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우리는 흔히 불고기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말한다. 많은 한국인이 즐겨 먹기 때문에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하겠지만 불고기에는 그럴만한 스토리텔링이 있다.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서양인에게는 소고기에 간장을 버무려 굽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간장을 버무리면 소고기 특유의 맛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한국인은 소고기에 간장을 버무려 굽는가? 이것은 한반도의 토속 콩 발효문화에 북방에서 내려온 유목민족의 육식문화가 결합된 산물이다. 북방민족이 한반도로 대거 이동한 기원전 1천년대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고대사를 보면 고조선 말기에 북방 부여족의 주몽과 온조가 한반도로 내려와 고구려와 백제를 창건한 이야기가 나온다.
유목민족들이 기후 좋고 물 좋은 한반도에 내려와 그들의 가축수를 줄이고 정착농업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단백질 급원이 줄게 되고 이를 보충할 대체작물을 찾게 된다.
여기에 선택된 것이 콩이고 이로부터 고기 맛을 내는 장(醬) 발효기술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렇게 북방의 육식문화와 남방의 발효문화가 자연스럽게 결합된 음식이 불고기다. 불고기는 중국에서 맥적(貊炙)이라 해 우리 민족 특유의 음식이라 부르고 이것이 중국에서 크게 유행하는 것은 아마도 북방민족이 침입할 징조라고 걱정한 글도 남아 있다.
동북아 발효기술의 기원은 대한해협 연안의 한반도 동남해안과 일본 규슈 북서해안에서 시작된 원시토기문화(기원전 6천~3천년)의 산물이라는 것이 최근의 고고학연구에서 입증되고 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구석기시대부터 중국대륙과 일본열도를 연결하는 통로(land bridge)였다. 더운 기후에는 동물들이 북쪽에서 한반도를 통해 일본열도까지 이동하고 이를 따라 사냥꾼들도 이동했을 것이다.
추운 기후에는 반대로 북쪽으로 이동하는 통로였다. 이때 대한해협은 이들의 이동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으며 자연히 양쪽 해변가에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대한해협 연안은 이렇게 그 시절 문화의 중심지가 되며 사람들은 해변의 채집자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들은 조개 채취와 해산물을 주식으로 했을 것이며 쉽게 부패하는 수산물을 보존하는 방법이 절실히 필요했을 것이다. 이것이 인류 최초로 물을 담아 끓일 수 있는 토기를 이 지역에서 만들게 된 동기라고 본다.
실제로 대한해협 연안에는 무수한 조개무덤이 있으며 이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유적들이 발굴되고 있다. 일본 규슈의 후쿠이동굴과 한반도 남해안의 동삼도, 상노대도 유적들에서 1만년전의 토기유적들이 발굴됐다. 기원전 6천년 경에는 한반도 전역에서 토기가 사용된 흔적이 있다.
토기를 만들면서 해산물과 채소를 바닷물에 끓인 찌개가 만들어 지고 그릇 주변에 솟아난 소금을 보고 바닷물에서 소금을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됐을 것이다. 토기에 젖은 음식을 담아두면 미생물이 자라게 되고 이것을 먹을 수 있으면 발효이고 먹을 수 없으면 부패이다. 이렇게 곡물에서 술을 만들고 바닷물에 담군 채소가 김치가 되고 해산물에서 젓갈 식해가 만들어 진다.
잘 정리된 현대식 식당에서 투박한 토기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해물탕, 김치찌개, 해장국을 올려놓고 먹는 한국인의 이 특유한 식습관이 기원전 6천년 원시토기문화시대의 해변가 채집인 생활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세계인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김이나 미역을 주식처럼 먹고 있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식습관도 이 시대에서 유래된 것이다.
최근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은 ‘콩 스토리텔링’ 국영문판을 출판했다. 이 책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이 뜨겁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독하고 한국이 콩의 종주국이고 콩에 관한 역사가 이렇게 깊은 줄을 몰랐다는 찬탄과 감사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