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과 가상 외식시장 이야기
4차 산업혁명과 가상 외식시장 이야기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7.06.27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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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와 요리 로봇이 일하는 무인 편의식당에서 한 끼

4차 산업혁명이 우리 경제를 뒤흔들 변곡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그리고 광속 가까운 속도로 전달되는 통신의 융합으로 전개될 4차 산업혁명은 외식시장에도 큰 변화를 가져 올 전망이다. 하지만 일부는 전통적인 외식업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음식을 매개로 한 외식시장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인류문화적인 속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함께 좋은 음식을 나누며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과정은 삶을 윤택하게 하는 중요한 의식(儀式)과 같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외식시장의 이모저모를 가상으로 꾸며본다.

#1. 서울의 직장인 김초현 씨는 요리가 취미다. 주말 아침 늦게 일어나 아파트 문 앞에 배달원이 놓고 간 식재료로 요리를 한다. 전날 오후 배달 애플리케이션으로 주문한 식재료는 주재료와 부재료, 양념, 심지어 밑 국물까지 2인분에 정확히 맞춰져 있다. 포장지에 적혀 있는 재료 넣는 순서와 시간만 지키면 완벽한 요리가 만들어진다.

김 씨의 동료들은 이런 취미에 놀라워한다. 왜 피곤하게 그런 옛날 방식 요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동료가 대부분이다. 일부는 아예 정상적인 식사를 거의 하지 않고 간단한 음료 한 병으로 하루 필요한 영양소 섭취는 물론, 포만감까지 얻는다.

일상적인 식사는 곳곳에 문을 연 편의식당에서 해결한다. 편의식당은 바 형 테이블에 자동주문 키오스크만 설치돼 있다. 키오스크 터치스크린으로 메뉴를 선택하면 여러 부재료 선택 단계로 넘어가고 하나를 빼거나 더할 때마다 가격이 달라진다. 선택을 마치고 결제 화면을 터치하면 이미 안면 인식을 마친 키오스크에서 주방으로 주문이 넘어간다.

신용카드나 모바일 결제가 없어진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모든 결제는 안면인식을 통해 이루어지고 돈은 예금금리가 높은 은행으로 자동 이체된 소비자의 계좌에서 빠져나간다.

주방에도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키오스크를 통해 접수된 주문은 주방 조리담당 로봇이 처리한다. 로봇은 한 때 유행했던 3D 프린터의 진화 버전이다. 주방 식재고에 저장된 갖가지 식재가 로봇 조리박스에 정확한 분량씩 나뉘어 자동 이송되고 구이와 볶음, 탕, 국, 조림 등 각 조리기에서 순식간에 처리된다.

완성된 요리는 주문한 고객의 테이블 앞까지 차례차례 전달된다.

#2. 최신희 씨는 편의식당에서 1회용 라이터 정도 크기의 홀로그램 단말기로 음식을 스캐닝한 뒤 아직 회사에서 퇴근하지 못한 다른 직장 친구 김요훈 씨에게 전송했다. 김 씨가 홀로그램을 수신한 뒤 출력을 명령하자 최 씨 앞 음식이 눈 앞 허공에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홀로그램은 냄새까지 전송할 수 있어 사무실은 순식간에 고소한 향으로 가득 찬다. 김 씨의 사무실 동료들은 난 데 없는 냄새에 “저 친구 여자 친구가 또 밥 자랑하는 군!”이라며 일제히 시선을 돌린다.   

김 씨의 직장은 식물공장이다. 각자의 책상은 과거 전투기 조종석 터치스크린과 같은 모양이다. 여러 메뉴 중 하나는 해당 직원이 관리하는 농장 선택 패널이다. 여러 농장 중 하나를 선택하고 ‘계속’을 터치하면 식물공장 전경, 급수 상황, 온도, 대기 상태, 토양정보까지 차례로 볼 수 있다.

자동시스템의 오차로 적정선에 미달하는 부분은 보충하도록 명령하고 넘치는 부분을 줄이도록 한다. 수확할 때가 된 작물은 자동 수확기가 정확하게 거둔 뒤 선별장에서 등급별로 나눠 미리 주문이 들어온 식품가공업체나 외식업체로 배송한다. 일부 식자재는 대형 드론에 실려 순식간에 고객 앞으로 날아간다.  

#3. 김 씨의 회사로부터 이탈리안 파슬리와 바질, 로즈마리 등 허브를 받은 강수식 씨는 전문 요리사다. 그는 얼마 후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쉴 계획이다. 근무하는 직장은 시내 중심가의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수셰프인 강 씨는 셰프의 지시에 따라 보조 요리사 2명과 함께 스테이크부터 파스타, 스타터인 샐러드, 음료까지 만들어낸다.

옛 방식의 요리를 좋아하는 고객이 주요 타깃인 레스토랑은 주방도 20여 년 전 모습에서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각종 소스는 물론 거의 반 조리 상태로 공급되는 식재로 요리를 만들기 때문에 일은 그리 고되지 않았다. 메뉴의 가격은 편의식당보다 50% 정도 비쌌지만 전문 요리사가 조리한 음식을 찾는 마니아 덕분에 상당한 매출을 올렸다.

이런 방식은 한식당이나 중식당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소비자들이 간단하게 한 끼 해결하는 편의식당을 찾았지만 가벼운 데이트나 모임을 갖는 고객들은 여전히 옛 방식의 식당으로 몰려왔다.

하지만 강 씨가 일하던 레스토랑 경영주가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번만큼 세금을 많이 내야 하고 인건비 부담도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AI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산업구조에서 일자리를 잃은 국민들에게 노동 강도가 약한 공공 일자리를 주면서도 충분한 급여를 지급했다. 이를 위해 사업자들은 수익에 비례한 세금을 내야 했다.

이같은 정책을 도입할 당시 경영주들은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를 잃은 국민들의 생계 마련에 나선 정부의 입장이 강경했고 무엇보다 유권자 중 실직자가 더 많았다.

#4. 강 씨는 레스토랑을 그만둔 뒤 잠시 해외여행을 다녀온 다음 ‘진짜’ 소목장에 취업할 계획이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외식 시장은 크게 3가지로 나뉘게 됐다. 첫 번째가 편의점 식당이라면 두 번째는 강 씨가 근무하는 레스토랑 등 대중 레스토랑, 마지막은 메뉴 하나 당 수십만 원을 내야 하는 파인 다이닝급 레스토랑이었다.

강 씨가 일하는 레스토랑에서는 인조소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를 팔았다. 진짜 소고기는 특급호텔이나 몇몇 파인 다이닝에서나 취급했다. 그렇다고 인조소고기 맛과 풍미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래 전 콩으로 만든 가짜 고기와 달리 인조소고기는 소의 부위별 분자구조 등을 완벽하게 뽑아내 화학적 방식으로 이를 재현해 만들어냈다.  등급이 오락가락하는 진짜 소고기보다 오히려 뛰어났다.

세계보건기구와 식량기구는 오래 전 인조고기생산체제를 갖춘 뒤 전세계 가축 사육량을 엄격히 통제했다. 이를 통해 탄소발생량을 획기적으로 줄인 결과 지구온난화 등 기후 문제 대부분이 사라졌다. 대신 진짜 고기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아무 때나 먹지 못하는 귀한 식재가 됐다.

강 씨는 목장에서 진짜 소를 기르며 생태를 연구하고 나중에는 소고기 해체까지 배워볼 생각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AI에 의해 통제되는 외식시장에서 벗어나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먹는게 바람직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볼 작정이다.

강 씨는 늦게 일을 마치고 퇴근 준비를 서둘렀다. 아침부터 배달 식재료로 요리를 해먹었다는 여자친구 김초현 씨와 시내 와인 숍에서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김 씨와 함께 빈티지가 좋다고 알려진 2017년산 쇼비뇽블랑을 개봉하기로 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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