이 이긴다

그러나 법원의 이러한 판결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힘의 논리에 의한 판결이 아니냐는 의혹 제기가 나오고 있다. 그만큼 판결이 적법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라 대표 측은 법원이 당연하게 자신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 보고 1심과 2심을 개인 변호사와 변리사에게 맡겼다.

그러나 김 대표 측은 국내 1위 로펌인 김앤장에 이어 3위 태평양까지 동원하는 등 거액의 수임료를 쏟아 부었다. 실제 전관 예우 등 상위 로펌의 힘에 판결이 좌지우지된다는 법조 관행 문제가 어제오늘일이 아닐 정도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더욱이 여론조사 결과 20%가 넘어간다면 국민 5명 중 1명은 사리원을 안다는 결과로 이를 두고 현저한 지명이 아니라는 판결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라 대표는 대법원 상고를 앞두고 국내 2위 로펌 광장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한 상태다.    

광장 측은 “신청인(김 대표 측)은 간접강제금으로 하루 3천만 원을 청구하고 있고 신청인의 주장에 의한다면 피신청인(라 대표 측)이 하루에 3천만 원 상당의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피신청인의 포장지, 포장용기, 정가표, 거래서류, 명함, 간판, 카탈로그, 광고선전물 등을 폐기하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삭제해 음식점 사업의 자산을 모두 소멸시키면서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고객과의 신뢰를 상실시켜버린 신청인이 얼마나 이익을 얻을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라 대표는 “사리원이 현저한 지명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특허청 심사관의 상반된 잣대가 가능하다면 이는 매우 불공정하고 부당하다는 생각”이라며 “사리원면옥은 가맹사업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사리원이라는 지명을 독점하고 싶었지만 이미 서울에서 사리원불고기로 유명한 저희를 걸림돌이라 생각해 느닷없이 저희에게 간판을 내리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외식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고객의 판단이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라는 반응이다. 그간 업계에서 비슷한 사건이 끊이질 않았지만 대부분 ‘딴죽걸기’에 나선 측이 고객의 외면을 샀던 것을 언급, 결국은 맛과 서비스에 자신이 없는 쪽에서 브랜드에 집착하지 않았겠냐는 시각이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한때 상표권 분쟁이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저기서 터졌다”며 “대부분 원조의 명성에 기대려는 사이비들에 대한 원조의 분노”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의 외식 시장은 스마트한 고객이 시장을 주도하기 때문에 브랜드 파워는 큰 의미가 없다”며 “고객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어디가 문제인지 쉽게 판단할 것이다. 본질에서 벗어나면 절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말했다.

 

사리원, 조선 초기부터 이어져 온 역사적 도시

▲ 구글어스로 본 북한 황해북도 사리원시. ​

황해북도 도청 소재지인 사리원(沙里院)은 조선 시대부터 교통의 요충지이자 농축산물의 집산지로 잘 알려졌다. 황재령강 유역의 비옥한 재령평야는 북한 제1의 농업도시의 근원이 되고 있다. 쌀·밀·옥수수·수수·콩 등의 밭작물부터 사과·배·복숭아 등의 집산지다. 또한 서울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경의선에 해주, 신천, 안악 등 사방이 뚫린 사통오달을 자랑한다.

특히 교통의 요지로 오랫동안 자리하면서 음식문화가 발달해왔다. 불고기와 국수, 냉면, 비빔밥 등 북한의 대표 음식들을 속속 맛볼 수 있다. 현재 사리원 민속거리에 위치한 식당들은 북한이 전략적으로 지원 운영할 정도다.   

사리원이라는 이름은 조선 초기부터 사용돼 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으로는 당시 사리원이 행정단위 명칭이 아니라 역원(驛院), 역참(驛站)이었다. 즉 ‘사원리’, ‘사리’에 있는 역원이라 해 사리원으로 불린 것이다. 

1947년 사리원시로 승격했고 1952년 행정구역 개편 때 봉산군 일부가 편입됐다. 1954년 황해도를 황해남·북도로 나누면서 사리원시는 황해북도에 속하게 된다. 현재 북한의 7대 도시 중에 하나며 한국전쟁 당시 사리원을 고향으로 두고 남하한 이들이 약 300만 명에 이르렀다. 실향민이 가장 많은 도시 중에 하나다.  


김상우 기자  ksw@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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