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he Feudal society(봉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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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7.07.0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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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먹느냐에 신분 갈리는 양극화 시대로 귀환

옛 프랑스의 법관 장 앙텔름 브리야 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1755~1826)은 미식가로 더 잘 알려졌다. 그가 펴낸 책 <미식예찬·사진>은 식도락 에세이의 모든 것을 발견한 것이란 평을 얻었다.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는 말로 유명하다. 이는 소득 수준과 직업, 지위 등에 따라 어떤 음식을 주로 먹는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이제 계급사회가 무너지고 누구나 참정권을 갖게 되는 등 표면적인 평등사회가 됐다.

하지만 브리야 사바랭의 이 말은 아직 유효하다. 더욱이 2010년대로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각각 무엇을 먹느냐의 간극은 점점 더 벌이지고 있다. 이른바 ‘외식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물론 과거 계급사회 당시와 비교할 수는 없다.

가난한 청년도 의지만 있다면 한 번쯤은 1인분에 30~40만 원짜리 코스 요리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세대도 마찬가지다. 2인 기준 한 끼 식사비로 월수입의 20% 내외를 지불하기란 쉽지 않다. 

저소득층은 물론 평범한 직장인이나 학생, 청년층은 대부분 1만~3만 원 내외의 식단가를 매긴 메뉴로 외식을 즐긴다. 이들 계층의 일상적인 점심 값은 평균 7천 원 안팎이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될수록 외식 소비자는 줄어들고 업계는 ‘가성비’라는 이름으로 가격 낮추기 경쟁에 뛰어든다.

결과적으로 외식 시장 전체 매출이 떨어지게 된다. 시장에 돈이 돌지 않게 되면 산업은 위축되고 유동성이 막힌 기업은 도산하게 된다. 빈곤의 악순환 고리에 갇혀 빠져나오기 힘들어진 업계는 장기불황을 걱정하고 있다.

이와 달리 특급호텔 레스토랑이나 서울 강남 일대의 고급 음식점은 불황의 사각지대다. 지난 연말과 연초 불황에 청탁금지법 영향으로 중심가 외식 거리가 텅 빌 때도 특급 호텔 레스토랑은 불야성을 이뤘다. 고급 레스토랑을 주로 이용하는 고객은 대부분 높은 금융소득을 올리는 계층이다.

이들은 가족이나 지인끼리 외식을 즐기기 때문에 외식시장을 휩쓴 청탁금지법과도 무관하다. 외식시장의 양극화는 소비 양극화와 동일한 패턴을 보인다. 우리나라의 소비 양극화는 국민의 가처분소득이 줄면서 시작됐다. 소득은 제자리거나 일부 올랐어도 물가 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가처분소득이 감소한다.

여기다 급격하게 불어나는 가계부채가 소비자의 지갑을 닫게 한다. 올해 초 한국은행은 지난해 가계부채가 1344조 원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은행대출은 617조4203억 원, 비은행 대출 291조2554억 원, 보험대출 및 카드론 362조8841억 원, 신용카드 및 할부금융 등 72조7195억 원의 분포를 보였다.

특히 비은행 대출 가운데 이자율이 최고 30%대에 이르는 상호금융 대출이 19조2810억 원에 새마을금고 12조3643억 원, 상호저축은행 4조5553억 원, 우체국 등 483억 원 등으로 빚의 내용이 좋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더 큰 문제는 비은행권 대출이 은행권 대출보다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권 대출은 지난 2014년 8%에서 2016년 9.5%로 1.5% 증가하는데 그쳤으나 같은 기간 비은행권 대출은 9.8%에서 17.1%로 거의 2배나 폭증했다. 전체 가계부채를 가구당 빚으로 환산하면 각각 7천만 원의 부채를 안고 살아가는 셈이다.

이러한 가계부채의 압박이 소비자의 지갑을 닫게 만들고 결국 소비절벽이란 위기상황으로 몰고 간다. 여기다 미국이 양적완화 정책을 중단하면서 올해 3차례의 금리인상을 예고하고 있어 헌국은행도 조만간 금리에 손을 댈 전망이다. 이럴 경우 가계부채는 언제 폭발할지 모를 뇌관이 된다.

이같은 상황에 따라 대다수 국민은 모처럼 외식도 저가 식당에서 해결하려는 하향 평준화 양상을 띠게 된다. 반면 일부 고소득층은 불황일수록 고가품 사들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유통업계에 따르면 A백화점에서 프랑스 초고가 사치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매출이 전년 대비 17.5%나 급증했다고 밝혔다.

에르메스 핸드백 가격은 1400만~7천만 원으로 400만~1천만 원대인 샤넬이나 100만~500만 원대인 루이뷔통보다 훨씬 비싸다. 비쌀수록 더 잘 팔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초고가 브랜드 쇼핑은 외식시장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신라호텔 라세느 등 특급호텔 뷔페 등은 1인당 10만 원 이상의 가격에도 연일 자리가 없어 못 앉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최소 20만 원 이상의 오마카세 스시에 사케를 곁들일 경우 1인 당 40만 원을 내야 하는 강남의 고급 스시야나 프렌치레스토랑 등도 예약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소비 양극화는 지난 1990년대 일본의 버블 붕괴 후 드러난 양상과 비슷하다는 관측이 나온 적이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해 일본 월간지 닛케이트렌디가 최근 공개한 '30년간 일본히트상품' 자료를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억 엔 이상 고소득층은 버블붕괴 전과 큰 차이 없이 품질과 브랜드를 중시한 반면 저소득층에서는 전반적으로 금융거래, 의료비 등에서 소비 감소세가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외식소비 양극화도 저성정기로 접어들면서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 당시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국내 외식업계는 일본의 과거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를 통해 최근 심화하고 있는 양극화가 소비절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대응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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